삼성운용, 美 대표지수 ETF 4종 총보수 연 0.05%→0.0099% 인하장기투자자 수익 확대 목적…ETF 점유율 1위 수성 위한 특단 분석업계 수수료 인하 출혈 경쟁 촉발…전체 시장 수익성 훼손 우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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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내 상장지수펀드(ETF) 시장에 파장이 일고 있다. ETF 업계 1위 삼성자산운용이 최근 해외주식을 추종하는 핵심 상품들의 수수료를 유례없는 수준으로 인하하면서 그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투자자들은 삼성운용의 인하 결정을 두고 환영하는 입장이다. 다만 업계에선 지나친 운용보수 인하 경쟁은 시장 전체의 수익성을 훼손, 장기적으로 ETF 업계 전반의 성장 저하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를 표하고 있다. 

    24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삼성운용은 ▲KODEX 미국S&P500TR ▲KODEX 미국나스닥100TR ▲KODEX 미국S&P500(H) ▲KODEX 미국나스닥100(H) 등의 총보수를 연 0.05%에서 국내 최저 수준인 0.0099%로 인하했다. 

    이번에 보수가 인하되는 상품은 환오픈형이자 배당을 자동으로 재투자하는 토탈리턴(TR)형 2종과 배당을 지급하는 환헤지형 2종 등 총 4종이다. 

    총보수가 0.0099%라는 건 투자자가 1억 원을 투자해도 만 원이 채 안 되는 보수를 부담하는 셈이다. 운용사 입장에선 해당 상품의 순자산총액이 1조 원에 이르러도 실제로 손에 쥘 수익은 1억 원이 안 돼 사실상 '제로 수수료'라는 평가가 나온다.

    삼성운용 측은 투자자들의 장기 적립식 투자 문화를 확대하는 데 도움이 되기 위해 수수료를 낮췄다는 설명이다. 연금 등을 활용해 미국 증시에 장기 투자하는 투자자들이 많은 만큼 실질적인 최대 수혜를 제공하겠다는 방침이다.

    다만 업계에선 삼성운용이 미래에셋자산운용에 비해 열세를 보이는 미국 대표 지수 ETF 상품들의 운용보수를 인하, 이를 통해 전체 ETF 점유율을 높이려는 전략을 펼친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실제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지난달 말 기준 삼성운용의 ETF 순자산총액(AUM) 점유율은 40.2%로 전년 동기 대비 1%포인트 하락했다. 2위 미래에셋운용(36.6%)과의 점유율 차이는 불과 3.6%포인트에 불과하다. 

    지난 3년 전만 해도 삼성운용의 점유율은 50%를 웃돌았다. 당시 미래에셋운용과의 차이는 약 23%포인트에 육박했다. 그러나 미래에셋운용과 KB‧한투 등 중소형 운용사들이 약진하면서 삼성운용의 ETF 점유율은 꾸준히 줄어들었다.

    이에 삼성운용도 ETF 1위 자리를 수성하기 위해 갖은 노력을 펼쳤으나, 좀처럼 하위 운용사들과의 점유율 차이가 벌어지지 않자 투자자들의 가장 큰 인기를 받는 미국 대표지수 추종 ETF에 대한 총보수를 인하하는 특단의 조치를 내린 것으로 분석된다.

    실제 거래소에 따르면 삼성운용이 이번에 보수를 인하한 KODEX 미국S&P500TR과 KODEX 미국나스닥100TR의 경우 순자산가치총액이 각각 9965억 원, 7238억 원에 불과하다. 

    이는 각각 동일 지수를 추종하는 미래에셋운용의 TIGER미국S&P500과 TIGER미국나스닥100의 순자산 규모가 3조833억 원, 2조9803억 원에 달하는 것과 비교했을 때 현저히 낮은 수준이다. 다만 해당 상품들의 총보수는 0.07%로, 이번 삼성운용이 결정한 0.0099% 대비 7.1배가량 높은 수준이다.

    한 운용사 관계자는 "미래에셋운용의 경우 S&P500과 나스닥100 추종 상품을 삼성운용보다 먼저 출시해 이미 타사 대비 높은 점유율을 차지하고 있다"라며 "미래에셋운용의 대표 해외주식형 상품을 겨냥한 총보수 인하를 단행하면서 경쟁을 촉발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다만 삼성운용의 이번 결정을 바라보는 타사의 시선은 차갑다. 수수료를 대폭 낮추는 것이 당장의 점유율 방어에는 도움이 될 수 있지만, 중장기적으로 업계 전체 성장을 저해하는 데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지적이다.

    또 다른 관계자는 "연금계좌에서 ETF에 장기 투자하는 투자자들이 많아진 만큼, 이들이 대표지수 상품들의 보수에 대해선 높은 민감도를 보이는 것이 사실"이라며 "삼성운용이 이러한 점을 고려해 최저 보수 전략을 꺼낸 것으로 보인다"라고 설명했다.

    그는 "그러나 ETF를 운용해도 운용사들이 이익을 얻지 못하는 구조로 정착하게 될 경우, 우수 인력과 인프라를 보강하는 데 어려움을 겪게 될 것"이라며 "그렇게 되면 장기적으로 전체 ETF 산업 자체의 성장이 더뎌질 수 있다"라고 지적했다.

    특히 시장 점유율이 낮고 재원 여력이 부족한 중소형 운용사의 경우 부담이 더욱 큰 상황이다. 비슷한 상품을 보유한 중소형사 입장에선 울며 겨자 먹기로 수수료를 낮출 수밖에 없다는 설명이다.

    한 중소형사 관계자는 "결국 지나친 보수 경쟁은 시장 전체의 성장을 저해할 수 있다"라며 "그렇게 된다면 궁극적으로 투자자들이 좋은 상품을 공급받는 틀 자체가 흔들리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