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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유가가 배럴당 50달러 밑으로 내려가면서 연간 물가상승률이 0%대로 떨어질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저물가 기조가 디플레이션(경기침체 속 물가 하락)을 초래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까지 제기된다.
8일 금융권에 따르면, 작년 말부터 이어진 국제유가 급락에 따라 국내외 금융사들이 속속 물가 전망치를 하향조정하고 있다.
삼성증권 이승훈 이코노미스트는 최근 낸 경제전망 수정보고서에서 올해 연간 소비자 물가상승률 전망치를 기존 1.4%에서 0.9%로 하향 조정했다. 최근 유가 급락에 따른 수정된 유가 전망치를 반영한 결과라는 설명이다.
앞서 스위스 투자은행 크레디트스위스도 지난달 낸 보고서에서 올해 한국 소비자물가 상승률 전망을 기존 2.9%에서 0.9%로 대폭 낮췄다.
크레디트스위스는 "소비자물가를 구성하는 품목에 연료제품의 비중이 큰 점을 고려했다"고 조정 사유를 설명했다.
올초 담뱃값 인상이 소비자물가 상승률을 0.6%포인트 올리는 효과가 있는 점을 고려할 때, 이를 제외하면 물가상승률이 사실상 0.3%로 떨어질 수 있다는 의미다.
연간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0%대를 기록한 적은 외환위기 직후인 1999년의 0.8%가 유일하다.
0%대 물가상승률 전망이 소수 견해이기는 하지만 최근 수정 발표된 다른 금융기관의 물가 전망치도 크게 다르지는 않다.
주요 투자은행들은 최근 낸 보고서에서 한국의 올해 소비자물가 상승률을 1%대 중반으로 내다보고 있다.
프랑스 BNP파리바가 상승률을 1.5%로 추정했고, 미국 씨티는 1.6%, 영국계 HSBC는 1.7%로 각각 전망했다. 모두 한국은행의 중기 물가안정목표범위(2.5∼3.5%)의 하단을 한참 밑도는 수준이다.정책당국도 이미 물가상승률 하향 조정을 기정사실화하고 있다.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는 지난달 금융통화위원회 직후 연 기자간담회에서 유가 하락세를 언급하며 "물가 전망치의 하향 조정이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한은은 이달 공개할 수정 경제전망 발표 때 유가 하락에 따른 여건 변화를 반영할 예정이다. 한은은 작년 10월 경제전망 때 올해 소비자물가 상승률을 2.4%로 내다봤었다.
한국개발연구원(KDI)도 전날 낸 보고서에서 국제 유가가 배럴당 연평균 49달러까지 하락하면 60달러에 머물 때보다 물가상승률이 0.4%포인트 하락할 것으로 추산, 최근 유가 수준이 이어질 경우 물가 추가하락이 불가피하다는 분석을 내놨다.
문제는 낮은 물가상승률이 내수 부진과 맞물려서 발생하고 있다는 점이다.
실제로 최근 발표된 11월 전 산업생산 지표는 전월보다 0.1% 늘어나는 데 그쳐 경기회복세가 둔화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가 커졌다.
지난달 소비자물가지수 상승률은 전년 동월 대비 0.8%를 기록해 월간 기준으로 1999년 9월 이후 15년 만에 처음으로 1%대 밑으로 떨어지기도 했다.
일각에서는 이 때문에 한국경제가 일본 사례와 같은 디플레이션 국면에 접어드는 것 아니냐는 우려를 내비치고 있다.
이에 대해 정책당국은 유가 하락의 긍정적인 효과를 강조하며 디플레이션 우려를 일축하고 있다.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7일 경제관계장관회의에서 "디플레이션은 주로 수요 부족으로 발생하는데, 이번 국제유가 하락은 공급 요인에 의한 것"이라며 "수요 측면에 따른 디플레이션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고 강조했다.
전문가들은 저물가 우려가 경제심리에 영향을 미쳐 물가하락을 더 부추길 수 있다는 점을 주목한다.
KDI의 김성태 연구위원은 "지금의 유가 하락 원인은 상당 부분 공급 측에 있고, 이 경우 생산성이 올라가며 제품 가격이 떨어지면서 수요 확대가 기대돼 부정적으로만 볼 필요는 없다"면서도 "다만 물가 하락 압력이 경제 주체의 기대 인플레이션 하락으로 이어지는 부분을 주의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