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中 자국 편들기 요구에 난처한 삼성전자대규모 투자, 전략적 판단 CEO 결정 한계"'민간 외교관' 이재용 부회장 빈자리 아쉬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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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내가 여기 있는 이유는 우리가 어떻게 미국내 반도체 산업을 강화하고 미국의 공급망을 보장할 것인지 말하기 위한 것으로 우리의 경쟁력은 기업들이 어떻게 투자하느냐에 달렸다."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지난 12일(미국 현지시간) 백악관 안보 및 경제 참모 주재로 열린 반도체 대책 화상 회의에 참석해 반도체 웨이퍼를 들어 보이며 언급한 발언 내용이다.회의에는 삼성전자 등 반도체 생산기업과 인텔·델·AT&T 등 정보통신 기업, 포드·GM 등 자동차 기업 등 19개 글로벌 기업들이 참석했다. 이번 회의는 표면상 자동차용 반도체 공급난 해결 방안을 모색하기 위한 자리였지만 더 깊게 들어가면 반도체, 배터리 등의 대대적인 투자를 독려해 중국에 대한 우위를 확고히 다지기 위한 전략이 짙게 깔려 있다.이는 사실상 반도체 패권을 되찾겠다는 메시지로 자국 중심의 반도체 공급망 체계 강화를 위해 노골적으로 기업에 투자를 요구한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중국과 반도체 패권 경쟁을 벌이고 있는 미국이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서라도 삼성전자를 비롯한 글로벌 기업에 대한 요구는 더욱 거세질 전망이다.회의 내용이 공개되지 않은 만큼 투자 방법과 금액 등 구체적인 요구사항을 확인하기 어렵지만 국내 기업 가운데 유일하게 참석한 삼성전자 입장에서는 이를 외면하기 힘든 난처한 상황이다.당장 삼성전자는 현지 파운드리 공장 증설 결정과 함께 중국과의 관계도 무시하기 힘들기 때문이다.삼성전자는 현재 미국 텍사스주 오스틴에 파운드리 공장을 운영하고 있으며 170억달러(약 20조원)를 투자해 증설을 추진하고 있다. 현재 텍사스주 오스틴시가 유력후보지로 꼽히고 있다. 또한 차량용 반도체 생산·공급에 동참해야 하는 부담도 떠안아야 한다.이와 함께 향후 벌어질 중국의 견제도 고려해야 하는 부분이다. 지난 3일 중국 푸젠성 샤먼에서 열린 한중 외교장관 회담에서 중국은 우리 정부에 반도체와 5세대(5G) 이동통신 등에 대한 협력을 요구했다.중국 정부가 미국과의 거래를 문제삼거나 중국내 투자 확대를 요구할 경우 미국과 중국에서 모두 사업을 하는 삼성전자는 난감한 상황에 놓일 수 밖에 없다. 앞서 미중 무역갈등에서 샌드위치 신세에 놓였던 상황이 재현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중국의 경우 우리나라 반도체 수출 비중의 60%에 달하는 등 미국과 함께 매우 중요한 시장인 만큼 향후 대응방안 마련이 절실한 시점이다.문제는 현재 삼성전자가 `총수 부재`라는 심각한 위기에 직면해 원활하고 효율적인 의사 결정이 불가능한 상태라는 점이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구속수감 중으로 지난달 19일에는 맹장이 터져 삼성서울병원에서 수술을 받고 회복 중이다.이번 백악관 회의에서는 경쟁사인 TSMC의 류더인 회장이 직접 참석했다는 점에서 이재용 부회장의 빈자리는 더욱 크게 느껴질 수밖에 없다. 화상회의에는 이 부회장 공백으로 최시영 파운드리사업부장(사장)이 참석했다.재계에서는 어느 때보다 전략적 판단이 중요한 시점임에도 총수 부재 리스크로 적기애 대응하는 데 어려움이 있을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이번 백악관의 요청에 빠른 답을 내놓는 데에도 분명한 한계가 있을 것이란 시각을 보이고 있다. 일상적인 경영은 CEO선에서 가능하지만 대규모 투자 결정 등 굵직한 의사 결정은 결국 총수의 영역이라는 이유에서다.지난 2019년 133조 투자 및 고용 창출 결정 등 핵심 결정도 이 부회장이 직접 주도해온 만큼, 총수 공백은 매우 크다는 게 업계 중론이다. 여기에 이 부회장은 국내 뿐만 아니라 글로벌 유수의 정재계 인사들과 돈독한 관계를 형성하고 있는 '민간 외교관' 역할을 맡고 있었다는 점에서도 아쉬운 대목이다. 특히 반도체 산업의 경우 우리나라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큰 만큼 전략적 대응이 필요한 시기라는 게 업계 시각이다.재계 관계자는 "대규모 투자 등 중요한 결정에 있어서 CEO들은 한계가 있을 수 밖에 없다"며 "미국 대통령이 참석하는 회의인데다 글로벌 기업 대표들이 참석했다는 점을 봤을 때 총수 부재는 아쉬울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