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차 회의서 노동계 심의구간 제출 요구했지만, 노사 합의 요청에만 연연경영계 "여소야대 정국 정치권 눈치 살핀다" 불만도… 12차 회의 분수령 될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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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년도 최저임금 논의가 공전하는 가운데 노사 간 이견을 조율해야 할 공익위원이 제구실을 못한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공익위원이 논의를 진척하기 위한 윤활유 역할을 하기보다 언론과 정치권의 눈치를 살핀다는 지적이 나온다.
12일 최저임금위원회에 따르면 전날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제11차 전원회의에서 최저임금 결정기준인 생계비 관련 토론에 이어 수정안 제출을 논의했지만, 노사 간 견해차가 커 수정안 제출이 이뤄지지 않았다. 노동자·사용자·공익위원은 12일 제12차 전원회의에서 논의를 계속하기로 하고 합의가 늦어지는 경우를 대비해 오는 15, 16일 제13, 14차 회의를 열기로 일정을 잡았다.
애초 위원들은 늦어도 제12차 전원회의까지는 심의를 종료하기로 의견을 모았었다. 수정안을 제출한 당일 이견을 좁히기 어려운 만큼 적어도 11일에는 노사 양측이 수정안을 냈어야 한다는 얘기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이날 공익위원의 심의촉진구간 제출이 논의됐다는 점이다. 심의촉진구간은 노사 간 협상이 어려울 때 공익위원이 최저임금 인상안의 상·하한선을 제시하는 것을 말한다. 위원회 설명대로면 이날 노동자위원 측에서 공익위원 측에 심의촉진구간 제출을 요구했다.
공익위원 측은 "어느 일방의 요구로 공익안을 낼 수 없다"며 노사 합의로 요청하는 경우에 (심의구간을) 제시하는 게 위원회 전통"이라고 노사 합의를 요청했다.
사용자위원 측은 합의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하지만 노동자위원 측이 노사합의는 어렵다고 밝혀 심의촉진구간 제출이 무산됐다.
한 사용자위원은 "노동자 측은 (공익위원 측에서) 심의구간을 내보든지 해라 그러면 우리가 보겠다는 뉘앙스였고, 공익위원 측은 심의구간이 마음에 안 들더라도 (노사 양측이) 회의장을 뛰쳐나가지 않고 논의를 계속하겠다는 담보가 없으면 못 내겠다는 분위기였다"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이에 대해 노동계 관계자는 "노동자위원 측은 견해차가 큰 상태에서 수정안을 내는 것은 무의미하고 신의 한 수가 필요한 만큼 공익위원이 중재안을 내면 반대하지 않는다는 뜻을 이미 밝힌 상태였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공익위원이 조율 기능을 상실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제기된다. 노사 양측의 견해차가 첨예한 가운데 노동자 측에서 먼저 심의촉진구간 제출을 요구하고 나섰고, 사용자 측도 사실상 동의했는데 공익위원이 이를 놓쳤다는 것이다.
노동계는 공익위원이 여론의 눈치를 살피느라 본연의 조율 기능을 잃었다고 지적했다. 공익위원은 2007년 이후 매년 협상에서 중재안을 냈다. 노·사 합의가 결렬된 2009년 이후 공익위원은 총 7번의 중재안에서 결과적으로 6번 사용자 측 인상안 쪽으로 기울었다. 노동계는 올해도 캐스팅 보트를 쥔 공익위원이 사용자 측 손을 들어줄 가능성이 크다고 우려한다.
노동계 관계자는 "공익위원이 노사 합의에 따른 요청에 연연해 하며 소극적인 모습을 보이는 배경에는 이런 심적 부담이 있는 것 같다"면서 "공익위원 사이에서도 심의구간 등에 대한 의견이 분분해 내부논의조차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듯하다는 게 더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다른 노동계 관계자는 "예전에는 공익위원이 노사 양쪽을 다니며 물밑조율도 했는데 지난해부터는 그런 모습이 안 보인다"고 아쉬워했다.
사용자위원 측도 공익위원의 소극적인 행동에 불만을 나타내기는 마찬가지다.
경영계 관계자는 "공익위원이 이렇게까지 소극적인 적이 없었다"며 "예전에는 필요하면 소리도 지르고 막후협상도 벌이곤 했는데 뭐가 무서운지 제 역할을 못 한다"고 밝혔다.
이어 "제20대 국회에서 여소야대 국면이 됐고 전체회의를 할 때마다 회의장에 여야 의원들이 찾아온다"며 "의회 권력이 야당 쪽으로 기울어서 그런지 예년과 달리 소극적이다"고 부연했다.
한편 내년도 최저임금 논의는 이날 분수령을 맞을 것으로 전망된다. 공익위원의 심의촉진구간 제출과 관련한 논의가 이어질 것으로 보이는 가운데 노사가 공익위원의 합의 요청에 긍적적인 태도를 보일 경우 논의가 급물살을 탈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