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수기에 겨울시즌 대비 배 축소 조정시기 겹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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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한진해운의 법정관리행과 관련해 대체 선박 투입을 지원하기로 했지만, 녹록지 않을 거라는 전망이 나온다. 원양항로가 성수기인 데다 글로벌 선사들이 해운 경기 악화를 이유로 선박 운영을 빡빡하게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시기적으로도 서비스를 축소 조정하는 겨울 프로그램을 짜는 때와 맞물렸다. 운임이 오르고, 대형 화주보다 중소 규모 화주가 직격탄을 맞을 것으로 보인다.
1일 해양수산부에 따르면 원양항로는 현재 한창 성수기다. 8월부터 10월 초까지 성수기로 본다. 해수부가 한진해운과 계약을 맺은 한국발 화물이 대체 선박 섭외에 어려움을 겪을 것으로 보는 이유다.
해수부는 미선적 화물의 경우 현대상선을 구원투수로 올린다는 복안이다. 한진해운의 단독 배선 노선(미주 3, 구주 1) 중 미주 1개(4척), 구주 1개(9척) 노선에 현대상선의 배를 투입한다. 다른 항로에 대해선 한진해운이 가입한 국제해운동맹(CKYHE)과 외국 선사에 뱃짐 재배치를 요청할 계획이다. 해수부 관계자는 "물동량보다 선박이 과잉공급된 상태로 세계적으로 배는 남아도는 상황"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대체 선박 투입이 쉽지 않을 거라는 분석이 제기된다. 김우호 한국해양수산개발원(KMI) 해운해사연구본부장은 "성수기이기도 하지만, 오랫동안 해운업 불황이 이어지면서 글로벌 선사들이 수지 악화로 선박을 타이트하게 운영하고 있다"며 "지금은 예약할 수 있는 공간이 별로 없다"고 말했다. 선박 과잉공급으로 배는 남아돌아도 정작 예약할 공간은 부족하다는 얘기다.
설상가상 글로벌 선사는 겨울 프로그램을 짜고 있다. 비수기에 대비해 운항할 배들의 크기를 줄이는 것이다. 가뜩이나 부족한 예약 공간이 더 협소해질 것으로 전망된다. 김 본부장은 "지금은 선사들이 성수기가 끝난 후 노선에 따라 대형선을 조금 작은 선박으로 교체하는 계획을 세우는 시점"이라며 "선사들이 서비스를 축소 조정하는 때에 (한진해운 법정관리로) 물량이 터졌다"고 설명했다. 김 본부장은 "현재의 모든 세계해운동맹(얼라이언스)이 내년 1분기를 기준으로 재편된다"며 "글로벌 선사들이 화물을 자기 쪽으로 가져온다는 게 먼저 확약 돼야 지금 준비하는 계획을 수정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어렵게 뱃짐을 실을 예약 공간을 찾더라도 비싼 운임은 불가피해 보인다. 김 본부장은 "선사들이 기다렸다는 듯이 예약 공간이 없다며 운임을 올려받으려 할 것"이라고 말했다.
대형 화주보다 중소 화주가 선박난에 직격탄을 맞을 것으로 보인다. 김 본부장은 "한진해운의 글로벌 물량이 많아서 외국선사들이 기다렸다는 듯 대형화주 특히 삼성, LG 등과 타진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대형 화주의 경우 글로벌 선사들의 우량 화물 쟁탈전이 벌어질 수도 있다는 관측이다.
해수부는 중소 화주 지원에 대해선 심각한 경영 위기가 발생하면 금융감독원과 채권은행 주도로 금융지원이 이뤄질 거라는 태도다. 냉동화물 등의 피해는 보험으로 처리하고, 중소업체 피해는 중소기업 금융애로상담센터에서 한진해운 협력업체 피해와 함께 일괄적으로 대응한다는 설명이다.
한편 글로벌 선사의 국내 우량 화물 쟁탈전은 대형 화주에게 딜레마가 될 수 있다. 해수부는 현대상선이 한진해운의 빈자리를 메워주길 바란다. 시장의 운임가격 안정화를 위해서라도 현대상선에 일감을 몰아줘 덩치를 키울 필요가 있다는 견해다. 윤학배 해수부 차관은 지난달 31일 해운·항만·물류 비상대책회의 후 가진 브리핑에서 "원양 물동량의 20%쯤은 남은 국적 선사로 보완할 수 있으면 좋겠다 하는 바람이 있다"며 "(현대상선이) 양대 선사 체제에서 처리하던 물량의 70%는 맡았으면 한다"고 강조했다.
그동안 국적 선사가 처리하던 선복량은 105만TEU(1TEU=20피트 컨테이너 1개)로 한진해운 63만TEU, 현대상선 42만TEU쯤이다. 윤 차관 설명은 앞으로 현대상선 선복 처리물량이 70%쯤인 73만5000TEU까지 올라야 한다는 얘기다. 해수부 관계자는 "현대상선마저 위태로워지면 외국 선사가 가격을 장난질할 우려가 있다"며 "가격 안정화의 안전핀 역할을 위해서라도 국내 화주들에게 순망치한(脣亡齒寒)이 될 수 있음을 상기하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발등에 불이 떨어진 대형 화주로선 쏟아지는 물량을 현대상선에만 의지할 수 없는 처지다. 글로벌 선사가 계약을 타진하며 장기계약을 요구할 수 있는 만큼 난감한 상황에 부닥칠 수 있다는 의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