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7조 공사비 절반은 KR이 덤터기선로사용료로 건설비 회수 불가능… 졸속 추진에 혈세 낭비 우려
  • ▲ 예타 면제 대상사업 발표하는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연합뉴스
    ▲ 예타 면제 대상사업 발표하는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연합뉴스
    정부가 대규모 토건사업을 중심으로 예비타당성 조사(이하 예타)를 면제하면서 내년 총선을 의식한 선심성 정책이란 지적이 나오는 가운데 졸속 추진에 따른 부작용과 후폭풍이 우려된다.

    이번에 예타가 면제된 KTX 남부내륙철도(4조7000억원)와 평택~오송 복복선화(3조1000억원) 사업을 통해 예상되는 부작용과 문제점을 짚어본다. 이 두 사업은 정부가 발표한 '광역 교통·물류망 구축' 부문 총사업비(10조9000억원)의 71.6%, 전체 예타 면제 대상 사업비(24조1000억원)의 3분의 1에 각각 해당할 만큼 비중이 높다.


    정부는 지난 29일 국무회의를 열고 총사업비 24조1000억원 규모의 23개 예타 면제 대상 사업을 의결했다. 정부는 국가균형발전과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해 예타 면제 프로젝트를 추진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경제전문가와 시민사회단체는 내년 총선을 앞두고 지역숙원사업을 대거 포함하는 나눠먹기식 정책에 불과하다며 혈세 낭비를 조장한다고 비판한다.

    일각에선 이번 예타 면제가 졸속으로 추진됐다는 지적도 나온다. 광역 교통·물류망 구축사업 중 대규모 사업비가 투입되는 철도사업이 대표적이다.

    경남지역 숙원사업이자 문재인 대통령 최측근인 김경수 경남지사의 1호 공약인 김천~거제 남부내륙철도의 경우 4수 만에 사업 추진이 결정됐다. 이 사업은 수도권과 경·남북 내륙을 고속철도로 연결한다. 서울~거제 간 이동시간이 4시간30분에서 2시간40분대로 단축될 것으로 기대된다.

    이 사업은 김천·진주·통영·거제의 인구가 적어 사업성이 낮다고 판단돼왔다. 지난 이명박 정부 당시 예타에서 비용대비 편익비율(B/C)이 0.3에 그쳐 무산된 바 있다. 100원의 돈을 썼는데 그로 인해 얻은 편리함이나 유익함은 30원에 그쳤다는 얘기다. 이후 2016년 복선을 단선사업으로 바꿔 재정사업을 재추진했으나 예타 결과는 B/C 0.72, 지역균형발전 등에 관한 계층화 분석(AHP)값이 0.43으로 나왔다. B/C는 1.0, AHP는 0.5보다 커야 사업성이 있다고 판단한다.

    물 건너간 듯 보였던 사업은 현대건설이 민자사업을 제안하면서 부활해 지난해 예타에 해당하는 민자적격성 조사를 받았다. 결과는 낙제였다. B/C가 예타 때와 비슷하게 나왔다. 그러나 추진 동력을 잃었던 사업은 지난해 10월 정부가 예타 면제 프로젝트를 가동하면서 기사회생했다.
  • ▲ 경남도청 입구에 걸린 남부내륙철도 예타 면제 환영 펼침막.ⓒ연합뉴스
    ▲ 경남도청 입구에 걸린 남부내륙철도 예타 면제 환영 펼침막.ⓒ연합뉴스
    문제는 이 사업이 무늬만 고속철로 건설된다는 점이다. 사업구간 대부분이 단선으로 부설될 계획이다. 철도전문가는 수조 원의 사업비를 쓰고도 부작용이 커 실패한 사업이 될 공산이 크다고 우려한다.

    한 철도전문가는 "(지난해 탈선 사고가 난) 강릉선은 전체 구간의 2~3㎞만 단선 구간이지만, 남부내륙철도는 100㎞ 이상이 단선이라 문제가 심각하다"며 "복선화하지 않으면 나중에 피해는 승객이 보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남부내륙철도는 선로가 단선이어서 사고 위험을 없애려면 아예 반대 방향 열차 운행을 배제해야 할 판이다. 철도전문가는 "중간에 대피선을 만들 수도 있지만, 열차 운용성이 떨어진다"고 했다.

    단선 구간이 길다 보니 열차 운행은 1시간에 1대꼴로 이뤄질 전망이다. 고속철도는 운행시간 간격이 기본적으로 30분에 1대꼴이다. 고속철도가 적자를 면하려면 15~20분에 1대꼴로 열차를 운행해야 한다. 이 사업이 민자사업으로 추진됐다면 수지타산을 맞출 수 없는 민간사업자로선 선로사용료를 내려고 요금을 올릴 수밖에 없었을 거라고 철도전문가는 지적했다.

    경남도 내부에선 강릉선 사고를 계기로 남부내륙철도를 복선화하는 가능성도 열어두는 눈치다. 하지만 국토교통부 관계자는 "예타가 안 나와서 면제해 준 것을 고려하면 복선화는 상상도 할 수 없다"며 "수요를 볼 때 단선이면 충분하다"고 선을 그었다.
  • ▲ 원주~강릉 고속화철도.ⓒ연합뉴스
    ▲ 원주~강릉 고속화철도.ⓒ연합뉴스

    남부내륙철도는 재정사업으로 추진될 수밖에 없는 처지다. 예타 면제 신청 때만 해도 사업비 규모가 5조3000억원으로 알려졌다. 민자사업을 전제로 한 것이다. 정부가 발표한 사업비는 4조7000억원이다. 2016년 예타를 기준으로, 재정사업으로 추진하겠다는 의중이다.

    재정사업 추진의 불똥은 한국철도시설공단으로 튀게 됐다. 고속철은 사업비의 50%만 재정으로 지원한다. 나머지 절반인 2조3500억원은 철도공단이 조달해야 한다.

    철도공단으로선 탐탁지 않을 수밖에 없다. 1시간에 1대꼴로 운행하는 적자 노선에서 선로사용료로 건설비를 회수하기란 어렵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부가 재정사업 추진을 공식화한 만큼 울며 겨자 먹기로 적자를 떠안을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철도전문가는 "단선인 남부내륙철도에서 철도공단이 투자비를 회수하기는 불가능할 것"이라며 "부채만 늘어날 것"이라고 설명했다. 철도공단 부채 규모는 2017년 기준으로 20조 1200억원이다.

    중간에 대피선을 설치한다고 철도운영사가 열차 운행을 늘릴 거라 기대하기도 힘든 상황이다. 수요는 적은데 선로용량은 잡아먹기 때문에 한국철도공사(코레일)나 ㈜에스알(SR)이 돈 되는 경부선의 차량을 빼 남부내륙선에 추가 투입할 리 없어서다.

    결과적으로 지역에선 숙원사업을 가로막던 빗장이 풀려 당장은 환영할 일이겠지만, 최근 자구노력으로 흑자행진을 이어오던 철도공단으로선 수조 원의 부채 부담만 떠안게 됐다. 적자가 불 보듯 뻔한 데도 혈세로 고속철도를 건설하면서 공공기관에 빚더미만 안겨주는 셈이다.

    철도전문가는 "고속철도는 단선이 없다"면서 "(고속철도에 따르는 시설을 제대로 갖추지 못할 거라면) 차라리 원주~강릉처럼 100% 재정사업으로 고속화 철도(일반철도)를 놓는 게 나을 수 있다"고 조언했다.


    ⇒평택~오송 복복선화 관련 내용은 ②회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