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통업계 ‘초저가 전쟁’ 돌입 사실상 연중 세일, 유통업계 마이너스 성장소비심리 고꾸라지고 경기지표 제자리 '디플레이션' 우려도
  • ▲ 유통 업계의 지난 한 해를 돌이켜보면 내수 침체가 얼마나 심각한 수준인지 확인할 수 있다. 업계의 주요 성수기 중 하나인 추석 실적이 가장 먼저 고꾸라졌고 여름 휴가철을 맞아 준비한 특수도 줄줄이 실종됐다. ⓒ이마트
    ▲ 유통 업계의 지난 한 해를 돌이켜보면 내수 침체가 얼마나 심각한 수준인지 확인할 수 있다. 업계의 주요 성수기 중 하나인 추석 실적이 가장 먼저 고꾸라졌고 여름 휴가철을 맞아 준비한 특수도 줄줄이 실종됐다. ⓒ이마트
    #혼자 사는 30대 직장인 이순호(가명)씨는 퇴근길에 끼니 해결을 위해 편의점을 자주 찾는다. 박씨가 저녁 식사용으로 고른 제품은 탄산음료를 덤으로 주는 3800원짜리 한식 도시락. 이 씨는 “그때그때 가격조건이 좋은 상품을 고른다”며 “얼마 안 되는 월급으로 보증금 대출 원금과 이자, 월세에 공과금까지 내야 해 먹고 입는 데 돈 쓰는 것은 사치”라고 말했다. 

    유통 업계의 지난 한 해를 돌이켜보면 내수 침체가 얼마나 심각한 수준인지 확인할 수 있다. 업계의 주요 성수기 중 하나인 추석 실적이 고꾸라졌고 여름 휴가철을 맞아 준비한 특수도 줄줄이 실종됐다. 

    실제로 대형마트는 추석 대목을 맞아 대규모 특가전을 마련했지만, 결국 역신장을 기록했다. 롯데마트의 추석 선물세트 매출은 작년 동기 대비 1.4% 역신장했고, 이마트의 추석 선물세트 매출도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불과 0.5% 신장하는 데 그쳤다.

    백화점 업계도 마찬가지다. 올해 롯데백화점의 추석 선물세트 매출은 작년 동기 대비 4.5% 신장했지만, 작년 추석 신장률인 7.0%에 비하면 부진하다. 현대백화점도 작년 추석 때 두 자릿수 신장했던 것과 달리 올해는 4.2% 신장하는 데 머물렀다.

    유통업계 관계자는 “전반적으로 경기 상황이 좋지 않은 데다 막판에 태풍까지 겹치면서 대부분 유통업체들의 추석 선물세트 판매가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고 말했다.

    잔뜩 위축된 소비심리도 좀처럼 살아나지 않고 있다. 실제로 한국은행이 발표한 지난 8월 기준 소비자심리지수(CCSI)는 92.5로 한 달 전보다 3.4포인트 떨어졌다. 지난 4월 101.6까지 오른 다음 4개월 연속 하락하며 2017년 1월(92.4) 이후 최저로 낮아졌다.
  • ▲ ⓒ롯데쇼핑
    ▲ ⓒ롯데쇼핑
    깊은 시름에 빠진 유통업계는 소비자의 지갑을 열기 위해 치열한 ‘가격 대전’을 벌이고 있다. 대형마트들은 500원 비누, 700원 물티슈, 400원 라면 등 다양한 초저가 상품을 연일 출시하며 가격 경쟁을 벌이고 있다. 

    먼저 이마트가 초저가 전략인 ‘국민가격 프로젝트’ 일환으로 생수(2ℓ·6개) 가격을 1800원대로 낮추겠다고 선언하자 롯데마트는 같은 용량 제품을 1600원대까지 내리며 맞불을 놨다. 그러자 홈플러스는 생수 값을 1500원대로 내렸다.

    '초저가 경쟁'은 와인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롯데마트는 올 연말까지 자사 스테디셀러 와인인 '레오 드 샹부스탱 까베르네 소비뇽'과 '레오 드 샹부스탱 메를로'를 기존 판매 가격보다 2000원 낮춘 7900원에 판매한다고 밝혔다. 1.5L 매그넘 사이즈이다.

    지난달 이마트가 역대 최저가 와인을 출시해 대성공을 거두자 롯데마트가 반격에 나선 것이다. 앞서 이마트는 지난달 1일 상시 초저가 '에브리데이 국민 가격'의 대표 상품으로 칠레산 '도스코파스 카베르네 소비뇽' 와인(병당 4900원)을 출시했다. 출시 한 달 만에 28만병 팔리는 등 지금까지 54만병 이상 판매됐다. 

    하락세였던 이마트 매출도 지난달 전년 동월 대비 11.7% 늘었다. 특히 와인처럼 온라인몰에서 판매하지 못하는 제품을 저가로 선보이면서 대형마트들이 오프라인 매장 모객 효과를 노리고 있다는 분석이다.

    다만 유통업계의 초저가 경쟁에 디플레이션(Deflation)의 대한 우려도 나온다. 파격적으로 싼 물건이 아니면 좀처럼 지갑을 열지 않는 사람들의 행동에서 경기 침체에 대한 불안을 읽을 수 있어서다.

    실제로 이마트의 올해 2분기(4∼6월) 연결 영업손실은 299억 원이었다. 이마트가 적자를 낸 것은 2011년 5월 신세계로부터 대형마트 사업부문을 분리해 이마트를 신설한 이후 처음이다. 롯데마트도 올해 2분기에 339억 원의 적자를 내 지난해 2분기(―273억 원)보다 적자폭이 커졌다.

    유통업계 관계자는 “소비심리 악화와 더불어 이커머스(전자상거래) 시장의 가파른 성장, 유통 규제 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유통업계가 최근 생존 여부를 걸고 사활을 펼치고 있는 만큼 가격 경쟁은 피할 수 없을 것”이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