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으른 선비의 책장을 세어주라

[마케팅 버즈피드] 마케팅, 교육, 운동…생활전반에 파고든 '게임화'

이연수 기자 프로필보기 || 최종편집 2017.03.29 14:5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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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화(Gamification)라는 말은 2002년 영국의 프로그래머인 닉 펠링(Nick Pelling)이 만들었다고 한다. 이 말은 2010년경에 이르러 전세계적으로 통용되기 시작했고, 마케팅 업계의 기본적인 기법 중 하나로 자리잡았다. 게임화 기법이 마케팅에서만 이용되는 것은 아니다. 지루하거나 따분해지기 쉬운 활동, 이를 테면 설문조사나 교육, 운동 프로그램 등에도 다양한 게임화 기법이 사용되어 이용자들의 지속적인 참여를 독려한다. 

컴퓨터나 비디오 게임의 유형이 다양한 만큼 마케팅의 게임화 기법도 다양하다. 페이스북이나 구글, 포스퀘어(Foursquare) 등에서 특정 업소의 정보를 이용자들로부터 수집하기 위해 ‘업적달성 배지’를 부여하거나 레벨을 부여하는 경우가 가장 간단한 사례들이다. ‘명예의 전당’ 같은 것을 만들어 가장 행동목표 완수를 잘 한 사람들의 순위를 보여준다든지, 가상화폐를 만들어 사람들에게 배포한다든지, 아니면 작은 캐주얼 게임 등을 삽입해서 사람들이 지루함을 느끼지 않고 마케팅 활동에 참여할 수 있게 독려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단순한 보상체계로는 사람들을 지속적으로 끌어들이기 어렵다. 복잡한 컴퓨터 게임 기획자들처럼 생각할 줄 알아야 한다. 

2016년 칸 라이언즈 크리에이티비티 페스티벌(칸 국제광고제)에서 크리에이티브 데이터 부문 금상을 받은 
에쿠아도르 통계청의 "라이브 로고". 에쿠아도르인들의 삶을 보여주는 통계숫자에 따라 
통계청 로고가 바뀌게 했다. 국민 전체가 노력해서 완전한 동심원 로고를 만드는 게 목적이라니 
일종의 집단 게임화 기법으로 봐도 좋을 것이다. 

생물학적으로는 사람들이 게임에 몰두하는 현상을 ‘뇌보상회로’로 설명한다. 만일 동물이 먹거나, 섹스를 하거나, 새끼를 키울 때 아무런 즐거움을 느끼지 못한다면 어떨까? 아마 단 한 세대도 못 가고 당장 멸종되고 말 것이다. 뇌보상회로란 바로 이렇게 생명유지에 필수적인 활동을 할 때 쾌감을 느끼게 만들어줌으로써 힘든 일조차 반복적으로 행동하게 만드는 장치다. 게임이라고 하면 중독이란 단어를 먼저 떠올리는 사람도 꽤 많다. 중독이란 바로 쾌감을 느끼는 이 뇌회로에 이상이 생겨서 특정 행동을 반복함으로써 쾌감을 얻으려는 상태를 말한다. 

잘 만든 컴퓨터 게임은 지속적으로 크고 작은 성취감을 느끼게 해준다. 게임을 하는 사람의 뇌는 성취감을 통해 도파민이 분출되는 상황을 기대하며, 이 기대가 무너지면 뇌는 곧 흥미와 동기를 잃어버린다. 마케팅의 게임화도 사람들이 지속적으로 집중하고 끝까지 참여하게 만들기 위해서 곳곳에 성취감을 주는 요소를 심어놓아야 한다. 적립금을 모은다든지, 매일처럼 로그인해서 배지를 탄다든지 하는 것은 기본적으로 ‘선형적’ 성취감을 부여한다. 여기에 스토리텔링이나 인터액티비티(interactivity)를 결합시킴으로써 보다 정교하고 복잡한 보상체계를 제공할 수도 있다. 

브라질 혈액은행과 축구구단 비토리아가 함께 집행해 2013년 칸 라이언즈에서 금상 등 다양한 부문에서 수상했던 

캠페인 "나의 피는 검정과 빨강". 유니폼 색깔을 하얗게 바꾼 축구팀 비토리아가 팬들이 헌혈 목표를 달성해갈수록 

유니폼 색깔을 단계적으로 바꿔갔다. 역시 집단적 게임화의 일종으로 볼 수 있다. 


일례로 2012년 유니클로는 특정장소에 특정한 나비가 나타나게 만드는 증강현실기술을 이용해 아이버터플라이(iButterfly)라는 앱을 만들었다. 이 앱을 통해 사람들이 가상의 나비들을 수집하고 이를 쿠폰으로 이용할 수 있게 한 것이다. 이 앱은 태국 등 동남아시아에서 여전히 사용되고 있다. 나이키의 퓨얼밴드(Fuelband)는 아마도 가장 유명한 마케팅 게임화 사례가 아닐까 싶다. 브라질 바이야 주의 축구팀 비토리아가 헌혈을 독려하기 위해 유니폼 색깔을 바꾼 것도 하나의 거대한 게임이었다. 

하지만 문제는 있다. 대개의 현대인들은 한 두 가지 브랜드만 이용하지 않는다. 실제 도시인들의 지갑이나 스마트폰에는 자기자신도 다 기억하지 못할 만큼 여러 장의 적립카드가 들어 있다. 많은 사람들이 이런 적립카드의 단순한 보상체계를 챙기는 것조차 번거롭다고 생각한다. 이들 브랜드들이 다 제각기 ‘보다 몰입도 있고 중독성 있는 게임화’를 위해 보상체계를 더욱 더 복잡하게 만든다면 과연 얼마나 효과가 있을까? 충성도 높은 일부 고객에게만 보상이 주어지는 상황이 싫어서 오히려 그 브랜드를 외면하는 경우도 있을 수 있다. 

사실 게임화라는 용어는 이미 인류가 탄생한 이래 세상에 존재하던 행동에 이름을 붙인 것 뿐이다. 초등학생들이 숙제를 잘 했을 때마다 받는 스티커, 금연에 성공해 받는 기념패 같은 것들도 다 그런 원리다. 옛 속담에서 말하듯 게으른 선비가 책장을 자꾸 세는 것은, 내가 그래도 1/5을 읽었구나, 1/3을 읽었구나 하면서 중간중간 작은 성취감을 느껴 자신에게 동기를 부여하기 위한 것이었다. 디지털 시대가 도래하면서 그런 보상체계가 좀 더 인터액티브하고 매력적인 모습으로 바뀌었을 뿐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과거 스스로 목적을 설정하고 스스로 "게임화"를 즐기던 사람들이 점차 수동적으로 변해가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든다. 사람들이 건강보조 앱을 통해 성과를 자랑하고 소셜미디어로부터 응답을 받기 위해서만 어떤 행위를 이어나갈 수 있다면, 그것도 결국 일종의 중독이다. 매 한 시간마다 나가서 담배를 피우는 흡연중독자와 동기 면에서 다를 바 없다. 당장 어떤 보상이 주어져야만 행위를 할 수 있는 사회에서는 더 큰 보상을 위해 참고 기다리는 법을 배우기 힘들다. 사탕이나 초콜릿을 받는다는 약속 없이는 그 어떤 고통도 인내할 수 없는 사회에, 진정한 성인(成人)이 존재하긴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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