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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건설사 1호 상장회사였던 경남기업이 42년만에 증시에서 퇴출됐다. 한때 22만원이 넘던 주가는 마지막 날 113원에 그쳤다.
경남의 몰락을 지켜보던 호사가들은 "보물선에 손대면 망한다"는 보물선의 저주를 입에 올리고 있다. 동아건설과 경남기업 등 2000년대 초반 잇따라 보물선 탐사에 나섰던 기업들이 모두 오욕만을 남긴 채 뒤안길로 사라졌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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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러일전쟁 때 금괴 운반 중 동해에서 침몰한 러시아 보물선 돈스코이호를 찾았다'는 내용의 기사가 대한민국을 떠들썩하게 했다. 금괴 추정치가 50조~150조에 달할 것이라는 뜬소문에 투자자가 몰리며 당시 동아건설 주가는 폭등했다.
하지만 탐사 자금 지원을 맡은 동아건설이 부도나고 이후 어렵사리 경영권을 회복한 최원석 회장이 배임·명예훼손 등 혐의로 구속되면서 이 프로젝트는 결국 수면 아래로 가라앉고 말았다. 이듬해 동아건설은 법정관리 폐지결정을 받아 결국 주식상장이 좌절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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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슷한 시기인 2003년 해저유물 발굴업체인 골드쉽이 인천 옹진군 해상에서 청나라 목선 '고승호'를 인양한다는 소식이 전해져 다시 한번 온나라가 떠들석했다. 1894년 기준으로 약 1100억원 가치의 은을 싣고 있었다고 했다. 고승호에서 건져올린 것이라며 은화와 1량짜리 은괴까지 공개했다.
당시 이 회사에 33%를 투자한 대아건설은 대박이 났다. 주가는 급등했고 그 해 매출은 50% 이상 뛰어올랐다. 그렇지만 발굴허가권을 쥔 문화재청은 시큰둥했다. 유물의 진위가 불분명한데다 앞서 동아의 사례에서 보듯 주식시장에 혼란만 초래한다는 점을 고려해 허가권을 내주지 않았다.
허망한 보물선 사례는 더 있다. 2000년 11월, 한 해저유물 발굴업자가 군산 앞바다에 침몰한 보물선 '쾌창한'을 인양한다며 나섰다가 투자자의 돈만 가로챘다. 2001년 죽도 해저 보물 탐사에 뛰어든 삼애인더스도 주식이 무려 5배나 뛰기도 했다. 당시 이 회사는 보물 사업의 가치가 20조에 달한다며 투자를 유치했으나 이른바 '보물 게이트'에 휘말려 불행한 결말을 맞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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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업계에서는 "보물선 사업은 패가망신해야 끝이 난다고" 말한다. 한번 대박 환상에 빠져들면 도무지 헤어날 수가 없다는 얘기다.
물론 동아와 경남 몰락의 직접적인 이유가 '보물선' 사업 때문만은 아니다. 그러나 두 회사의 총수가 모두 기업가 정신 보다는 로비와 시류에 편승해 신기루를 쫓았다는 점에서 닮아도 참 많이 닮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