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상적 관점에선 벗어나지만 절차 문제없어…업계 '심증만'인수후보군 "진정성 있나"에 현대 "가격 맞으면 판다"반복
  • 현대증권 매각을 두고 현대그룹과 인수 후보군들과의 신경전이 시간이 갈수록 극에 달하고 있다. 관건은 매각의 진정성으로, 인수 후보군들은 갈수록 매각의도에 대한 의심을 살만한 일들을 현대그룹이 벌이고 있다는 주장이다. 반면 현대그룹은 '가격만 맞으면 판다'는 입장을 여전히 유지하고 있다.

     

    8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유력 인수후보군들과 업계 일각에서는 현대증권이 재매각 추진 시점부터 시작된 의문점은 여전히 지속되고 오히려 늘어나고 있다는 주장을 보이고 있다.


    ◆'회사 재건'발표 한달여 만에 다시 M&A시장에 매물로


    갑작스럽게 재매각을 추진하게 됐다는 점부터 의혹은 출발한다. 지난해 10월 오릭스PE(프라이빗에쿼티)와 경영권을 매각하는 것처럼 꾸미고 일정 기간 뒤 다시 지분을 되사는 계약을 말하는 파킹딜 논란 끝에 매각이 무산된지 4개월 만에 현대증권은 다시 M&A(인수합병)시장에 나왔다.


    특히 오릭스와 매각 무산 이후 현대증권은 매각의지를 접고 올해를 재도약의 원년으로 선포하며 전열정비를 이미 끝마쳤다는 점에서 재매각 추진은 갑작스런 결정으로 업계는 보고있다. 그만큼 현대그룹의 자금난이 심각하다는 의미도 담겨 있지만 1조6000억원의 시총, 자기자본 최소 3조원 이상의 종합금융투자사업자가 몇개월을 두고 매각에 대한 입장을 바꿔 업계에 충격을 줬다.


    특히 지난해 12월 윤경은 사장은 노사 대타협을 바탕으로 올해 차별화된 투자은행(IB)·인터넷은행 특화 증권사로 키우고, 주주들을 위한 적극적인 배당정책을 실시하며 회사를 재건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매각이슈와 노사불화로 한동안 흔들렸던 회사를 빠른시일 내에 정상궤도에 진입시켜 자금난에 빠진 현대그룹(현대상선)에 고배당을 지속해 그룹의 캐시카우 역할을 하겠다는 의지를 읽을 수 있었다. 그러나 윤 사장의 발언 약 45일 만에 현대그룹은 다시 현대증권을 M&A시장에 내놨다.


    ◆끝까지 지켜낸 우선매수청구권


    현대증권의 재매각에 대한 업계의 또 다른 의구심은 우선매수청구권이다. 지난해 오릭스PE와의 매각작업 당시 파킹딜 논란으로 매각의 진정성을 의심받았던 상황에서 현재는 우선매수청구권으로 논란이 옮겨져 인수 후보군들과 마찰을 빚고 있다.


    현대그룹 입장에서는 상징이자 돈줄인 현대증권을 쉽게 팔아버릴 수 없는 상황이다. 이에 따라 현대증권을 지키기 위해 쥐고 있는 마지막 카드가 바로 현대엘리베이터의 우선매수청구권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제3자에 매각되기 전 주식을 먼저 매수할 수 있는 권리인 우선매수청구권을 보유하게 되면 현대증권 인수전 경쟁입찰을 통해 우선협상대상자가 선정되더라도 현대엘리베이터가 현대증권(지분)에 대해 우선매수청구권을 행사하면 현대증권은 현대엘리베이터가 살 수 있다.


    이 경우 현대증권의 대주주는 현대상선에서 현대엘리베이터로만 바뀌는 것으로 현대그룹 입장에서는 현대증권을 지킬 수 있다.


    반면 인수후보군들은 우선매수청구권이 매각 진정성을 흐리는 것이라고 맞섰다. 이에 현대증권 측은 우선매수청구권 행사 조건을 완화했지만 헐값 매각을 방지하기 위해 완전히 포기하지는 않았다. 우선매수청구권 포기를 두고 현대그룹과 인수후보군 간에 수개월 동안 공방이 지속됐지만 현대그룹은 우선매수청구권 포기는 배임 문제로 이어진다고 맞서며 이를 결국 지켜냈다.


    현대그룹 관계자는 "기준가격 이상에서 최고 응찰자가 나올 경우 현대엘리베이터는 우선매수청구권을 행사하지 않고, 기준가격 이하로 응찰될 경우 현대엘리베이터가 기준가격으로 우선매수청구권을 행사할 수 있게 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업계 관계자는 "현대엘리베이터가 우선매수청구권을 갖고 있는 상황에서 기준가격을 미리 써내고, 이후 응찰자들이 제시한 가격을 열어본 다음 원하는 가격이 나오면 매각하고, 그렇지 않으면 현대엘리베이터가 우선매수청구권을 행사해 현대증권을 사겠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우선매수청구권 쥐고 몸값 마지노선 제시…적정가는 얼마?


    우선매수청구권 이슈가 어느 정도 정리된 이후에는 가격에 대한 공방이 시작됐다. 현대그룹은 공식 또는 비공식적 창구를 통해 현대증권에 대한 구체적 몸값 수준을 시장에 알리기 시작했고, 인수후보군들은 몸값 띄우기 전략이라며 불만을 나타내고 있다.


    IB업계에 따르면 현대그룹은 현대증권 입찰가 마지노선을 6500억원으로 잡고 있고, 7000억원 이상을 보고 있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하지만 인수후보군들은 경쟁입찰이지만 우선매수청구권을 보유해 인수전에서 훨씬 유리한 현대그룹이 일찌감치 현대증권 지분 22.56%에 대한 기준을 제시한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우선매수청구권을 무기로 희망가격을 사전에 제시하는 점, 이전에 제시한 가격 자체가 높다는 의견도 나온다. 인수후보군들은 현대증권의 현 주가수준을 고려하면 장부가가 3400억에 불과하기 때문에 현대그룹이 제시한 6500~7000억원의 가격은 프리미엄이 너무 높다는 주장이다.


    물론 이와 관련해서는 현대그룹이 보고 있는 6500~7000억원의 매각대금이 대우증권 매각가와 비교했을 때도 크게 무리한 것은 아니라는 분석도 나온다.


    업계 한 관계자는 "회사의 재무구조 및 사업성을 감안하지 않고 지분구조를 기준으로만 판단했을 때 대우증권 지분 43%가 2조3800억원의 가치를 시장에서 인정받았다는 점을 상기해 현대증권 인수전과 비교해보면 알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산업은행이 매각한 대우증권의 지분 43%에 비해 현대증권 매각지분 22.56%는 절반(50%) 수준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매각가격은 대우증권의 25%(4분의 1) 수준으로 책정되는 것이 맞다"며 "결국 대우증권 지분 43%의 매각가격 2조3800억원의 4분의 1은 6000억원 가량으로 현대그룹 역시 이를 참고했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다만 인수후보군들은 철저한 실사를 통해 현대증권의 재무상태와 리스크 등을 점검해 적정 가격을 산출하길 원하고 있는 반면 현대증권이 실사 과정에서 충분한 자료를 제공하지 않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는 점에서는 현대증권과 그룹측의 해명이 필요하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매각 코앞에 두고 이사진 교체…광고모델도 새 계약


    인수후보군들이 제기하는 매각의지에 대한 또 다른 의문점은 이사회 교체다. 매각을 코앞에 두고서도 현대증권이 사내외 이사 7명 중 4명을 교체했기 때문이다.


    현대증권은 지난 2일 이사회를 열고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이사회 의장) 등 사내이사 2명과 사외이사 4명의 선임 안건을 오는 18일 열리는 주주총회에 올리기로 했다.


    현재 현대증권 이사회는 현 회장과 윤경은 현대증권 사장 등 사내이사 3명과 김상남 사단법인 노정회 회장 등 사외이사 4명으로 구성돼 있다. 재선임되는 현 회장과 김상남 사외이사, 임기가 남은 윤 사장을 제외한 이사진 4명이 교체되는 것으로 업계는 매각작업이 한창 진행 중인 상황에서 절반 이상의 이사진을 교체하는 이유에 대해 의문을 나타내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현대증권이 정상적으로 매각작업을 진행할 경우 신규 이사진의 임기는 길어야 2~3개월에 불과하다"며 "통상적으로 M&A가 임박한 상황에서는 대표이사를 비롯한 등기이사 등을 스스로 교체하는 경우가 없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인수후보군 입장에서는 충분히 의심을 할 수 있는 사안"이라고 말했다.


    현대증권 측은 "임기만료에 따른 절차로 다른 의미는 없다"고 밝혔다.


    광고모델을 교체했다는 점도 눈길을 끈다. 현대증권은 지난 3년 가량 동안 광고모델을 맡아왔던 배우 다니엘 헤니와 재계약을 하지 않는 대신 미국 시애틀에서 뛰고 있는 이대호 선수를 새 광고모델로 교체했다. 빠르면 상반기 중 매각작업이 완료될 것으로 보이는 상황에서 이례적인 행보다.


    현대증권 측은 "내부적으로 다니엘 헤니가 너무 오랜기간 회사의 얼굴로 활동해 변화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나와 광고모델을 교체했다"면서 "회사가 매각되더라도 이대호와 계약된 1년치 모델료는 차질없이 지급할 것"이라고 말했다.


    ◆1100억 '통근 배당' 실시…현대상선에 265억 선물


    마지막으로 업계는 현대증권이 올해 실시한 '통큰 배당'에 대해서도 관심을 갖고 있다.


    현대증권은 지난 2일 이사회에서 2015회계연도 결산배당으로 보통주 1주당 500원의 현금배당을 실시키로 했다. 배당금 총액은 지난해 당기순이익 2796억원의 39%에 이르는 약 1100억원으로 이 가운데 265억원 가량이 현대상선으로 들어간다.


    현대증권이 1000억원대의 배당금을 푼 것은 이례적인 일로, 윤경은 사장의 '공약'과 함께 현대그룹의 자금난이 맞물린 결과로 풀이된다.


    다만 이번 통큰 배당이 현대증권이 그룹에 안기는 마지막 선물이 될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안갯속이다.


    이처럼 현대증권 매각을 두고 여러가지 의문이 제기되고 있는 상황이지만 의혹이 쌓일수록 불안하고 불리한 쪽은 인수후보군이 될 수 밖에 없다.


    현대증권과 그룹은 "매각을 할 것"이라는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특히 우선매수청구권이나 이사회 교체, 배당 등은 절차에 따라 위배되는 부분 없이 진행돼 심증적인 점 외에는 논란의 여지가 없다.


    업계 관계자는 "결국 인수전이 끝나고 결과를 열어봐야 현대그룹의 속내를 알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다만 "만약 현대증권이 현대엘리베이터로 넘어간다면 현대그룹이 현대증권 매각없이 자금난을 해결할 수 있을지에 대한 부분은 그룹이 풀어야 할 숙제이며, 업계 신뢰도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에 최근에 매각을 둘러싸고 제기되는 의혹들은 현대증권의 몸값을 최대한 높이기 위한 전략의 일환으로도 볼 수 있다"고 말했다.


    한편 현대증권 매각 자문사인 EY한영 회계법인이 인수 후보 6곳에 이번 주중 1차 투자 안내서를 발송한다.


    인수 후보들이 가격과 자금 조달 계획을 써내는 본입찰 마감일은 오는 24일로 잠정 결정됐다.


    인수에는 한국금융지주와 KB금융지주를 비롯해 파인스트리트 등 국내외 사모펀드(PEF) 4곳이 관심을 보이고 있는 가운데 일부 후보군은 실사 자료 및 협조가 부실하다고 주장하면서 불만을 나타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