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마트·옥시 각각 100억 보상...원료공급 SK케미컬, 소극적 행보
  • ▲ 서울중앙지검 현관. ⓒ 뉴데일리 정상윤 기자
    ▲ 서울중앙지검 현관. ⓒ 뉴데일리 정상윤 기자

우리 사법사상 최대 규모 ‘제조물 책임’ 사건으로 기록될 가습기 살균제 집단 사망 사건을 수사 중인 검찰의 행보가 빨라지면서, 살균제 제조 및 판매기업에 대한 사법처리 수위가 관심을 모으고 있다.

검찰 안팎에서는 현재 수사 속도를 볼 때, 이르면 이번 주 안에 첫 사법처리 대상자가 윤곽을 드러낼 것이란 관측이 나오고 있다.

이번 사건에 연루된 기업들의 태도 역시 국민적 공분을 사고 있다. 옥시와 롯데마트 등 일부 기업은 100억원대의 금액을 보상키로 하는 등 소비자들의 피해 회복을 위해 성의를 보이고 있으나, 옥시 측에 원료를 공급한 SK케미칼 등 일부 기업은, 소극적인 자세로 일관해 비판을 자초하고 있다.

살균제 제조 및 판매기업들은 검찰이 전방위적으로 수사망을 좁혀오자, 이번 사건의 파장이 어디까지 확대될지 촉각을 곤두세우면서, 검찰의 칼끝을 예의 주시하고 있다.

이번 사건의 최대 관심사 가운데 하나는 가습기 살균제 제조-판매기업에 대한 처벌 수위다. 나아가 처벌 대상자가 어느 선까지 확대될지도 업계 최대의 관심사 중 하나다.

법조계 주변에서는 옥시 영국 본사에 대한 검찰 수사가 가능할지 여부도 중요한 변수로 주목을 받고 있다. 다만 이 부분은 한국과 영국간의 형사사법공조는 물론 외교적 부분까지 연계돼 있어, 지금 시점에서는 속단이 어렵다.

지금까지 수사결과를 기준으로 할 때, 검찰이 제조 및 판매기업 관계자에게 적용할 조항은  ‘업무상 과실치사’가 가장 유력하다.

다만 일부 시민단체에서는 옥시가 살균제 원료 중 하나인 PHMG(폴리헥사메틸렌구아디닌)가 흡입시 독성을 나타낸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판매를 계속했다“며,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죄 적용을 주장하고 있다.

시민단체인 환경보건시민센터에 따르면, 지금까지 가습기 살균제 흡입으로 피해를 입은 사람은 사망 228명을 포함해, 모두 1,528명에 이른다. 그러나 정부가 인정한 가습기 살균제 사망 사건 피해자는 95명으로 차이가 난다.

질병관리본부는 2013년 7월부터 2014년 4월까지 피해자 1차 조사를, 환경부는 2014년 7월부터 지난해 4월까지 2차 조사를 각각 진행했다. 그 조사를 통해 정부가 가습기 살균제 공식 피해자로 인정한 사람은 사망자를 포함 모두 221명이다.

문제는 공소시효다. 최초 사건 발생일로부터 7년 이상 시간이 흐르면서, 살인죄가 아닌 일반 과실치사나 업무상과실치사상의 죄를 적용한다면, 공소시효가 지나 처벌을 할 수 없는 사건이 전체의 4분의 1 이상이 되기 때문이다.

사건 관계자들에게 업무상과실치사상(형법 268조)을 적용할 경우, 공소시효는 7년이다. 정부가 가습기 살균제 사망 피해자로 인정한 95명 가운데 사망시점이 현재로부터 7년이 지난 사람은 24명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올해가 지나면 공소시효가 지나 처벌을 할 수 없는 사건은 전체의 35%를 넘어설 것으로 전망된다.

이런 사실은 검찰도 인식하고 있다. 때문에 사건을 전담하고 있는 서울중앙지검 형사2부(부장검사 이철희)는, 이번 사건의 혐의 적용에 있어, 업무상과실치사상과 살인죄 적용 여부를 모두 열어두고, 법리를 검토 중이다.

검찰이 살인죄 적용까지 길을 열어놓긴 했지만, 공소유지 가능성을 고려할 때, 업무상과실치사상을 적용할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높다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다.

이 경우 사망시점이 이미 7년을 경과한 사건에 대해서는 가해자가 밝혀지더라도 기소할 수 없다. 정부가 인정한 전체 사망사건의 약 4분의 1이 ‘처벌할 수 없는’ 공소권없음 처분으로 마무리될 가능성이 그만큼 높다는 것이다.

공소시효는 범죄가 완성될 날부터 시작된다. 살인 혹은 사망사건의 기산시점은 당사자가 숨진 당일이다.

형사소송법이 인정하는 시효 중단 사유도 없기 때문에, 업무상과실치사상죄를 적용할 경우, 위에서 설명한 것과 같은 무더기 ‘공소권없음’ 처분이 불가피하다. 시간이 흐를수록 사정은 더 어려워져, 시효 만료로 처벌할 수 없는 사건이 점점 더 늘어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반면 검찰이 살인죄 적용으로 가닥을 잡는다면 시효 문제는 해결된다. 현행법 상 살인죄의 공소시효는 15년이다.

사건 진상규명을 위해 전담수사팀까지 꾸린 검찰은, “이런 사실을 잘 알고 있다”며, “수사에 속도를 내고 있다”고 입장을 밝혔다.

사건을 수사한 경찰은 지난해 9월 독성물질이 들어간 가습기 살균제 제조·판매업체 8곳 관계자들을 검찰에 기소의견으로 넘겼다. 경찰이 이들에게 적용한 혐의는 업무상과실치사상.

사건을 배당받은 서울중앙지검 형사2부는 지난해 10월 옥시 본사와 연구소, 롯데마트 등을 압수수색했으며, 올해 1월 특별수사팀을 만들었다. 검찰은 전담수사팀을 구성하면서 기존에 맡았던 사건 대부분을 다른 부서로 넘기는 등 이 사건 진상규명에 강한 의지를 드러냈다.

이후 수사팀은 올해 2월 옥시와 롯데마트, 홈플러스 등 가급기 살균제 제조·판매기업을 추가 압수했다.

특히 검찰은 가습기 살균제의 인체 유해성, 이 사건 피해자들이 겪은 질환과의 인과관계, 제조업체 관계자들이 미리 독성을 인지했는지 여부, 업체 관계자들이 외부 연구기관의 실험보고서를 왜곡·은폐했는지 여부에 초점을 맞췄다.

그 결과 검찰은 PHMG 인산염 또는 PGH 성분을 함유한 가습기 살균제가 피해자들의 폐 손상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수사팀은 가장 많은 피해를 발생시킨 업체로 지목받은 옥시가, 외부 실험기관이 제출한 보고서 중 자신들에게 불리한 내용을 숨기려 한 정황을 밝혀내는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

19일과 21일 옥시 인사 및 민원담당 임직원을 소환 조사한 수사팀은, 25일 마케팅 담당 직원을 불러 허위과장광고 관련 내용을 조사한 뒤, 신현우 전 대표 등 전현직 임직원을 부를 예정이다.

검찰은 이들에 대한 소환조사가 마무리되는 대로, 관련자들에게 대한 사법처리 수위를 결정한 뒤, 중간수사 결과를 발표할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