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극복 리더십 통해 韓 경제 지향점 제시세계 최초 64M D램 개발에도 자만심 경계2018년 삼성전자 시가총액 396조원 396배 성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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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중순부터 고민을 하기 시작해서 작년 말부터 하루에 3시간에서 5시간 밖에 잠이 안 왔습니다."(1993년 오사카 회의)삼성이 1997년 외환위기에서 벗어나 초일류 기업으로 성장한 원동력으로 고(故)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의 위기극복 리더십이 재조명되고 있다. 이 회장은 위기 상황에서도 강한 리더십으로 한국 경제의 지향점을 제시했다는 평가다. 대표적인 것이 반도체 사업이다.삼성전자는 1992년 세계 최초로 64M D램 반도체 개발에 성공했다. 삼성 반도체가 메모리 강국 일본을 처음으로 추월하며 세계 1위로 올라선 순간이었다.삼성은 세계 무대에서의 1위라는 기쁨에 사기가 고조됐을 당시 단 한 사람은 그렇지 못했다. 삼성을 이끌던 이 회장이다.삼성 안팎의 분위기와 달리 이 회장은 오히려 심각한 위기의식을 느꼈고, 밤잠을 설치할 정도였다. 다가올 위기에 대비하기 위한 고민도 깊어졌다.이 회장이 감지했던 위기가 닥쳐왔다. 1993년 품질보다 생산량 늘리기에 급급했던 생산라인에서 불량이 난 세탁기 뚜껑을 손으로 깎아서 조립하는 사건이 발생한 것이다. 이러한 모습이 사내 방송으로 보도됐고 파장이 커지면서 질보다 양을 앞세우던 기존 관행에 제동이 걸렸다.당시 이 회장은 삼성의 글로벌 위상을 직접 확인하기 위해 미국을 방문 중이었다. 이건희 회장은 미국의 대표적인 전자제품 양판점인 'Best Buy(베스트 바이)'를 돌아보다가 진열대 구석에서 먼지를 뒤집어 쓰고 있는 삼성 제품을 바라봤다.이에 이 회장은 '삼성'이라는 이름을 반환하라고 했다. 먼지 구덩이에 처박힌 것에 어떻게 삼성이라는 이름을 쓰고 있냐는 것이었다.삼성 제품이 뛰어난 품질로 인정받을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던 이건희 회장에게 불량 세탁기 고발 영상이 담긴 사내방송 테이프가 전달됐다.이를 본 이 회장은 그동안 쌓여온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마누라와 자식만 빼고 다 바꾸라"는 말로 유명한 신경영 선언을 내놓았다. 1993년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시작된 신경영 대장정은 총 8개 도시를 돌며 임직원 1800여명이 참여한 가운데 350여 시간의 토의로 이어졌다.임직원들과 나눈 대화시간은 350시간에 달했으며, 이를 풀어 쓰면 A4 용지 8500매에 해당하는 방대한 분량이었다.이후 삼성은 뼈를 깎는 고통을 감수하며 혁신에 나서게 된다. 그 결과 1996년 삼성은 연평균 17%의 놀라운 성장률을 기록했다.성장일로에 들어선 삼성이 안심하고 기뻐하고 있을 때, 멕시코 티후아나 전자복합단지를 방문중이던 이 회장은 미국 샌디에이고에서 긴급 사장단 회의를 소집했다.이 자리에서 이 회장은 "반도체가 조금 팔려서 이익이 난다 하니까 자기가 서있는 위치가 어디인지도 모르고, 그저 자만에 빠져 있다"고 질책했다.이 회장의 질책과 함께 삼성은 내부 자만을 경계하고 장래 위기에 대비하기 위해 비상경영에 돌입했다. 삼성그룹은 경영 전 분야에 걸쳐 3년 동안 원가 및 경비의 30%를 절감하겠다는 '경비 330 운동'을 강력하게 추진했고,한계 사업을 과감히 정리하고 차세대 사업에 집중하는 한편, 경영 합리화와 사업재구축을 목표로 비상경영을 진행했다.삼성이 비상경영에 들어간지 1년 후인 1997년, 대한민국에는 IMF 외환위기가 닥쳐왔다. 위기에 미리 대비하고 허리띠를 졸라맨 삼성은 외환위기라는 거센 파도 속에서 피해를 최소화하면서 급변하는 세계 디지털 시장을 선점하는 기회를 만들어냈다.이후 삼성은 고성장하며 국내 및 글로벌 최대 기업으로 올라섰다. 삼성은 이 회장 취임 당시 10조원이었던 매출액은 2018년 387조원으로 약 39배 늘었으며, 이익은 2000억원에서 72조원으로 259배, 주식의 시가총액은 1조원에서 396조원으로 무려 396배나 증가했다.이런 외형적인 성장 외에 선진 경영시스템을 도입하고 도전과 활력이 넘치는 기업문화 만들어 경영체질을 강화하며 내실 면에서도 세계 일류기업의 면모를 갖추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