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규제 3법' 등 규제강화에 투자 축소 우려反기업 정서 팽배… 기업인 절망감 커져미중 무역분쟁 속 내부규제 불확실성까지"기업인 범죄자 만드는 비현실 법 바로잡아야"
  • ▲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12일(현지시간) 백악관 루즈벨트룸에서 반도체 업계 대표들과 화상 회의를 진행하는 도중 실리콘 웨이퍼를 꺼내들고 있는 모습. ⓒ연합뉴스
    ▲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12일(현지시간) 백악관 루즈벨트룸에서 반도체 업계 대표들과 화상 회의를 진행하는 도중 실리콘 웨이퍼를 꺼내들고 있는 모습. ⓒ연합뉴스
    미국이 공격적인 반도체 투자를 예고했다. 미국과 중국 간 반도체 패권다툼이 심화될 것으로 보이면서 국내 반도체 산업에도 적잖은 파장이 예상되고 있다.

    앞서 미중 무역갈등으로 미국의 화웨이 제재에 반강제로 동참해야 했던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국내 기업들이 또 다시 두 강대국의 경쟁에 눈치를 봐야 하는 상황이 재현될 수 있어서다.

    이처럼 대외 리스크가 산재해 있지만, 정부의 반(反)기업 정서에 따른 각종 규제로 경영 불확실성은 더 높아지고 있는 실정이다.

    14일 업계에 따르면 정부와 국회는 지난해 말부터 기업 경영활동을 위축시키고 지배구조를 위협하는 상법, 공정거래법, 노조법 개정안을 잇달아 통과시키며 입법 독주를 강행했다.

    특히 상법 개정안에는 다중대표소송 도입과 감사위원 분리 선임 등 우리 기업들이 해외 투기자본으로부터의 공격을 방어 수단을 약화시키는 법안이 담겨 있다.

    감사위원 분리선임의 경우 최대주주 등의 의결권 제한(3% 룰)으로 외국계 펀드 등이 연합해 이사회 진입을 시도할 수 있어, 경영체계의 근간을 흔들 가능성이 크다는 지적을 받는다. 최대주주와 특수관계인의 지분이 많아도 헤지펀드가 지분 3%만 확보하면 동등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어서다.

    이에 대해 대한상공회의소는 "주식 수에 따라 주주권을 배분한다는 주식회사 제도의 근간을 훼손하는 과잉 입법"이라며 "투기펀드 등에 이사 선임권을 사실상 넘겨줘 기업 경영에 심각한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 정부 규제에 대한 기업인들의 반응은 부정적인 시각이 많다. 이에 기업들은 국내 투자 축소, 혹은 사업장의 해외 이전을 고려하고 있는 실정이다.

    전국경제인연합회가 지난 2월 230개 업체를 대상으로 기업규제 3법 등 최근 기업규제 강화에 대해 설문조사를 진행한 결과 37.3%가 고용을 축소하겠다고 했고, 27.2%가 국내투자를 줄이겠다고 답했다. 공장과 법인을 해외로 이전하겠다는 기업은 21.8%에 달했다.

    전경련은 기업의 경영활동에 심대한 영향을 미치는 법안이 규제영향평가를 받지 않는 불합리한 상황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신설·강화규제에 대해 보다 포괄적인 규제영향평가가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유환익 전경련 기업정책실장은 "국민과 기업의 권리를 제한하거나 의무를 부과하는 규제는 입법주체나 법안의 종류와 무관하게 규제가 미칠 영향을 충분히 검토한 후 신설·강화돼야 규제의 부작용을 최소화 할 수 있다"며 "상법상 규제나 의원입법에 대해서도 규제영향 평가를 거치도록 포괄적 규제영향평가제도를 도입하고, 규제개혁위원회 본회의 심사 비율도 높이는 등 현행 심사제도를 내실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손경식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도 "지난해 12월 상법, 공정거래법, 노조법을 시작으로 올 1월에는 중대재해처벌법까지 입법화되면서 기업인들의 절망감은 더욱 깊어져 가고 있다"고 밝히며 이러한 기업 규제적 입법 강행의 원인은 우리 사회에 팽배해 있는 '반기업정서'가 크게 자리잡고 있다고 지적했다.

    최근 경총이 실시한 '반기업정서 기업 인식조사'에서도 기업의 93.6%가 반기업정서를 느끼고 있다고 언급하며 문제의 심각성을 강조한 바 있다. 반기업 정서는 기업 경영부담을 가중시키고 기업가 정신을 훼손시킬 수 있어 국가적으로도 큰 손실이라는 이유다.

    이같은 규제는 4차 산업혁명 확산과 디지털 생태계 전환 가속화되고 있는 시대에 역행하고 있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특히 대외의존도가 높은 국내 기업들의 특성상 정부의 규제로 해외 기업들과의 경쟁에서 뒤처질 수 있다.

    최근 전 세계적으로 반도체 공급부족 현상이 심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글로벌 선두를 달리고 있는 국내 반도체 기업들의 역할론이 중요시되고 있지만, 내부 규제부터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는 실정이다.

    조 바이든은 지난 12일(현지시간) 반도체 칩 부족 사태의 해법을 모색하기 위한 '반도체 화상회의'에서 "중국과 세계의 다른 나라는 기다리지 않고, 미국이 기다려야 할 이유도 없다"며 "우리는 반도체와 배터리와 같은 분야에서 공격적으로 투자하고 있다. 이것은 그들과 다른 이들이 하는 것이다. 우리도 그렇게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날 회의에는 삼성전자를 비롯해 TSMC, 알파벳, AT&T, 커민스, 델 테크놀로지, 포드, 제네럴모터스(GM), 글로벌 파운드리, 휴렛패커드(HP), 인텔, 메드트로닉, 마이크론, 노스럽 그러먼, NXP, PACCAR, 피스톤그룹, 스카이워터 테크놀로지, 스텔란티스 등 19개사가 참석했다.

    이 중 인텔은 회의가 끝난 후 "앞으로 6~9개월 내에 실제 반도체를 생산한다는 목표 아래 차량용 반도체 설계업체와 협의를 진행하겠다"고 밝히며 삼성전자에 부담이 커진 상태다. 인텔이 차량용 반도체 생산에 나서면 삼성전자도 차량용 반도체 생산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통상 차량용 반도체는 초미세화 공정을 통해 생산하는 고성능 메모리에 비해 수익성이 떨어져 거의 생산하지 않고 있다.

    더군다나 삼성전자는 이재용 부회장이 실형을 선고받으며 총수 공백까지 겹친 상황이다.

    경제단체는 국가 경쟁력을 위해서라도 기업 규제를 완화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경총을 비롯해 중소기업중앙회, 한국중견기업연합회, 한국상장회사협의회 등 경제단체 4곳은 상법과 공정거래법, 노동조합법에 대한 보완 입법을 국회에 요청한 상태다.

    이경묵 서울대 경영대학원 교수는 "반기업정서의 원인으로 작용하는 기업의 불법을 줄이기 위해서는 기업에 대한 정부의 권한을 축소해야 한다"며 "특히 기업인을 범죄자로 만드는 과도한 상속·증여세제 등 비현실적인 법과 규제를 바로잡아야 한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