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권상희의 컬쳐 홀릭] 재즈는 복잡 미묘한 우리네 인생살이와 닮은 모습이다. 결코 매끄럽지 않은 거친 느낌, 그것이 만들어내는 굴곡은 때론 질벅거리기도, 끈적거리기도 한다. 음악이 끝나도 끝나지 않은 듯한 여운은 계속해서 귓가를 맴돌고, 때로 묘한 상상력을 자극한다.

     

    그런 느낌들 때문에 유난히 난 재즈가 좋다. 그리고 한때 멋진 재즈싱어를 꿈꾸기도 했었다. 지금은 아쉽게도 과거형이 돼버린 희망사항이 됐지만.

     

    재즈가 주는 특별한 매력에 이끌려 매년이맘때면 자라섬을 찾는다. 어두운 재즈바 한켠에서 들었던 음악이 닫힌 공간을 벗어나 대자연과 만나게 되면서 무한대로 확장된 느낌을 선물처럼 선사하는 곳, 그곳이 바로 자라섬이다. 그리고 그곳에서 재즈를 사랑하는 수많은 사람들과 만나게 되면서 비로소 축제는 완성된다. 황폐하기만 했던 자라섬은 재즈와 함께하면서 그렇게 음악이 살아 숨 쉬는 곳으로 멋지게 성장했다.

     

    지난 9일부터 11일까지 사흘간 있었던 제 12회 자라섬 재즈페스티발은 한밤의 추위에도, 비가 오는 궂은 날씨에도 변함없이 뜨거웠다.

     

    “이런 시골에서 재즈가 어울리기나 해” 이런 대다수 지역주민들의 부정적인 반응을 무릅쓰고 2004년 용감하게 시작했던 작은 축제가 20여만 명 이상의 관객이 함께하는 세계 3대 재즈페스티발로 커나가게 될지 그 누가 상상이나 할 수 있었을까? 일본에서 재즈 관련 행사를 마친 B급 뮤지션들이 거쳐 가던 과거의 자라섬은 이제 세계 최정상의 재즈뮤지션들이 가장 선호하는 축제의 장이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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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라섬 재즈아일랜드에서 선보인 27개국 45개 팀 가운데 특히 5인조 밴드 스파이로 자이라의 무대, 파올로 프레수, 오마르 소사, 트릴록 구르투 트리오와 아프리카의 스팅으로 불리는 베이시스트 리차드 보나의 환상적인 무대는 일상에 찌들어 닫혀있던 오감을 깨워주며 자라섬 만이 가질 수 있는 특별한 재즈의 힘을 느끼게 했다. 메인무대 외에도 자라섬 이 곳 저곳에서 펼쳐지는 크고 작은 무대는 마니아들 뿐 아니라 일반 지역주민들도 누구나 쉽게 재즈를 접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 주었다.

     

    이제 재즈는 자라섬의 대표 장르가 되었고 이와 함께 가평군의 지역 브랜드 또한 상승했다. 물론 타 지역의 축제와 달리 유료로 진행되는 탓에 상업화 논란이 있기도 하다. 그러나 대다수의 지역 행사가 축제를 위한 축제에 그치는 것에 비하면 자라섬 재즈 페스티발은 지역경제에 커다란 시너지 효과를 주는 문화상품임에 틀림없다. 재즈와 만나기 전 가평군과 그 이후의 가평군은 확연히 다르다. 쓸모없는 곳이었던 자라섬의 변화가 이를 입증해 준다. ‘노는 것이 돈이 된다’는 경제 개념을 도입한 재즈페스티발은 상업화 속에서도 길을 잃지 않고 꾸준히 성장하고 있다.

     

    가을밤, 자라섬뱅쇼(hot wine)에 기분 좋게 취해 함께 한 재즈축제, 그것은 무한 자유의 향연 그 자체였다. 경직된 심신이 음표에 억매이지 않는 재즈처럼 자유로울 수 있었던 시간, 불규칙한 호흡이 자연과 음악에 위로 받고 마침내 힐링 되는 곳, 내년 자라섬 재즈페스티발이 기다려지는 이유일 게다.

     

    문화평론가 권상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