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석 전날 증인신청 철회하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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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19대 국회 마지막 국정감사가 8일 마무리 됐다. 올해 피감기관 수는 역대 최고치인 779곳으로 전년(672곳)을 크게 웃도는 수준이었지만 질적으론 오히려 퇴보했다. 무분별한 피감기관 및 일반 증인 채택이 늘면서 각 상임위는 과부하에 시달렸다. 수박 겉핥기식 질의는 물론 일부 기관장들은 질문도 받지 못한 채 발길을 돌려야 했다.

    기업인들의 사정은 더 참혹했다. 서너 시간 대기는 기본에 10여초 간 뱉어낸 답변은 "죄송합니다", "시정하겠습니다" 등으로 일관돼 '국감 죄인'이라는 별명이 붙기도 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국회 안팎에서는 서면진술서를 확대하고 증인 신청을 제한해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받고 있다. 


    ◇ 기업인 증인 철회 '봇물'…불출석 예상돼도 일단 신청

    국감이 막바지에 접어들면서 일부 상임위를 중심으로 기업인들의 증인철회가 잇따랐다. 8일 국토위 국정감사에는 건설사 사장들이 몽땅 제외됐다.

    당초 출석 통보를 받았던 박영식 대우건설 사장, 정수현 현대건설 사장, 임병용 GS건설 사장, 최광철 SK건설 사장, 이중근 부영 회장, 정창선 중흥건설 회장 등이다.

    이들 건설사 사장을 증인으로 요청한 새정치연합 김상희·김경협 의원은 당초 부천 뉴타운 해제와 관련해 질의할 예정이었다. 뉴타운과 관련해 지역내 분쟁이 건설사의 소송으로 번지자 의원들은 관련법을 정비하고, 건설사는 소송을 자제하겠다고 약속하는 것으로 증인 신청은 없던 일이 됐다. 두 의원의 지역구는 각각 부천 소사갑·부천 원미갑이다.

    이밖에 ▲정창선 중흥건설 회장은 암투병으로 위독한 상황이라는 점 ▲이중근 부영 회장은 임대아파트가 표준원가를 넘지 않는다는 이유로 ▲대우건설 박영식 사장 대신 임원 출석으로 방향을 틀었다.

    이를 두고 "이렇게 취소할 거면 여야가 왜 수차례 명단을 주고 받아가며 증인을 신청했느냐"는 지적이 나왔다.

    또 7일 정무위 국정감사에서는 효성 조현준 사장과 정준양 전 포스코 회장이 불출석 사유서를 내고 회의에 불참했다.

    두 사람은 일제히 '검찰조사'를 이유로 출석의 어려움을 강조했다. 정무위는 두 번이나 출석하지 않은 이들에 대해 검찰 고발을 검토한다는 입장이지만 이미 예견됐던 일이란 시각이 짙다.

    정무위 소속 한 여당 의원은 본지와 통화에서 "만약 출석을 했어도 '검찰 조사 중이라 답변하기 어렵다', '수사에 영향을 끼칠수 있다' 등을 들어 답변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애당초 출석 가능성이 낮고 질의를 통해 나올만한 내용도 한정돼 있음에도 무리하게 증인을 채택했다는 지적이다.



    ◇ 20대 국회는 달라질까, 증인실명제 도입 초읽기

    사정이 이렇다보니 근본적으로 국정감사의 증인 채택 요건을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재계를 중심으로 나오고 있다.

    증인신청 자체가 지역구 활동과 연계된 경우가 종종 있는데다가 서면진술서를 통해 입장을 확인할 수 있는 만큼 기업인들에게 출석 자체가 '망신살'인 국감에 대한 부담을 덜어줘야 한다는 것이다. 

    재계는 증인 신문을 앞두고 신문요지서를 사전에 보내고 서면 진술서 제출을 의무화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국감에서 출석 요지를 파악하기 위해 대관 업무자 및 홍보실 등이 몽땅 투입되는 게 현실이다.

    이밖에도 증인 보호를 위한 장치가 필요하다고 보고 있다. 상임위원들의 모욕적 발언이나 고함 등이 있을 때 상임위원장이 제재할 방안이 마련돼야 한다는 것이다.

  • ▲ 롯데그룹 신동빈 회장이 지난달 17일 국회 정무위 국정감사에 출석해 발언하고 있다.  ⓒ 국회공동사진기자단
    ▲ 롯데그룹 신동빈 회장이 지난달 17일 국회 정무위 국정감사에 출석해 발언하고 있다. ⓒ 국회공동사진기자단

     

    국정감사에 대한 부담 때문에 기업이 사업 방향을 틀거나 취소하는 등 사례도 해마다 나오고 있다.

    롯데그룹은 롯데리아가 치킨 배달 시장까지 잠식한다는 비판에 따라 치킨배달 광고를 전면 중단키로 했다. 또 골목식당 상권 침해 논란을 빚은 한식뷔페 사업에도 손을 떼기로 했다.

    지난 6일 국회 정무위 소속 새정치연합 이상직 의원은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이 이 같은 서면 답변을 보내왔다"며 내용을 공개했다. 이 같은 논의는 '서면'으로 이뤄졌다.

    새누리당은 이와 관련해 고질적인 국정감사를 개선하기 위한 TF(태스크포스)를 구성해 제도 개선에 착수했다.

    김정훈 정책위의장은 8일 "국감 관행이 20대 국회에는 이어지디 않도록 TF를 구성해 제도 개선에 나설 것"이라 밝혔다. 김 의장은 "19대 국회의 마지막 국정감사는 순기능을 찾기 어려웠고 막말, 호통국감이 아니었나"라면서 "각 상임위원회는 제기된 현안 과제의 쟁점을 체계적으로 정리해 후속대책 마련에 착수할 것"이라 했다.

    우선 그 첫 작업은 국정감사 증인채택 실명제가 될 것으로 보인다. 김 정책위의장은 "누가 어떤 이유로 증인을 신청했는지 공개 실명제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많았다"며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할 것"이라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