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년제 대학 193곳 중 166곳 등록금 동결… 재정난 호소하는 대학들"급여 동결로 젊은 교수 이탈 가속" vs "고액 등록금에 서민 부담 커"
  • ▲ 지난 1월31일 한국대학교육협의회 정기총회에 참석한 4년제 일반 대학 총장들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 결과 대학 총장 10명 중 4명이 내년에 등록금 인상을 검토하고 있다는 설문 결과가 나왔다. ⓒ뉴시스
    ▲ 지난 1월31일 한국대학교육협의회 정기총회에 참석한 4년제 일반 대학 총장들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 결과 대학 총장 10명 중 4명이 내년에 등록금 인상을 검토하고 있다는 설문 결과가 나왔다. ⓒ뉴시스
    등록금 동결 기조가 16년째 이어지는 가운데 다수의 사립대가 심각한 재정난을 겪는 것으로 나타났다. 비올 때 빗물이 줄줄 새는 강의실이 널렸고, 젊은 교수들이 급여 동결로 이탈이 가속화하고 심지어 아르바이트 뛰는 교수마저 생겨나고 있다. 

    29일 교육계에 따르면 올해 4년제 대학 193곳 중 166곳이 등록금을 동결했다. 4년제 대학에 다니는 학생 한 명이 연간 부담하는 평균등록금은 682만7300원으로 전년(679만4800원) 대비 0.5% 상승했다. 이는 지난 2021년부터 2023년까지 3개 연도 평균 소비자물가상승률인 3.73%보다 한참 낮은 수치다.

    가파른 물가상승으로 수입 대비 고정비 지출이 늘어나면서 재정의 대다수를 등록금에 의존하는 사립대는 교육 투자를 줄이고 있는 실정이다.

    낮은 교수 연봉으로 교수 모집 공고에 지원자가 없거나, 낡은 시설을 보수 공사할 여력이 되지 않는 경우도 생기고 있다. 낮은 등록금은 해외 유명 대학과의 학생 교류에도 발목을 잡는다. 대학 재정 문제가 심각해지면 피해는 고스란히 학생들에게 전해질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익명의 한 지방 사립대학 관계자는 "오랫동안 지속된 등록금 동결로 교수와 교직원의 급여가 묶여 있는 실정"이라며 "특히 젊은 교수들의 이탈이 두드러지게 늘었고 낮은 급여로 인해 알바 뛰는 상황까지 심심치 않게 목격된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그러면서 "낮은 급여로 이직을 고민하는 교수들의 고충은 대중으로부터 공감을 얻기가 어렵다"며 "유능한 교수와 교직원이 교육 현장을 떠나면 그 피해는 결국 학생이 보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부산 신라대의 한 관계자는 "학교 내부적으로 등록금을 올려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다"며 "학생들 사이에서도 돈을 더 내고 학교생활 중 불편한 요소를 없애자는 여론이 커지고 있다"고 전했다.

    올해 등록금 법정 인상률 한도는 5.64%이다. 등록금은 소비자물가 상승률의 1.5배를 넘지 않는 범위에서 올릴 수 있지만 대부분의 대학에서 인상을 망설이고 있다. 등록금을 인상할 경우 국가장학금 지원이 제한되고, 각종 재정지원 사업에서 불이익을 받기 때문이다.

    교육부는 2012년부터 등록금을 올리는 대학에 지원금을 안 주는 방식으로 등록금 인상을 막았다. 법정 한도 내에서 등록금을 못 올리게 한 것이다. 하지만 학령인구 감소로 대학 정원이 줄면서 재정난이 심각해진 일부 대학은 등록금을 인상하는 결정을 내렸다.

    올해 학부 등록금을 4.9% 인상하기로 한 김춘성 조선대 총장은 "교직원 임금을 대거 삭감하지 않는 이상 학생들에 대한 투자에 한계가 왔다"며 "학령인구 감소 상황에서 학생이 오고 싶은 대학을 만들기 위해 결단이 필요했다"고 인상 배경을 밝혔다.

    부산 영산대도 최근 등록금심의위원회(등심위) 심의와 총장 재가를 거쳐 17년 만에 등록금을 법정 최고 한도에 가까운 5%대로 인상하기로 했다. 이어 부산 경성대(5.64%), 대구 계명대(4.9%), 경기 경동대(3.75%)가 올해 등록금 인상을 결정했다.

    송기창 숙명여대 교육학과 교수는 "교육비 부담 완화와 고등교육 기회 확대라는 반값등록금 정책 목표는 달성했지만, 사립대 재정 위기가 심화하고 대학 교육의 질적 하락을 촉진하는 등 다른 문제가 불거졌다"며 "국가장학금 Ⅱ유형 참여 자격인 '전년 대비 평균 등록금의 동결·인하'를 폐지하는 등 등록금 관련 규제를 철폐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 교육부, '등록금 동결' 유지 방침 … 고등교육 지원 예산 확대 나서

    대학 등록금은 지난 2000년부터 2008년까지 연평균 인상률이 6.7%에 달하면서 서민 경제에 큰 부담으로 작용했다. 일부에선 그동안 대학들이 등록금을 올리는 손쉬운 방법으로 재정을 확보해 왔다는 비판도 내놓는다. 

    이런 비판에 정치권이 '반값 등록금'을 들고 나오자, 교육부는 2009년부터 각 대학에 등록금을 동결하도록 권고했다. 2012년 이후엔 등록금을 올리는 대학엔 국가장학금 지원 대상에서 제외하는 방식으로 사실상 동결을 강제했다.

    이주호 부총리 겸 교육부장관은 지난해 "고물가·고금리 등 어려운 경제 상황에서 가계 부담을 완화하고 미래사회를 이끌어갈 청년이 등록금 걱정 없이 대학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등록금 동결 기조를 유지한다"며 "교육부 정책 기조에 동참하지 않고 등록금을 인상한 대학에는 유감을 표한다"고 밝힌 바 있다.

    교육부가 대학 등록금 동결 기조를 강조하고 나섰지만, 대학들이 재정난을 겪는 것을 모르는 것은 아니다. 교육부는 지속적인 등록금 동결로 인한 대학의 재정적 어려움을 고려해 고등교육 지원 예산 확대에 힘쓰고 있다. 

    정부는 올해 대학‧전문대 혁신지원사업비를 전년 대비 10% 증액하고, 국립대학 육성 및 지방대‧전문대 활성화 사업은 전년 대비 25% 수준 증액했다. 아울러 일반재정지원사업의 증액과 함께 집행 자율성을 확대해 대학의 재정 부담 완화를 위한 노력도 병행하고 있다.

    교육부 관계자는 "대학 등록금과 관련된 규제에 대해선 당장 완화할 계획이 없다"면서도 "재정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간접적인 방안은 고민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오랜기간 등록금 동결로 대학교육의 생태계 붕괴 우려를 키운 만큼 현시점에서 대학 등록금 동결을 해제하는 것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많다. 이와 함께 등록금 동결로 초래된 재정 결손을 국가재정으로 보전해야 한다는 요구도 나온다.

    송기창 전 한국교육재정경제학회 회장은 "대학은 더 이상 우수 연구자들의 로망이 아니다"라며 "대학 교육 생태계가 무너지는 데 16년이 걸렸다면, 생태계가 복원되는 데는 수십 년이 더 걸릴 수 있는데 대학교육이 살아나지 않으면 미래도 없다는 절박함으로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당국이 나서야 한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