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증시에 11억엔(105조원) 유입, 반기 기준 역대 최대일본은 AI 장비·소재주 중심 글로벌 자금 흡수다카이치 정권 성장전략·기업 체질 개선 기대 부각증권가 "셀 코리아보다 아시아 테크 비중 조정"
  • ▲ ⓒ연합뉴스. (Photo by Kazuhiro NOGI / AFP)
    ▲ ⓒ연합뉴스. (Photo by Kazuhiro NOGI / AFP)
    외국인 투자자들이 한국 증시에서 역대 최대 규모의 주식을 팔아치운 반면 일본 증시에는 사상 최대 자금을 쏟아부으며 아시아 투자 비중을 재조정하고 있다.

    한국에서는 코스피 급등에 따른 차익실현과 환율 변동성이 매도 압력으로 작용한 반면, 일본은 AI·반도체 장비·소재 기업의 성장성과 기업 지배구조 개선 기대가 부각됐다. 

    증권가는 이번 자금 이동을 단순한 ‘셀 코리아’가 아니라 한국과 일본을 하나의 AI·반도체 공급망으로 묶어 비중을 조정하는 글로벌 리밸런싱으로 보고 있다.

    2일 한국거래소와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외국인은 코스피시장에서 178조3274억원 순매도했다. 상반기 기준 역대 최대 규모다.

    특히 지난달 29일에는 외국인이 하루 동안 8조2791억원어치를 순매도하며 1998년 관련 통계 집계 이후 일일 기준 최대 순매도 기록을 새로 썼다. 매도는 반도체 대형주에 집중됐다. 외국인은 삼성전자를 3조8000억원, SK하이닉스를 3조2000억원 각각 순매도해 이날 전체 순매도액의 약 90%를 차지했다.

    대규모 매도 여파로 외국인 지분율도 낮아졌다. 지난달 말 기준 삼성전자의 외국인 지분율은 약 47%로 16년7개월 만에 최저 수준까지 하락했고, SK하이닉스 역시 약 50%로 떨어지며 최근 수년 내 가장 낮은 수준을 기록했다.

    다만 올해 상반기 역대 최대 규모의 순매도에 나섰음에도 코스피 시장 내 외국인 지분율은 41%에 달한다. 이는 1년 전 32.3%보다 약 9%포인트 높고, 올해 초 36.65%와 비교해도 4%포인트 이상 상승한 수준이다. 주가 상승에 따른 보유자산 가치 증가가 매도 규모를 상쇄하면서 하반기에도 추가 차익실현이 예상된다. 

    반면 일본 증시에는 해외 자금이 빠르게 유입되고 있다. 한국경제 보도에 따르면 도쿄증권거래소에서 올해 상반기 해외 투자자의 일본 현물주식 순매수 규모는 10조9391억엔(약 104조6000억원)으로 집계됐다. 이는 반기 기준으로 기존 최대였던 2013년 상반기 8조3000억엔을 넘어선 역대 최고 수준이다.

    증권업계는 한국 증시 급등에 따른 차익실현과 글로벌 자산 재배분(리밸런싱)이 이번 자금 이동의 주요 배경이라고 분석했다. 코스피지수는 상반기 101% 급등한 반면 일본 닛케이225지수는 39% 상승하는 데 그치면서 상대적인 투자 매력이 달라졌다는 설명이다.

    글로벌 자산운용사들은 한국과 일본을 하나의 아시아 반도체·AI 생태계로 바라보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블랙록과 골드만삭스 등은 한국을 HBM과 D램 등 메모리 반도체 완제품의 핵심 공급국으로, 일본은 반도체 장비와 소재를 담당하는 상류 공급망으로 평가한다. 이에 따라 투자자들은 완제품 중심인 한국 비중을 줄이고 장비·소재 중심의 일본 비중을 확대하는 방식으로 포트폴리오를 조정하고 있다는 것이다.

    펀드 성격에 따라서도 두 시장은 사실상 하나의 투자 대상으로 분류된다. MSCI 기준으로는 일본이 선진국(DM), 한국이 신흥국(EM)에 속하지만, 아시아 펀드와 글로벌 테크 펀드에서는 두 시장을 하나의 투자 풀로 운용하는 사례가 많다. 일본의 안정성과 기업가치 제고(밸류업)를 높게 평가할 때는 일본 비중을 확대하고, 성장성과 모멘텀이 부각될 때는 한국 비중을 늘리는 방식으로 자금이 이동하는 구조다.

    외국인 자금은 일본 AI 관련 기업으로 집중되고 있다. 반도체 제조장비 업체인 도쿄일렉트론을 비롯해 데이터센터용 광섬유 수요 증가의 수혜를 입고 있는 후지쿠라, 조미료 기술을 기반으로 반도체 절연재료 분야에서 세계적인 경쟁력을 확보한 아지노모토 등이 대표적인 투자 대상으로 꼽힌다.

    해외 투자자의 일본 주식 매수세는 2025년 10월 다카이치 사나에 정권 출범 전후로 더욱 강해졌다는 분석이다. 다카이치 정권의 높은 지지율과 성장 중심 경제정책이 일본 증시에 대한 기대감을 키우고 있다는 설명이다.

    시장에서는 일본 기업들의 체질 개선도 외국인 자금 유입을 이끄는 요인으로 보고 있다. 기업 지배구조 개혁과 자본 효율성 제고, 주주환원 확대가 이어지면서 일본 증시에 대한 평가가 달라졌다는 것이다. 반면 한국은 AI 반도체 성장 기대에도 불구하고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중심으로 차익실현이 이어지고 있으며, 원화 약세와 높은 환율 변동성, 글로벌 자산 재배분 움직임 등이 외국인 투자심리에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현재 외국인의 움직임은 한국을 떠나 일본만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AI와 반도체 공급망 전반에서 투자 비중을 재조정하는 과정으로 볼 필요가 있다"며 "다만 외국인 지분율이 여전히 높은 만큼 코스피가 추가 상승할 경우 차익실현 매물도 계속 나올 수 있어 수급 변화를 면밀히 살펴봐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