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음악, 경험 공유하며 예술로 성장... 게임 역시 같은 길"
"중독 없는 예술 없듯... 새로운 시각 필요"

"중독과 예술은 대립이 아닌 상호적인 관계다. 창작의 과정에서 몰입, 중독이 되지 않으면 예술이 될 수 없다. 중독이 다 나쁜 것은 아니다. 이런 관점에서 게임에 대한 새로운 이해가 필요하다."(이동연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알콜, 도박, 마약과 함께 게임이 중독 물질에 포함돼야 하느냐 말아야 하느냐에 대한 논란이 뜨겁게 일고 있는 가운데, 게임의 경우 영화나 음악처럼 예술이 될 수 있다는 다소 파격적인 제안이 나왔다. 

지난 18일 오후 국회도서관에서는 ‘게임, 중독인가 예술인가’를 주제로 정책토론회가 열렸다. 게임에 대한 부정적 인식과 4대 중독 물질이 되느냐 마느냐에 대한 원론적인 토론들이 주를 이뤄오고 있는 가운데 게임의 위상을 한층 높이려는 시도가 이뤄졌다. 

이날 토론회 사회에는 김정태 상명대 교수가 맡았으며 발제는 진중권 동양대 교수, 류임상 뉴미디어아티스트, 윤형섭 상명대 교수가, 토론자로는 이동연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이정웅 선데이토즈 대표, 남궁훈 게임인재단 이사장, 김인철 상명대 교수, 김일 한국콘텐츠진흥원 게임산업팀장이 참석했다.

먼저 진중권 교수는 "새로운 매체가 도입될 때에는 이에 대한 불신이 있으며 게임 역시 그러한 과정에 있는 것이다. 과거 오락으로 여겨졌던 영화가 오늘날 예술의 한 장르로 인정받듯이 게임 역시 머지 않아 오락과 스포츠의 면모를 가진 새로운 예술 장르로 여겨질 것"이라고 말했다. 

류현중 뉴미디어 아티스트는 게임이 예술인가라는 물음에 "그럼 예술은 무엇인가"라고 반문하며 "게임의 발전과 함께 성장하는 새로운 세대에게 게임은 환경이고 문화인 만큼 경험할 대상으로 예술을 선호하는 이 세대에게 무한한 예술적 경험을 가져다 줄 수 있는 새로운 캔버스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윤형섭 박사 역시 “여가생활로 많이 하는 게임은 우리의 문화이며 생활 속에 쉽게 적용되고 있다. 귀찮은 일을 재미있게 하거나 어려운 기술을 재미있게 배우기 위해 쉽게 게임을 접목하고 있는데다 게임에도 음악, 영화, 문학이 접목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렇듯 게임이 우리 생활에 문화로써 깊숙이 들어와 있는데 이를 예술이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고 강조했다. 

김정태 교수는 "미국에서는 팩맨, 테트리스, 심시티 등의 십여 종의 게임을 예술로 지정했다. 우리나라 역시 게임을 예술로 인정해 줘야 할 때"라고 덧붙였다. 

게임에 대한 편견, 어디서부터인가?

애니팡을 만든 이정웅 대표는 "게임 천만 시대가 오기 전에는 게임방에서 온라인 게임을 하던 인식이 강하다 모바일 게임이 나오고 인기를 끌면서 인식이 조금씩 바뀐다. 게임에 대한 편견을 해소할 정확한 이해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진중권 교수는 "공부할 시간에 게임을 하니 나빠 보이는 것이다. 게임을 안 하면 공부할 거라고 생각한다"고 지적했다. 

김일 팀장은 "편견이 생긴 데에는 폭력성과 중독 두 가지 요인이 있다. 폭력의 원인에 대한 조사를 해보니 부모님들은 학교 폭력이 게임이나 미디어의 영향 때문이라 생각하고 한국에서는 처벌이 없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청소년들은 친구를 사귀기 위해 게임을 한다고 응답했다. 학부모와 청소년들 사이에 이해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남궁훈 이사장은 "게임에 부정적 측면이 존재하지만 사회에서 이를 바라보는 시각은 과대포장됐다. 음악이나 영화는 부모 세대도 경험한 익숙한 것이기에 끝이 어디인지 알지만 게임을 경험하지 못 해 두려운 것이다. 경험하지 못 한 것에서 오는 두려움"이라고 설명했다. 

게임, 예술이 될 수 있나?

진중권 교수는 "게임을 중독으로만 보지 말고 예술적인 측면을 조명하자는 것이다. 예술이라고 말하는 것들의 특징을 들어 게임을 보자는 것이다. 예를 들어 예술로 인정되는 영화라 해서 모든 것이 다 뛰어난 것은 아니다. 그렇다고 예술이 아니라고 부정하지는 않는다. 르네상스 시대에 회화는 예쑬이 아니었다. 원근법이 필요했고 이는 기하학으로 연결됐다. 성격이 바뀌다 보니 명망도 바뀌었다. 게임 문화를 그렇게 가져가자는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류임상 아티스트는 "10년 전에도 미디어 아트가 예술이냐는 논란이 있었지만 여러 미디어에 익숙해 지면서 예술이 됐다. 시기적인 문제인 만큼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레 갈 것이다. 예술성이 부족한 게임이 있지만 그 때문에 모든 것이 예술성이 없다고 평가 절하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덧붙였다. 

게임 중독법 왜 나왔을까?

이동연 교수는 "정신 의학계의 이해관계가 반영됐기 때문이다. 몇 년 전까지만해도 게임 중독에 대한 연구가 없다가 2년 전부터 중독의학회가 게임 중독을 다루기 시작했다. 비지니스 영역으로의 필요성을 느낀 것 같다. 개신교에서는 교회에 안나간다는 이유로, 부모들은 공부를 안한다는 이유로 서로의 암묵적 이해관계가 게임규제의 배경이 된 것 같다"고 비판했다. 

김일 팀장은 "게임이 등장해 교육에 들여야 할 시간을 게임에 소비하게 하니 엄마들이 분개하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진중권 교수는 "게임 몰입 문제는 부모에게 있는데 그런 환경을 만든 자신들이 반성하지 않고 해결하기 위해 문제의 이유를 게임에 둔 것"이라고 지적했다. 

남궁훈 이사장 역시 이에 동의하며 "한 다큐멘터리를 보면 엄마가 애를 방치해, 외로워서 게임에 중독된 경우도 있다. 실제 원인 진단을 하지 않고 게임이라는 쉬운 결론을 내리려고 하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봐야 한다"고 말했다. 

게임의 예술화, 업계 '실천 의지' 있어야

진중권 교수는 게임을 예술로 만드는 데에는 '실천 의지'가 중요하다고 역설했다. 그는 "게임 업계들이 돈을 벌면서 창의적인 게임, 모범적인 게임을 만들기 위해 과감한 투자를 해야 한다. 사용자들이 비평하고 만드는 사람이 될 수 있는 문화를 만들어야 한다. 게임에도 문화가 만들어져야 한다"고 말했다. 

윤형섭 교수 역시 실천 의지를 강조하며 "게임은 예술이기도 문화이기도 생활"이라고 말했다. 그는 게임을 칼에 비유하며 "어떤 사람은 칼로 아픈 사람을 수술하고, 어떤 이는 과일을 깎고, 어떤 이는 강도짓을 한다. 잘못 쓰는 사람 때문에 법을 만들지는 않는다. 없어도 된다. 게임을 어떻게 바라보는가, 그에 대한 시선이 바뀌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남궁훈 이사장은 게임 업계 스스로도 게임을 대하는 인식을 바꿔야 한다고 지적하며 "게임 산업이 빠르게 성장하다 보니 사회 내에서 어떤 의미를 갖고 있는지 자각하지 못했다. 매출 중심으로 쉽게 생각했기 때문에 나타난 결과도 분명 있다"고 말했다. 

이정웅 대표 또한 "게임 업계가 매출을 줄이고 장기적으로 문화, 교육으로써의 자기 정체성을 고민해야 한다"고 꼬집었다. 그는 우리나라 게임 산업 규모에 비해 문화 연구 수준이 낮다면서 "게임 중독법이 발의된 것도 욕 먹을 만한 빌미를 게임 업계가 제공했다"는 자성의 목소리를 내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