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량제' 맥주, 내달 ℓ당 30.5원↑… 작년 물가상승률 70% 적용일선 식당 병당 6000원 예상에 '아우성'… 秋 "물가연동 재검토""국회서 세액 정해주면 돼"… 정치권, '포퓰리즘' 수단 전락 우려
  • 서울의 한 편의점 ⓒ연합뉴스
    ▲ 서울의 한 편의점 ⓒ연합뉴스
    고물가에 '서민 술'인 소주, 맥주 가격을 들썩이게 만들었던 주세(酒稅)와 관련해 정부가 맥주와 탁주에 적용하는 종량세의 물가연동제를 폐지하기로 하면서 논란이 일고 있다.

    정부는 다음 달 1일부터 맥주 세율을 리터(ℓ)당 30.5원 올린 885.7원으로 적용할 예정이다. 소주의 주세는 그대로이지만, 맥주에 대한 주세가 인상되며 주류업계에선 원가 인상 압박 등을 이유로 소주와 맥주의 출고가를 올리려는 움직임이 일었고, 이를 빌미로 식당도 가격 인상에 나서면 소주와 맥주 1병에 6000원이 될 것이란 우려가 쏟아져 나왔다.

    논란이 계속 되자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달 22일 국회에서 "세금 올렸다고 주류가격도 올려야 하느냐. 업계의 적극적인 협조를 부탁드린다"고 말했고, 이에 화답하듯 국세청도 주류업계를 불러 모아 인상 자제를 요청했다.

    이어 추 부총리는 지난 9일 종량세를 적용하는 맥주·탁주의 물가연동 세율 방식을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며 사실상 폐지를 선언했다.

    ◇주류 인상 주범 '종량세 물가연동제' 도입, 왜?

    종량세의 물가연동제가 논란이 된 것은 올해가 처음이다. 수입맥주와의 국산맥주와의 과세체계 차이로 국산맥주가 차별 받는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지난 2021년에 도입된 종량세 물가연동제는 지난해 처음 물가연동에 따라 주세가 인상됐다.

    지난해에는 전년도 소비자물가 상승률 2.5%에 따라 맥주 ℓ당 20.8원의 주세가 올랐지만, 논란은 크지 않았다. 하지만 올해는 물가가 유례없이 치솟았고, 전년도 물가상승률(5.1%)의 70%에 해당하는 3.57%를 적용해 30.5원을 인상하겠다고 예고하자 논란이 불거졌다.

    정부는 원래대로면 ℓ당 43.6원을 인상해야 하지만, 국민 부담을 생각해 인상률을 70%만 적용했다고 해명했으나 불만의 목소리는 사그라들지 않았다.

    속사정을 살펴보면 정부로선 억울한 면이 없잖다. 이례적인 고물가로 주세 인상 폭이 클 것을 우려한 정부는 맥주·탁주에 대한 탄력세율을 물가상승률 100%에서 50~150%로 폭넓게 적용하는 법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하지만 국회가 조세 형평성에 어긋난다며 70~130%만 적용할 수 있게 법을 통과시켰다. 정부로선 그나마 하한선인 70%를 적용한 셈이다.

    정부가 주세에 물가연동제를 도입한 배경은 종가세를 적용하는 소주와 위스키 등과의 차별을 방지하기 위해서였다. 종가세는 주류의 제품 출고가격이나 수입 신고가격에 주종별 세율을 곱하는 방식인데, 원가가 인상되면 자연스럽게 세금이 높아지게 된다. 예를 들어 100원이던 주류 출고가격이 200원이 됐다면 과세표준이 높아지기 때문에 같은 세율을 적용해도 세금이 늘어난다.

    반면 종량세는 주류 양에 따라 정해지는 세금이기 때문에 제품 출고가격이나 수입 신고가격이 올라가도 세금은 그대로일 수밖에 없다. 소주보다 맥주가 더 많은 혜택을 볼 것이란 지적이 나왔고, 종가세와의 균형을 맞추기 위해 물가연동제를 도입한 것이다.

    ◇종가세-종량세 균형 숙제… 결국은 국회에 공 떠넘기기?

    종량세를 처음 도입했을 때만 하더라도 '국산맥주 4캔 1만 원'이 가능해지며 소비자들의 환호를 받았다. 그러나 고물가 시기에 이것이 부메랑이 될 지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

    정부는 이번 논란의 재발 방지를 위해 물가연동제를 아예 폐지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 전문가도 대부분 긍정적인 견해다. 다만, 종가세와의 형평성을 어떻게 맞추느냐가 숙제로 남았다.
  • 추경호 부총리가 9일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맥주와 탁주 종량세에 관해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 추경호 부총리가 9일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맥주와 탁주 종량세에 관해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추 부총리는 세율 인상과 관련해 "종량세는 물가 연동보다는 일정 시점에 한 번씩 국회서 세액을 정해주면 된다"며 "이 부분은 전문가 등과 협의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현재 기재부는 세율 인상 기준을 어떻게 잡아야할 지 내부적으로 검토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박훈 서울시립대 교수는 "주류와 물가를 연동시키는 것은 적절하지 않기 때문에 그 연결고리를 끊는 것은 맞는 정책방향"이라며 "장기적으로는 종가세와 종량세를 같이 운영하는 것보단, 종가세 또는 종량세 하나만 하는 방식으로 가야한다"고 강조했다.

    박 교수는 "과거에는 정부가 비공식적으로 주류업계에 가격 인하같은 행정지도를 했지만, 지금은 분위기가 달라져 업계가 정부를 따라오지 않는다. 이게 국세청에는 부담일 것"이라며 "국회가 세율 인상 폭을 정하라는 것은 공(국세청의 부담)을 국회로 넘기겠단 것이다. 국회 입장에선 물가인상 시기에 세 부담을 낮춰주는 방식 밖에는 하지 못할 것이다. 여러 정치적인 상황 때문에 세율을 인상하기 쉽지 않을 것"이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