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국어원, 1992년부터 갓길로 순화… 공문서 등 행정용어부터 순화 필요
  • ▲ 세종시 금남교 확·포장공사 현장에 세워진 '길어깨 없음' 안내 선간판.ⓒ뉴데일리경제
    ▲ 세종시 금남교 확·포장공사 현장에 세워진 '길어깨 없음' 안내 선간판.ⓒ뉴데일리경제

    국토교통부의 도로 관련 산하기관들에서 일본말 잔재인 '길어깨'라는 표현을 순화하지 않고 쓰고 있어 눈총을 사고 있다.

    국립국어원이 1992년부터 길어깨를 갓길로 순화해 쓰도록 하고 있지만, 23년간 순화하지 않은 채 도로 선간판, 공고문 등에 여전히 사용 중이다.

    10일 현재 국토부 홈페이지에서는 길어깨라는 단어가 포함된 각종 문서자료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언론에 배포하는 참고·해명자료부터 국토교통용어, 공사 입찰안내, 행정정보공개 자료 등에 폭넓게 쓰인다.

    익산지방국토관리청은 지난달 국도 2호선 정비공사와 관련해 토지 보상 공고문을 내면서 해당 공사명에 갓길 대신 길어깨라는 표현을 썼다.

    고속도로 등 각종 도로 공사 현장에 세우는 선간판에서도 길어깨라는 표현이 자주 목격된다.

    지난 10월5일부터 공사에 들어간 세종시 금남교 확·포장공사 현장에도 '길어깨 없음'이란 선간판이 다리 앞쪽에 세워졌다. 이 공사는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시행청이다.

    한국도로공사가 관리하는 고속도로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공사구간 곳곳에 세워진 안내 표지판에 '길어깨 없음'이란 표현을 쓰고 있다.

    길어깨는 고속도로나 자동차 전용도로 따위에서 자동차가 달리는 도로 폭 밖의 가장자리 길이란 뜻으로, 갓길을 말한다. 긴급차량이 지나가거나 고장 난 차량을 임시로 세워 놓기 위한 길이다.

    이 말은 얼핏 순우리말처럼 들리지만, 국적이 불분명한 말이다. 영어의 로드 숄더(road shoulder)를 우리말로 직역한 것처럼 보이지만, 도입 순서를 따져보면 일본사람들이 먼저 직역해 만든 '로가타'(ろかた)란 일본말의 한자 '노견'(路肩)에서 따왔다. 노견이란 한자를 다시 우리말 표현으로 고친 것이다.

    이 때문에 국립국어원은 1992년 국어순화집에서 일본말 찌꺼기인 길어깨를 순화대상으로 정하고 갓길만을 표준어로 쓰도록 다듬었다.

    국립국어원 관계자는 "일부 단어는 순화 대상인 말과 다듬은 말(순화어)을 함께 쓸 수 있게 하고 있지만, 길어깨의 경우 일본어식 표현이어서 갓길만을 쓰도록 하고 있다"며 "행정기관에 관련 행정용어를 순화해 쓰도록 협조를 구하고는 있으나 강제력이 없다 보니 잘 지켜지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도로공사 한 관계자는 "요즘은 길어깨란 표현을 잘 쓰지는 않는 것으로 안다"며 "공사 현장의 경우 기존에 제작했던 선간판을 재활용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