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부사업 입찰 12월로 연기… 뒷심 발휘 절호의 기회
  • ▲ 말레이시아~싱가포르 고속철 건설사업 MOU.ⓒ연합뉴스
    ▲ 말레이시아~싱가포르 고속철 건설사업 MOU.ⓒ연합뉴스

    추정 사업비 15조 원쯤의 대형 철도 인프라 사업인 말레이시아~싱가포르 고속철도 건설사업(이하 말~싱사업)에서 말레이시아 총선 결과로 말미암아 우리나라가 어부지리를 얻을 가능성이 제기된다.

    나집 라작 말레이시아 총리의 실각 여파로 유력 주자였던 중국과 다크호스로 떠오른 유럽연합 컨소시엄이 사실상 아웃된 거나 진배없다는 관측이 나오면서 수주전이 한·일전 양상을 띨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11일 철도업계 설명을 종합하면 말~싱사업 수주전에 지각변동이 예상된다. 진앙은 최근 끝난 말레이시아 총선이다.

    소식통과 외신에 따르면 지난 9일 치러진 말레이시아 총선에서 신야권연합이 승리해 독립 후 61년 만에 첫 정권교체를 이뤄냈다. 말레이시아 선거관리위원회 개표 결과 신야권연합 희망연대(PH)가 하원 222석의 과반인 113석을 확보했다. PH와 협력 관계인 보르네오섬 사바 지역정당 와리산도 8석을 따냈다.

    반면 통일말레이국민기구(UMNO)를 주축으로 한 집권당연합 국민전선(BN)은 79석을 얻는 데 그쳤다. 기존 131석보다 52석이 줄었다. BN은 집권 61년 만에 야권이 됐다.

    나집 총리를 비롯해 여권 수뇌부의 부정부패 스캔들과 민생악화 등이 영향을 끼쳤다는 분석이다. 나집 총리는 2015년 국영투자기업(1MDB)에서 수조 원의 나랏돈을 비자금으로 빼돌렸다는 의혹에 휘말렸다. 말레이시아 사법당국은 무혐의로 수사를 종결했으나 돈세탁 의혹에 관한 조사는 진행 중이다.

    PH 승리로 새 총리에는 93세의 마하티르 전 총리가 15년 만에 복귀할 것이 확실시된다.

    1981~2003년 22년간 말레이시아를 이끌었던 마하티르 전 총리는 나집 총리의 후견인이었으나 비자금 스캔들이 터지자 총리 퇴진운동을 벌였고 BN에서 축출됐다. 이후 야당 지도자로 변신해 선거운동을 지휘했고 PH 총리 후보로 추대됐다.

  • ▲ 말레이시아 마하티르 총리 복귀.ⓒ연합뉴스
    ▲ 말레이시아 마하티르 총리 복귀.ⓒ연합뉴스

    문제는 마하티르가 선거운동 기간 나집 총리의 친중(親中) 의존 성향에 문제를 제기해왔다는 점이다.

    나집 총리는 그동안 각종 국제행사에서 수시로 중국 시진핑 국가주석과 만나왔다. 이런 친중 행보로 중국과 말레이시아는 전통적인 우방국으로 분류돼왔다.

    말~싱사업 수주전에서도 중국은 자금력과 함께 나집 총리와의 우호적인 관계를 앞세워 가장 유력한 사업후보로 거론돼왔다.

    그러나 이번 총선에서 나집 총리가 실각하고 마하티르가 친중 성향을 문제시하면서 일각에서는 중국이 수주전에서 사실상 밀려났다는 분석을 조심스럽게 내놓는다.

    나집 총리가 이끈 BN의 총선 패배 유탄은 중국뿐 아니라 독일 지멘스·프랑스 알스톰의 유럽연합 컨소시엄에도 날아들었다. 유럽연합 컨소시엄은 말~싱사업 파트너로 말레이시아 현지에서 전문성과 실적을 인정받는 조지 켄트와 손을 잡아 하부(노반·건축)사업 수주의 다크호스로 떠올랐다.

    조지 켄트 회장은 나집 총리와 어릴적부터 친구사이로 알려졌다. 나집 총리 후광으로 적잖은 사업을 따낸 것으로 전해졌다. 돌려 말하면 나집 총리 실각으로 조지 켄트의 컨소시엄 합류 효과는 빛이 바랠 공산이 크다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철도업계 관계자는 "말레이시아 현지에서는 말~싱사업에서 중국이 아웃되고 유럽연합 컨소시엄은 타격이 불가피하다는 의견이 적잖게 나온다"고 전했다.

    중국과 유럽연합 컨소시엄의 불행은 우리나라와 일본에는 기회로 작용할 전망이다. 초반 한·중·일 3파전 양상이던 수주전은 후반으로 갈수록 일본과 우리나라가 각각 기술력과 가성비(가격 대비 성능)를 내세워 경쟁하는 한·일전으로 바뀔 것으로 보인다.

    일본은 발 빠르게 말레이시아 현지에 사무실을 내고 접촉면을 넓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우리나라는 아직 현지 사무실이 없다.

    말~싱사업은 말레이시아 총선과 맞물려 당분간 휴지기에 들어간다. 애초 다음 달 말 상부(궤도·시스템·차량)사업 입찰을 마감할 예정이었으나 참가국 요청 등으로 오는 12월28일로 늦춰졌다.

    철도업계 관계자는 "입찰제안요청서(RFP) 내용이 복잡하고 발주국이 제공하는 자료가 불충분해 검토시간이 더 필요하다는 의견이 받아들여졌다"며 "큰 사업인 만큼 입찰제안서 제출기한이 촉박하면 부실한 제안서가 나올 수 있다. 사업검토의 정확성을 높일 준비시간을 벌어 다행"이라고 했다.

    일본도 시간을 벌기는 매한가지다. 하지만 그동안 정부 차원의 지원이 부족해 참여기업의 각개격파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던 우리나라로선 뒷심을 발휘할 절호의 기회를 맞은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