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농단 이어 잇따른 재판 일정경영권 승계 재판 3~5년 시간 소요대규모 투자-인수합병 등 미래사업 결정 제한글로벌 반도체 업계 대규모 빅딜 불구 삼성만 조용
  • ▲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지난 9일 오후 1시 34분경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파기환송심 공판을 위해 출석하는 모습.ⓒ뉴데일리 DB
    ▲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지난 9일 오후 1시 34분경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파기환송심 공판을 위해 출석하는 모습.ⓒ뉴데일리 DB
    삼성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잇따른 사법 리스크로 끝이 보이지 않는 터널 속에 갇힌 모습이다. 삼성 내부적으로는 상당한 피로감을 호소하는 목소리가 적지 않다. 

    더 큰 문제는 국내외 경영환경이 급변하는 상황 속에서 미래를 장담하기 어려운 현실에 놓였다는 점이다. 이를 두고 경제계 안팎에서는 삼성의 위기가 단순 기우에서 그치는게 아닌 현실화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16일 재계에 따르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국정농단 혐의'와 관련 파기환송심을 치르는 가운데 내년 1월부터는 '경영권 승계 의혹'과 관련한 재판이 이어질 예정이다. 

    이 부회장은 지난 2016년 11월 이후 4년 가까이 '사법 리스크'에 시달리며 정상적인 경영에 발목이 붙잡힌 상태다. 국정농단 사건 뇌물 혐의로 시작된 재판은 파기환송심까지 이어지며 4년이 되도록 아직 진행 중으로 지난달에는 특검의 재판부 기피 신청으로 중단된 재판이 9개월 만에 재개됐다. 재판부의 최종 판단은 오는 12월 이뤄질 것으로 관측된다.

    이 과정에서 이 부회장은 검찰에 10차례나 소환돼 조사를 받았고, 구속영장 실질심사만 3번 받았다. 특검 기소에 따른 재판은 무려 80차례 열렸고, 이 가운데 이 부회장이 직접 출석한 재판은 1심에서만 53차례를 포함해 총 70여차례에 달한다. 삼성바이오로직스 회계 문제 등과 관련한 수사에서도 50여차례의 압수수색과 430여차례의 임직원 소환조사가 진행됐다.

    국정농단 재판이 끝나도 내년 1월부터 경영권 승계 관련 재판이 새로 시작되는 등 삼성과 이 부회장을 둘러싼 사법리스크는 당장 해소되기 어렵다.   

    경영권 승계 사건의 경우 국정농단보다 사안이 훨씬 복잡한데다 증거기록만 368권, 약 19만 페이지에 달할 정도로 방대해 상당한 시간이 소요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앞서 지난달 열린 첫 공판기일에서 재판부는 다음 기일을 3개월 후로 잡을 만큼 검찰과 변호인측에 기록 검토에 상당한 시간을 할애했다.

    법조계에서는 국정농단 사건에 비춰볼때 이번 재판 역시 최소 3년에서 최대 5년까지 소요될 수 있다고 관측한다. 삼성이 '잃어버린 10년' 기로에 놓였다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이에 재계에서는 한 기업과 총수 한 명에 대한 재판이 이 같이 장기화된 적은 찾아보기 힘들다고 꼬집었다. 피해는 고스란히 기업에 전가될 수 밖에 없다고 지적한다. 

    재계 관계자는 "삼성을 둘러싼 재판은 10년 가까이 이뤄질 것으로 보이는데 전례가 없는 일"이라며 "사실상 정상적인 경영이 어렵지 않겠나"라고 반문했다. 

    실제 삼성 내부적으로는 극도의 피로감은 물론 대외 이미지 손상 및 미래 사업 위기감도 고조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삼성은 이미 지난 4년간 이어진 리스크로 인해 대규모 투자와 인수합병(M&A), 인재영입 등의 미래사업을 그리는데 제한이 많았다.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등 대규모 투자가 필요한 사업에서도 삼성 입장에서는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 미래 먹거리로 내건 파운드리 사업에서는 시장 강자 TSMC와 기술 선점을 두고 초접점의 경쟁을 펼치고 있는 시점에서 재판 이슈로 어려움은 커질 수 밖에 없다. 

    최근 글로벌 반도체 업계에서 대규모 빅딜이 추진되고 있지만 삼성의 이름이 거론되지 않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는 분석도 나온다. 

    올해 반도체 업계의 M&A(인수합병) 규모는 130조원을 넘어선 상태다. 지난 9월 미국 GPU(그래픽처리장치) 회사인 엔비디아가 400억 달러(약 45조2000억원)에 영국 ARM을 인수키로 했고, SK하이닉스도 최근 인텔의 낸드 사업부문을 90억 달러(약 10조1600억원)에 품었다.

    여기에 AMD도 자일링스를 350억 달러(약 39조4000억원)에, 미국 반도체 기업 마벨테크놀로지그룹도 네트워크 반도체 기업 인파이를 100억 달러(약 11조3200억원)에 인수키로 했다.

    4차 산업의 본격 도래와 맞물려 반도체 시장 생태계가 급변하면서 글로벌 반도체 업계도 발맞춰 변화를 주고 있지만 삼성은 이렇다할 움직임을 보이지 않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이 부회장은 최대한 조직의 안정을 추구하면서 미래사업에도 대비하는 등 홀로 분전하는 모습이다. 

    이 부회장은 올해 들어 국내외를 가리지 않고 현장경영에 적극 나서며 끊임없는 위기의식고 도전을 주문하고 있다. 

    지난 1월 2일 화성사업장 반도체 연구소를 시작으로 27일 브라질 마나우스 및 캄피나스 생산라인을 점검했다. 2월에는 EUV(극자외선) 전용 반도체 생산라인을 방문했으며 3월에는 스마트폰과 디스플레이 사업전략을 논의했다. 

    지난 5월에는 코로나 위험에도 불구하고 중국 시안의 낸드플래시 공장을 직접 방문해 점검한데 이어 중국 산시성 정부 관계자와 면담을 갖고 협력방안을 논의하기도 했다. 

    또한 삼성SDI 천안사업장에서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수석부회장과 회동하며 미래 먹거리 점검에 나섰고 6월에는 사업부문 사장단과 릴레이 간담회를 갖고 위기 극복 전략을 논의했다. 

    지난달에는 유럽과 베트남을 직접 방문하며 미래 사업을 직접 점검하기도 했다. 이달에도 서초구 우면동에 위치한 서울R&D 캠퍼스에서 디자인 전략회의를 열고 현장경영을 이어갔다. 

    이 부회장은 "도전은 위기 속에서 더 빛난다. 미래를 위해 끊임없이 도전하자"며 "위기를 딛고 미래를 활짝 열어가자"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