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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선진화포럼> 선진화포커스 제92호
한-중 FTA, 걱정거리가 아니라 환영할 일
안 세 영 /서강대 국제대학원 교수우리나라가 이웃나라 중국과 FTA를 하겠다는 말을 들으면 다음과 같은 세 가지 걱정부터 앞선다. 세계에서 가장 강한 경제력을 가진 미국과 FTA를 하고 뒤이어 EU와도 한 것으로 충분하지 않을까?
또다시 세계2위 경제대국인 중국과 FTA를 꼭 해야 하는가? 이것이 첫 번째 걱정이다. 두 번째는 중국과의 FTA가 가져올 엄청난 파장에 대한 불안이다.
중국은 '세계의 공장'이라고 할 만큼 장난감에서 TV까지 온갖 공산품을 만들어 세계에 팔고 있는데 중국산 값싼 물건들이 국내시장에 몰려오면 우리 경제의 밑동을 흔들지 않을까. 더욱이 중국 쌀, 고추, 사과, 새우 등 농수산물이 수입되면 우리 농민과 어민에 큰 부담을 주지 않을 가하는 한 숨이다.
마지막은 이미 정부가 중국과 FTA를 하겠다고 선언을 했는데 이게 ‘잘 성사 될 수 있을까’ 하는 것이다.
우리 정부가 일본과는 여덟 차례 협상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2004년 겨울에 협상이 결렬되고 난 후 지금까지도 지지부진 하다. 일본은 농업개방을 꺼리고 우리는 부품산업 개방을 두려워하기 때문에 두 나라 정부가 의견차를 못 좁히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중국하고 FTA협상도 비슷하지 않을까? 한중FTA가 가져올 영향이 너무 크기 때문에 두 나라 정부가 서로 국내산업을 보호하려고 밀고 당기다 보면 협상이 난항을 거듭하고, 일본과의 FTA협상처럼 십 년을 끌 수도 있다.
지금부터 이 같은 세가지 우려에 대해 차분히 생각해보자. 우선, 왜 우리가 중국과 FTA 협상을 시작해야 하는가는 '왜 미국이 우리나라와 FTA 협상을 했는가'를 알면 해답을 얻을 수 있다.
2006년, W. 부시 미국대통령이 우리나라와의 FTA 협상을 시작할 때만 해도, 일본, 이태리 등 26개국이 미국과 FTA를 하고 싶어 안달이 나서 줄을 서고 있었다. 근데 유독 그 당시에는 한국과 미국과의 정치적 관계가 좋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왜 미국이 최대우방인 일본을 제치고 한국을 선택했을까?
이에 대한 답은 간단하다. 중국 때문이다.
미국은 7대 교역대상국인 한국과 경제협력을 강화하기 위한 목적도 있지만, 중국을 견제하기 위한 숨은 속내도 있었다. 빠른 속도로 경제강국, 군사강국으로 급부상하는 중국에 대해 미국은 겉으론 의연한 척하지만 속으로 굉장히 경계하고 있다.
지금 동남아에는 약 4천만명의 화교들이 살고 있다. 이 화교들이 현지 인구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약 10% 밖에 안 되는데, 이 10%의 화교들이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필리핀과 같은 나라들의 경제력의 2/3 이상을 장악하고 있다. 어떤 의미에서 본다면 동남아에 나가 있는 중국 상인들이 동남아 국가의 경제력을 실질적으로 장악하고 있는 것이다.
이 점을 노린 중국의 통상정책은 남방정책, 즉 Looking-South정책이다. ASEAN과 FTA를 맺어서 이 지역을 중국의 영향력 안에 집어 넣어서 '중화 경제권 '(The Greater Chinese Economy Zone) 을 형성하겠다는 것이다.
이 중화경제권은 중국 본토뿐만이 아니고 대만, 싱가포르, 홍콩, ASEAN 국가들을 모두 포함하고 있으니 이렇게 되면 중국이 미국을 제치고 실질적으로 동아시아의 맹주가 되어 경제적인 주도권을 장악하게 된다.
미국의 입장에선 이를 방관할 수만은 없다. 프레그 버그스탠 같은 피터슨 국제경제연구소의 학자는 중국 주도로 동아시아 국가들 만으로 경제통합이 이루어져 중화경제권이 형성되는 것에 대해 아주 깊은 우려를 표하고 있다.
왜냐하면 이는 미국을 제외시켜서 '아시아 국가만의 경제블록(Asia-only Economic Bloc)이 형성되고 이렇게 되면 미국은 무역왜곡효과로 인해서 연간 수백억 불의 경제적 손실을 본다는 것이다.
단순히 이 같은 무역 측면에서의 불이익뿐만이 아니라 중국이 동아시아의 경제적 헤게모니를 쥔다는 것은 이 지역에서 군사적인 주도권을 장악하는 것으로 연결되어 미국의 안보에도 심각한 위협이 된다고 본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이를 막아야겠는데 워싱턴에서 동아시아 지도를 보게 되면 유일하게 딱 두 나라만이 아직 중국의 영향력 (Beijing Umbrella) 안에 들어가 있지 않다. 바로, 일본과 한국이다.
다행히 일본은 전통적으로 미국과 굳은 경제, 군사 동맹관계를 유지하고 있기 때문에 문제가 없는데, 2006년 당시에 한국은 약간 불안했다. 그 당시 한국정부가 이념적으로 워싱턴보다는 베이징 쪽으로 기울었으며, 더욱이 경제적으로도 점점 미국과 멀어지고 중국과 가까워지는 것이다.
오랜 기간 동안 우리의 제일 교역 대상국은 미국이었는데 2003년에 중국으로 바뀌면서 몇 년 사이에 우리나라와 중국간의 무역은 두 배 이상으로 급격하게 늘어난 반면, 미국과의 교역은 별로 크게 늘어나지 않았다.
이는 한국을 그냥 놔두면 정치적으로뿐만 아니라 경제적으로 중국의 영향력 안에 들어가 동아시아에서 중국이 영향력을 미국이 견제하는데 심각한 문제를 가져온다는 것을 의미한다. 바로 이 같은 점 때문에 미국이 일본, 이탈리아 같은 나라를 제외하고 한국 정부와 FTA 협상을 시작하였다.
이 같은 배경에서 우리가 왜 중국과 FTA를 해야 하는가에 대한 대답을 찾아보자. 우리나라는 사실 세계의 커다란 두 개의 슈퍼 파워 경제권 사이에서 선진화를 이룩해야 한다. 미국과 일본으로 이루어지는 시장경제권과 중국이라는 거대한 중화경제권 사이에서 균형을 유지하면서 발전을 해 나가야 한다.
우리는 전통적으로 미국과 군사관계를 유지하고 깊은 교역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세계의 급격한 경제적 군사적 대국으로 떠오르는 중국하고도 잘 지내야 한다. 이 같은 측면에서 우리는 연미, 화중이라는 말을 되새길 필요가 있다. 미국과 굳건한 군사적 경제적 동맹관계를 유지하면서 중국과도 각을 세우지 않고 사이 좋게 지내야 한다.
바로 이것이 우리가 왜 중국과 FTA를 해야 하는가 하는 답이다. 중국과 FTA를 맺어서 굳은 경제적 동맹관계를 맺게 되면 우리 기업이 중국시장 진출이라는 경제적인 측면뿐만이 아니라 우리나라의 통일 및 북핵문제 해결에 있어서도 중국의 역할을 기대할 수 있다.
두 번째로 우리 국민들이 우려하는 것은 국내산업에 대한 피해이다. 사실 우리가 칠레와 FTA를 할 때, 농산물의 피해를 상당히 우려했다. 그런데 생각만큼 피해가 크지 않았는데 여기에는 여러 가지 요인이 있다.
그 중 하나가 지리적인 요인으로 칠레는 태평양 건너편 미주대륙의 남쪽 끝에 있기 때문에, 포도나 농산물이 한국에 오는 데 상당히 시간이 걸린다. 운송도중에 농산물의 신선도가 떨어지기 때문에 우리나라의 소비자가 외면했다. 하지만 문제는 중국은 우리나라 바로 옆이기 때문에, 중국의 농산물이 금방 한국에 들어 올 수 있다.
산동성의 지형이나 토양, 기후조건이 우리나라와 비슷하다. 그래서 만약 우리나라와 중국과 FTA를 하면 중국의 운남성, 섬서성, 호남성의 농산물들이 들어오는 것이 아니고 거의 2/3 이상이 바로 비행기로 한 시간, 배로 하루 이틀 이면 한국으로 올 수 있는 산동성에서 재배되는 농산물, 즉 쌀, 마늘, 고추, 양파, 사과 등이 물밀 듯이 국내시장에 들어올 수가 있다.
또한 중국의 공산품이 우리나라에 들어오면 우리 중소기업이나 노동자들에게 피해가 클 수 있다. 하지만 재미있는 사실은, 외국의 경우를 보면 FTA를 하기 전에 우려했던 현상과 실제로 FTA 하고 나서 나타나는 현상은 일치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1980년대 중반에 미국과 FTA를 하겠다고 하니까 이스라엘에서는 반대가 심했다. 이스라엘과 같이 작은 나라가 세계최강의 미국과 FTA를 하면 이스라엘의 경제가 파탄에 이르고 엄청난 무역적자로 고전을 할 것이라 우려했다. 하지만 막상 1985년에 FTA를 하고 나서 보니 이스라엘이 많은 무역흑자를 보았다.
그리고 가깝게는 우리의 경우도 칠레와 FTA를 하면 국내 포도 재배 농가가 쑥대밭이 될 것이라고 많은 사람들이 걱정을 했지만 전혀 그런 문제가 나타나지 않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중국과 FTA를 할 때 막연한 걱정만 하기 보다는 각 산업별로 정말 어떤 일이 벌어질까에 대한 정확한 분석을 하여 적절한 대비책을 마련해야 한다.
또한 중국정부와 협상을 할 때 농산물이나 개방에 충격이 너무나 심각한 분야를 보호하기 위한 전략을 마련해야 한다. 하지만 우리 제조업이나 농업이 품질향상, 기술개발, 품질개량 등으로 미리 준비를 해 나간다면 위기가 기회로 바뀔 수도 있다.
왜냐하면 FTA라는 것은 한중 두 나라가 서로 문을 활짝 여는 것이기 때문에 그만큼 우리 공산품이나 농산물이 거대한 인구 12억의 중국시장으로 진출할 새로운 기회도 있는 것이다. 작년에 중국에 가보았더니 일본제 쌀이 중국의 고급슈퍼마켓에서 중국제 쌀보다 30배나 더 비싸게 팔리고 있었다. 이렇게 본다면 우리 쌀도 유기농 쌀, 친환경 쌀 등으로 고급 브랜드화 한다면 중국시장에서 중국 쌀보다 10배, 20배 가격으로 팔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쌀은 중국과 FTA를 하면 위기와 기회가 동시에 뒤섞여서 단정적으로 국내 쌀 산업이 피해를 본다고 우려할 수만은 없다. 오히려 우리가 잘만 활용한다면 우리 쌀이 거대한 중국시장으로 진출하는 기회가 될 수도 있다.
하지만 마늘, 고추, 양파의 개방은 막아야 한다. 이 3대 양념 채소는 소비자가 직접 선택하는 것이 아니고 요리를 할 때 섞여 들어가는 것이기 때문에 국내시장을 개방하면 우리 농민들에게 타격이 클 것이다.
공산품 분야에서는 우리가 경쟁력 있는 부분은 중국에 들어가고 중국이 경쟁력을 가진 제품은 국내시장에 들어오겠지만 우리나라가 경쟁국인 일본보다 앞서 중국과 FTA를 맺음으로써 중국 시장을 선점하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중국과의 FTA는 우리가 예상한 것보다 빨리 성사될 수도 있다. 중국과 파키스탄과의 FTA에서 보듯이, 때로 중국은 정치적인 목적을 가지고 상대국과 FTA를 한다. 경쟁상대국인 인도를 견제하기 위해서 파키스탄에 많은 양보를 하면서 FTA를 성사 시킨 것이다.
이 같은 측면에서 볼 때, 동아시아에서 미국과의 헤게모니 게임을 위해서 정치적으로 필요하다고 판단한다면 의외로 통 크게 나와 한중FTA를 성사시킬 가능성도 있다. 이 같은 중국의 대국주의적 FTA 협상 전략에 대해서도 우리 정부가 사전에 잘 준비를 하여 대응전략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오늘날 같은 무한경쟁시대에 우리나라가 진정 선진국으로 도약하고자 한다면, 경쟁국보다 앞서서 주요 경제권과 FTA를 맺어서 명실상부한 FTA허브국가가 되어야 한다. 이미 미국, EU와 FTA를 맺은 것에 이어 우리나라의 최대 경제협력 대상국일 뿐만 아니라 우리의 통일, 북핵문제 해결 등에 있어서 상당한 역할을 하는 중국과 FTA를 맺는다는 것은 역사적 의의가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