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금융공기업 GDP의 23.5%·금융공기업 62.7% 수준獨·日 등 기축통화국보다 많아…공공사업 의존도도 1위"정부 암묵적 지급보증…공기업·정부 이중 도덕적 해이"코로나後 재정건전성 걱정…국가보증채무로 관리 필요
  • ▲ 나랏빚.ⓒ연합뉴스
    ▲ 나랏빚.ⓒ연합뉴스
    우리나라의 '숨은 나랏빚'으로 불리는 공기업 부채 규모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3개 회원국중 사실상 가장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공기업이 정부의 암묵적 지급보증에 힘입어 방만경영을 하거나 때때로 정부가 무리한 정책사업을 공기업에 떠넘기는 '이중 도덕적 해이'가 발생할 수 있는 만큼 공사채 채무를 국가보증채무에 포함해 공식적으로 관리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책연구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KDI)은 20일 내놓은 KDI 포커스 '공기업 부채와 공사채 문제의 개선방안'에서 "코로나19(우한 폐렴) 위기이후 정부의 재정건전성을 걱정하는 목소리가 많은데 우리나라는 공기업 부채가 유독 많아 걱정을 더하게 된다"고 밝혔다.

    보고서를 보면 작년말 현재 우리나라의 정부 부채는 국제통화기금(IMF) 추정치를 기준으로 국내총생산(GDP)의 48.7% 수준이다. OECD 주요 회원국보다 적은 편이다. 그러나 공기업 부채를 포함하면 얘기는 달라진다. 우리나라의 비금융공기업 부채는 2017년 기준 GDP의 23.5%를 차지한다. 이는 보유자산이 정부·공기업의 부채보다 월등히 많은 노르웨이를 제외하면 IMF 추정치가 있는 OECD 33개 회원국중 가장 많다. 33개국 평균(12.8%)을 웃돈다.

    황순주 연구위원은 "기축통화국인 영국·캐나다·독일·프랑스·일본보다 우리나라의 공기업 부채가 더 많다는 점은 의미심장하다"면서 "공기업 중에서도 금융공기업의 부채가 많지만 공개되지 않는다. IMF와 세계은행(WB) 기준에 따라 추정한 결과 GDP의 62.7%로 나타났다. 이는 비교 가능한 OECD 국가보다 많고 격차도 컸다"고 우려했다.

    보고서는 우리나라 공기업의 부채 규모가 정부 부채에 비해 상대적으로 매우 크다고 지적했다. 공공사업 추진을 위한 비금융공기업의 부채 의존도(48.8%)는 2위인 멕시코(22.8%)의 2배 이상으로 높은 실정이다.

    우리나라 공기업은 부채의 50% 이상을 공사채를 발행해 충당한다. 황 연구위원은 "이런 우리나라 공기업 부채의 특징은 구조적인 취약성과 관련 있다"며 "공기업은 사실상 파산상태에 빠져도 정부의 유사시 결손 보전 등 암묵적인 지급보증에 힘입어 국채 수준의 낮은 금리로 자금을 조달할 수 있다보니 건전성, 수익성과 상관없이 대규모의 빚을 일으키기 쉽다"고 설명했다. 보고서는 우리나라 일부 에너지 공기업과 국책은행이 발행하는 공사채는 원래 정크본드(투기등급) 수준에 불과하지만, 정부의 지급보증 덕분에 국채 수준의 안전자산으로 탈바꿈한다고 진단했다. 정부 지원 가능성에 기대어 비금융공기업이 누리는 금리할인 효과는 연간 4조원에 달한다고 황 연구위원은 분석했다.
  • ▲ 2017년 비금융공기업 부채 추정치.ⓒKDI
    ▲ 2017년 비금융공기업 부채 추정치.ⓒKDI
    문제는 이런 정부의 암묵적 지급보증이 공기업과 정부의 '이중 도덕적 해이'를 가져온다는 점이다. 정부가 유사시 지급을 보증하면 공기업은 재무건전성이나 수익성을 개선하기 위해 애쓸 필요가 없다. 민간기업이 금리를 조금이라도 낮추려고 펀더멘털 개선에 힘쓰는 것과 대조된다. 보고서는 민간기업이 재무건전성을 개선해 부채/자산 비율을 10%포인트(p) 낮추면 회사채를 0.19%p 싸게 발행할 수 있지만, 공기업은 이미 정부 구제금융이라는 보증수표 효과를 누리고 있어서 같은 수준으로 부채/자산 비율을 낮춰도 금리할인 효과는 0.07%p에 불과하다고 부연했다.

    보고서는 정부의 도덕적 해이도 문제라고 지적했다. 황 연구위원은 "정부는 때때로 미래세대에 과중한 재정적 부담을 안기는 정책사업을 무리하게 추진하기도 하는데 이때 손쉽게 재원을 마련하기 위해 공기업에 무리한 부채 발생을 요구할 수 있게 된다"고 강조했다. 보고서는 지난해 상반기 부채가 자산을 초과하면서 완전자본잠식 상태에 빠진 한국석유공사와 2016년부터 자본잠식 상태에 빠진 한국광물자원공사를 대표적인 사례로 꼽았다.

    보고서는 공기업 부채의 개선을 위해 모든 공사채를 국가보증채무에 포함하고 공식적인 관리를 받게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국가보증채무로 분류되면 국회 동의, 보증수수료, 담보 설정 등을 통해 무분별한 공사채 발행을 막을 수 있다는 것이다. 황 연구위원은 " 공기업이 빚을 갚지 못하면 보증채무가 국가채무로 전환돼 국민 부담이 되므로 도덕적 해이를 방지할 수 있고, 위험을 낮출수록 보증료가 내려가므로 공기업의 재무구조 개선을 유인할 수 있다"고 했다.

    보고서는 자본 규제 필요성도 제언했다. 은행이 무너지면 국민경제에 심각한 타격을 주므로 평소 건전성을 유지할 수 있게 자본규제를 받는 것처럼 공기업도 자본규제를 적용해 재무건전성을 상시적으로 유지할 수 있게 해야 한다는 의견이다. 황 연구위원은 "한국가스공사의 경우 관련 법에 따라 자기자본 비율을 총자산 대비 최소 20% 이상으로 유지해야 한다"고 부연했다.

    보고서는 '채권자-손실분담형'(베일인·bail-in) 채권 확대도 제시했다. 조건부자본증권으로 알려진 이 채권은 산업은행 등 일부 금융공기업이 발행하고 있다. 평상시에는 일반 채권처럼 원금과 이자를 지급하지만, 발행기관의 재무상태가 악화하면 해당 채권이 그 기관의 자본으로 전환되거나 원리금 지급 의무가 소멸된다. 이 과정에서 채권자가 일부 손실을 부담하므로 채권자의 도덕적 해이를 막고 자본시장의 규율을 회복하는 효과가 있다고 보고서는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