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일 정상회담서 '긴밀 협의' 수준 발언… 재계 '원론적 언급'에 우려27일 장관 공동선언문서 '기업투자 불확실성·경영부담 최소화' 명시韓 "IRA 해외우려기업 가이던스 제정·반도체법 수출통제 유예" 요청
  • ▲ 이창양 산업통상자원부 장관과 지나 러몬도 미국 상무부 장관이 27일(현지시간) '제1차 한미 공급망 산업대화'(SCCD)를 진행하고 있다.ⓒ연합뉴스
    ▲ 이창양 산업통상자원부 장관과 지나 러몬도 미국 상무부 장관이 27일(현지시간) '제1차 한미 공급망 산업대화'(SCCD)를 진행하고 있다.ⓒ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의 미국 국빈 방문에서 경제 분야 최대 과제로 꼽혔던 인플레이션 감축법(IRA)과 반도체지원법(칩스법) 협상이 우리 기업의 부담 완화로 이어질 전망이다. 양국은 공동선언문을 통해 우리 기업의 투자 불확실성과 경영부담 최소화를 공식화했다.

    대통령실과 산업통상자원부는 27일(현지시각) 이창양 산업부 장관과 지나 러몬도(Gina Raimondo) 미 상무부 장관이 만나 '제1차 한미 공급망 산업대화(SCCD)'를 개최했다고 밝혔다. SCCD는 양국 간 첨단기술 등의 협력을 논의하는 주요 플랫폼이다. 기존 '산업협력대화'가 지난해 5월 조 바이든 미 대통령 방한 당시 '공급망·산업대화'로 격상했다.

    애초 26일 열린 한미 정상회담에서 IRA와 반도체법은 '긴밀한 협의를 이어가겠다'는 수준의 원론적인 언급에 그쳐 재계의 우려를 샀다. 하지만 이튿날 열린 SCCD에서 두 법안의 이슈들에 대한 세부적인 대화가 이뤄졌고, 우리 기업의 우려에 대한 미 측의 구체적인 입장을 받아내는 데 성공했다.

    이날 이 장관은 IRA와 관련해 △해외우려기업(FEOC) 가이던스(선제적 안내) 제정 △투자 세액공제 적용 시 한국기업 우선 고려 △핵심광물 관련 자유무역협정(FTA) 해석 확대 등을 요청했다.

    FEOC에 대한 가이던스 제정은 우리 기업이 촉각을 곤두세우는 부분이다. 미 IRA 백서에 의하면 FEOC에서 조달한 전기차 배터리 부품은 내년부터, 배터리 핵심 광물은 2025년부터 사용이 금지된다. 만일 FEOC에 중국 기업이 대거 포함된다면 중국 의존도가 높은 우리나라는 막대한 손실이 불가피하다. 우리 기업으로선 FEOC의 포함 기준과 범위, 예외 대상 등을 미리 파악해야 투자 불확실성을 줄일 수 있다. 이에 이 장관은 가이던스를 조속히 제정해 줄 것을 촉구했다.

    핵심광물과 관련해 FTA를 확대하는 것도 핵심 사안이다. 미국은 핵심광물의 40% 이상을 미국이나 미 FTA 체결국에서 채굴·가공해야 세액공제를 제공하겠다고 명시했다. 아니면 채굴·가공 과정에서 50% 이상의 부가가치를 미국이나 미 FTA 체결국에서 창출해야 한다. 할당된 비율은 해가 갈수록 높아지므로 우리로서는 광물 조달처를 최대한 다각화하며 조항을 따라갈 수밖에 없는 처지다. 현재 우리 기업의 공급망과 연계된 국가들은 인도네시아·아르헨티나 등으로 미 FTA 미체결국이다. 우리 정부는 한국과 FTA를 맺은 인도네시아 등을 넓은 의미의 미 FTA 체결국으로 포함하는 방안을 검토해 달라고 미 측에 요구했다.

    IRA는 미국 내의 투자만 세액공제 형태로 우대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세액공제를 받으려면 전기차를 북미에서 최종 생산·조립해야 하는 등 진입장벽이 높다. 이 장관은 미국에 잇따라 투자계획을 밝히고 있는 우리 기업이 세액공제 혜택을 충분히 받을 수 있도록 미 상무부가 적극 지원해 달라고 주문했다.

    이날 회의에선 반도체법에 대한 협의도 이뤄졌다. 이 장관은 △재정 인센티브 세부 지원계획(NOFO), 가드레일(안전장치) 불확실성 해소 △수출통제 근본 조치 등을 요구했다.

    현 NOFO에는 우리나라에서 독소조항으로 꼽는 항목들이 다수 존재한다. 영업 기밀에 속하는 수율(생산품 중 정상품 비율) 등의 기업정보 제공과 초과이익 환수 등이 대표적이다. 가드레일은 중국 등의 우려대상 국가에서 반도체를 생산할 경우 앞으로 10년간 첨단 반도체는 5%, 범용 반도체는 10% 이상의 생산능력 확대를 제한한다는 게 골자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은 현재 중국에서 주요거점 시설을 운영 중이다. 가드레일에 따라 생산능력 확대가 제한되면 운영에 애로를 겪을 수 있다. 이 장관은 NOFO와 가드레일 등으로 인해 우리 기업의 글로벌 사업경영 애로와 불확실성이 크다며 합리적인 해결을 요청했다.

    산업부는 오는 10월 종료를 앞둔 수출통제 유예조치를 완화해 달라는 요구도 제기했다. 삼성전자와 SK 하이닉스는 지난해 10월 미국으로부터 대중(對中) 반도체 수출통제 조치를 1년간 유예받은 바 있다. 이 장관은 얼마 남지 않은 기한으로 인해 우리 기업의 우려가 크다고 강조하고 중국 내 안정적인 기업 운영을 보장하기 위한 보다 근본적인 조치를 취해 달라고 발언했다.

    요청안들에 대해 양국 장관은 공동선언문을 내고 입장을 공식화했다. 선언문에는 △반도체법 이행 과정에서 기업 투자 불확실성과 경영부담 최소화 △수출통제 이행 과정 시 글로벌 반도체 공급망 교란 최소화, 산업 지속력·기술 업그레이드 유지 협력 △한미 간 민관 반도체 협력포럼 설치, 3대 첨단기술 분야 R&D·기술실증·인력교류 추진 등의 내용이 담겼다.

    방미 일정 시작 당시 재계가 기대했던 즉시 유예 조치나 예외 확대 등의 가시적인 성과는 도출되지 않았지만, 우리 기업의 '투자 불확실성과 경영부담 최소화'를 명문화했다는 점은 어느 정도 완화를 약속받은 셈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우리 기업들의 가장 큰 우려를 샀던 독소조항이나 오는 10월 종료를 앞둔 수출통제 유예조치 등을 협상테이블에 화두로 올렸다는 점도 긍정적이라는 견해가 많다. 향후 추가로 이어질 미 측의 조치를 기대해 볼 만하다는 의견이다.

    반면 더불어민주당은 윤 대통령이 IRA와 반도체법에 대한 실질적인 성과를 내지 못했다고 비판하고 있다. 우리의 분명한 국익이 제시되지 못했다는 것이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28일(한국시각) 국회 최고위원회 회의에서 이와 관련해 "우리 산업과 기업을 전혀 지켜내지 못했다"며 "아낌없이 퍼주는 글로벌 '호갱외교'"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대통령실은 양 정상 간 합의는 명확하다고 선을 그었다. 최상목 대통령실 경제수석은 27일(현지시각) 워싱턴DC에서 브리핑을 하고 "우리 기업들의 부담과 불확실성을 줄이기 위한 양 정상 간의 확고한 인식을 공유했다"며 "이를 줄여나가기로 협의하라는 양국 행정부에 대한 '명확한' 지침을 확인했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