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금리 여파 해지 급증… 인구절벽 가입자 급감변액·연금보험 등 수익성 악화고금리 저축성보험도 역효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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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편집자주]금융회사의 실력은 위기에서 판가름난다고 합니다. 2022년은 우크라이나 전쟁, 글로벌 인플레이션과 급격한 금리인상, 레고랜드 사태 등으로 금융 시장이 휘청이는 한 해였습니다. 제1금융권으로 불리는 은행은 금리 인상이라는 호기를 맞아 전반적으로 높은 수익을 달성했지만, 제2금융권은 그렇지를 못했습니다. 위기 상황에 적극적으로 잘 대응해 높은 수익을 실현한 회사도 있지만, 부동산 PF에 ‘올인’ 했다가 생존 위기를 겪은 회사도 많습니다. 금융 위기설이 끊이지 않는 즈음, 뉴데일리는 제2금융 업권별 대응 전략과 그에 따른 올 한해 전망을 짚어보고자 합니다.

    과거 장기 투자자산으로 인기가 높았던 생명보험이 위기에 봉착했다. 보험이 투자상품으로서의 가치를 잃었다는 평가와 고금리·고물가에 지갑이 얇아진 고객들이 하나둘 보험을 해약하고 있어서다.

    인구가 고령화되면서 보험사가 지급해야 생존보험금 역시 갈수록 급증하고 있다. 반면 한국은행의 연이은 기준금리 인상은 보험사들이 보유한 채권의 평가 손실로 이어져 재무건전성을 악화시키고 있다.

    "돈 들어오는 데 없는데 나갈 데는 많다"는 속된 말이 현재 생명보험사가 처한 상황이다. 급기야 고금리에 은행으로 빠져나가는 돈을 어떻게든 막아보려고 앞다퉈 고금리 저축성보험 판매에 열을 올렸는데 회계기준이 바뀌며 실적 악화의 '부메랑'으로 돌아왔다.

    ◆손보사에 뒤쳐진 생보사… "성장 멈췄다"

    2일 금융감독원이 지난 3월 발표한 '2022년 보험회사 경영실적(잠정치)'에 따르면 생보사 23곳의 당기순이익은 3조7055억원으로, 전년보다 2348억원(6.0%) 감소했다.

    줄어든 것은 둘째치고 손해보험사 31곳의 당기순익(5조4746억원)의 68% 수준이다. 생보사가 2021년 순익면에서 처음으로 손보사에 역전당한 뒤 따라가지 못하고 계속 뒤쳐지고 있는 셈이다.

    이는 최근 고금리·고물가 등 경제상황과 무관치 않다는 분석이다. 기준금리 인상으로 은행의 고금리 상품이 출시되면서 보험 가입은 감소하고 보험 해지는 늘어나는 현상이 더욱 확대됐기 때문이다.

    실제 보험개발원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생보사들의 해지환급금은 38조5299억원(일반계정 기준)으로 집계됐다. 2000년 관련 통계 집계 이후 최대 규모로 글로벌 금융위기였던 2008년(22조6990억원)보다 훨씬 큰 규모다.

    해지환급금은 보험계약을 만기까지 유지하지 못하고 해약했을 때 돌려받는 돈으로, 납입한 보험료의 일부만 돌려받게 된다. 원금손실의 위험이 있지만 생활고로 인해 보험을 해약하는 고객이 늘었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고객들이 사망하지 않음으로써 받아 간 생존보험금도 1년 새 5조원 넘게 불어났다. 생명보험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생보사 23곳이 고객에게 지급한 생존급여금은 총 17조5635억원으로 나타났다. 이는 전년도 지급액인 12조5281억원보다 5조354억원(40.2%) 증가한 금액이다.

    생보사의 생존급여금 지급액은 매년 늘어나는 중이다. 연도별 지급액은 ▲2018년 9조8032억원 ▲2019년 9조5593억원 ▲2020년 10조7473억원 ▲2021년 12조5281억원 등 최근 5년새 2배 가까이 늘었다.

    생존급여금 지급액이 늘어난 이유는 기대수명이 늘었기 때문이다. 의학 기술의 발전으로 기대수명이 길어졌고 고객들은 사망하지 않은 채 연금 보험금을 계속 수령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앞으로 생보사가 지급해야 할 돈이 더 많아진다는 의미다.

    이와는 반대로 1인 가구가 늘고 출생 인구도 줄어들면서 주 고객층 감소 현상이 지속되고 있다. 빠져나가는 돈은 많아지는 데 신규 가입이 줄면서 보험사가 운용할 수 있는 자산도 줄어들고 있는 것이다.

    보험연구원은 지난해 10월 '2023 보험산업 전망과 과제' 세미나에서 올해 생보사의 수입보험료는 0.3% 증가에 그치며 사실상 성장이 멈출 것이라고 예측했다.

    당시 보험연구원 측은 "인플레이션 단기 해소 어려움으로 금리 및 주식시장 변동성이 이어질 것"이라며 "경기둔화가 예상보다 심화될 경우 보험산업 성장성 충격도 불가피할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 국내 생명보험사 당기순이익 추이.ⓒ금융감독원
    ▲ 국내 생명보험사 당기순이익 추이.ⓒ금융감독원
    ◆고금리에 변액·퇴직연금보험 실적 '뚝'… 미래에셋·농협생명 직격탄

    지난해 고금리로 가장 큰 타격을 받은 생보사는 미래에셋생명이다. 금리변동에 민감한 변액보험과 퇴직연금보험 위주의 포트폴리오 탓이다.

    변액보험은 보험료 중 일부인 적립보험료를 펀드로 구성해 채권, 주식 등 금융자산에 투자한 후 운용실적에 따라 투자수익을 배분하는 상품이다. 즉 보험금이 확정돼 있는 것이 아니라 투자수익률에 따라 보험금이나 해지환급금이 달라진다.

    주식시장 침체에 따라 변액보험 수익률에 악영향을 미치게되면 가입 유인이 떨어지고 변액보험 해약률이 올라가는 결과를 빚을 수 있다. 결국 지난해 주식시장 침체에 따라 당초 목표했던 변액보험 자산을 늘리기가 어려워졌고 실적 감소로 이어졌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미래에셋생명의 지난해 변액보험 초회보험료는 2774억원으로 전년 동기(2조9440억원)보다 90% 이상 감소했다. 초회보험료는 보험계약 체결 이후 처음으로 보험사에 들어온 금액으로, 보험사의 신규 매출을 가늠할 수 있는 지표로 사용된다.

    변액보험은 미래에셋생명의 연간 수입보험료 절반을 차지할 정도의 주력 상품이었다. 지난해 전체 수입보험료에서 변액보험이 차지하는 비중은 31.4%까지 떨어졌다. 2021년 비중은 60.8%였다.

    주식시장 침체로 미래에셋생명의 변액보험 보증준비금 적립 부담도 커졌다. 변액보험을 판매하는 보험사는 판매 시점의 예정이율보다 투자 수익률이 떨어지게 되면 그 차액만큼의 준비금을 추가로 쌓아야 한다.

    미래에셋생명의 변액보험 보증준비금은 지난해 ▲1분기 1365억원 ▲2분기 1674억원 ▲3분기 1797억원 ▲4분기 1836억원 등으로 꾸준히 늘고 있다.

    결국 미래에셋생명은 지난해 당기순이익으로 전년 대비 41.6% 쪼그라든 561억원을 거뒀다. 국내 시장점유율도 업계 4위에서 6위로 내려앉았다.

    지난해 국내 생보사 중 보험수지적자가 가장 큰 곳은 NH농협생명이었다. 금리연동형 상품의 수입보험료 대비 지급보험금이 두 배 이상을 차지하면서 4조원 넘는 적자를 기록한 것이다.

    보험개발원에 따르면 농협생보의 지난해 보험영업수지차(수입보험료-지급보험금-실제사업비)는 4조4243억원 적자로 집계됐다. 생보사 중 최대 규모로, 전체 보험수지 적자(16조8050억원)의 26.3%에 달할 정도로 절대적인 비중을 차지했다.

    농협생보의 영업수지 적자 원인은 기준금리 인상에 따라 금리연동형 상품의 지급보험금이 크게 늘어났기 때문이다. 금리연동형 상품의 수입보험료는 3조3081억원에 그쳤으나 지급보험금이 7조8152억원으로 두 배 이상에 달했다.

    퇴직연금보험 비중이 큰  푸본현대생명의 보험수지 적자도 2조3653억원에 달할 정도로 업계 상위권이다. 금리연동형 상품의 수지 적자와 함께 금리확정형 퇴직연금의 수지적자가 1조2382억원으로 퇴직연금 쏠림에 따른 유동성 리스크를 겪었던 것으로 보인다.

    업계 한 관계자는 "올해도 고금리 상황이 이어지고 증시가 크게 회복되지 않을 가능성이 큰 만큼 변액보험이나 금리연동형 상품의 실적이 급격히 개선되기 어렵다"며 "해지패널티가 적은 저축성보험과 퇴직연금에서 지급보험금이 급증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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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동성 위기에 저축성보험 판매 급증… 올해 실적악화 '부메랑' 

    지난해 기준금리 인상으로 은행의 고금리 상품이 출시되면서 보험 가입은 줄고 해지는 늘어나는 현상이 확대되면서 지급해야 할 돈이 많아지자 유동성 위기가 찾아왔다.

    급기야 하반기에는 흥국생명의 신종자본증권에 대한 조기상환권(콜옵션) 연기로 보험권에 유동성 우려가 증폭되며 자금조달 마저 경색국면에 접어들었다. 여기에 퇴직연금과 과거 대량 판매했던 저축보험 상품 만기가 도래함에 따라 생보사들은 앞다퉈 고금리 저축성보험을 출시하는 등 실적 방어에 집중했다.

    하지만 저축성보험 판매를 늘리는 건 IFRS17 하에서는 불리한 전략이다. IFRS17에서는 저축보험의 경우 향후 지급해야 할 부채로 인식돼 새 건전성 지표인 K-ICS(킥스) 비율에서는 악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지난해 저축성보험 판매가 많은 한화생명(7조9101억원), 삼성생명(7조7206억원), 교보생명(7조7040억원), 동양생명(5조8362억원), 농협생명(2조7450억원), IBK연금보험(2조2604억원), 푸본현대생명(1조8228억원) 등이 올해 실적악화가 우려되는 이유다.

    특히 저축성보험 판매 비중이 높은 교보라이프플래닛(91.5%), 동양생명(64.1%), IBK연금보험(63.2%), 농협생명(53.3%), KDB생명(49.2%), 한화생명(42.5%), ABL생명(42.2%) 등은 건전성 악화가 예상된다.

    업계 한 전문가는 "지난해는 재무건전성 확보보다는 시장 상황을 개선하기 위한 방편으로 저축보험 판매를 늘렸다"면서 "올해는 수익이나 외형 확대보다는 건전성 차원에서 보장성보험 중심의 판매를 통해 실적 개선을 꾀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 주요 생명보험사 전속설계사 추이.ⓒ금융감독원
    ▲ 주요 생명보험사 전속설계사 추이.ⓒ금융감독원
    ◆새로운 먹거리 찾아나선 생보사… 포트폴리오 다양화 절실 

    사실상 포화 상태에 다다른 국내 보험 시장 여건상 생보사들은 보험금 누수를 최소화하고 새로운 먹거리를 찾아야 한다. 설계사 조직을 강화해 보험판매를 늘리고 해외에서 새로운 활로를 찾는 신한라이프가 대표적이다.

    신한라이프는 지난해 연간 당기순이익 4535억원으로 전년(3916억원·오렌지라이프 실적 포함) 대비 18.4% 증가했다. 다른 보험사와 마찬가지로 자산운용 손익이 감소했지만 저축성보험 상품 실적 향상 등으로 보험영업손익이 증가했다. 

    이에 따라 지난해 보험료수입도 7조7709억원으로 2019년 5조2636억원에서 3년새 2조5000억원 가량 급증했다. 이 기간 국내 보험사중 시장점유율도 6위에서 4위로 뛰었다.

    보험판매 증가에는 설계사 조직이 있었다. 신한라이프는 자회사형 GA인 신한금융플러스를 설립한 이후 전속설계사 1만104명 포함 1만3317명이 됐다. 전속설계사만 따지고 보면 업계 1·2위인 삼성생명(2만3000명)과 교보생명(1만3535명)에 이은 업계 3위 수준이다.

    전속설계사 수는 보장성보험 판매량을 결정하는 척도가 될 만큼 주요 지표다. 보장성보험은 크게 생명보험 고유영역인 종신보험 등 사망보험, 손해보험과 공통영역인 제3보험으로 나뉜다.

    특히 제3보험은 올해 도입된 IFRS17상 장래 이익 측면에서 월등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최근 생보사들이 제3보험 판매량을 늘리기 위한 체질개선에 분주한 이유다.

    게다가 신한라이프는 지난해 베트남 법인이 영업을 시작했다. 이에 따른 영업수익은 127억4700만원, 당기순손실은 41억6800만원을 기록했지만 앞서 현지에 진출한 신한은행·신한카드 등 계열사와 협업해 판매채널을 확대해왔다.

    업계 선두권인 삼성생명과 교보생명도 전속설계사를 앞세워 보장성보험 판매에 집중하고 있다. 최근 교보생명은 부동산 대체전문운용사인 파빌리온자산운용 인수했고 삼성생명은 대체투자 부문에서의 경쟁력 강화를 위해 블랙스톤과 6억5000만달러(약 8400억원) 규모의 펀드 투자 약정을 체결하기도 하는 등 사업 다각화도 꾀하고 있다.

    생보사의 경우 순이익이나 CSM 등 장부상 이익도 충분히 고려해야 하지만 장기적으론 보험계약유지율이 관건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손보사에 비해 장기상품이 많은 만큼 고객이 보험계약을 얼마나 오래 유지하는지가 중요한 지표라는 의미다.

    이석호 한국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보험사 스스로 생산성을 높이고 가격 경쟁력, 상품 경쟁력을 갖춰나갈 여력을 확보해야 한다"며 "정부는 일시적인 지원보단 각종 규제 개선을 통해 보험사가 새로운 먹거리를 창출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줘야 한다"고 진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