휘발유 가격 살펴보니… 석유제품 불구 원료 두바이유 보다 싸게 거래셰일오일, 글로벌 공급과잉 주범… 초경질 성상 탓 휘발유 수율 높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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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로벌 휘발유 시장이 심상치 않다. 수급상황이 전반적으로 붕괴되면서 마진 하락이 이어지고 있다. 휘발유 가격은 국내 대표 수입 원유인 두바이유 보다 낮게 형성돼 국내 업계의 어려움을 더하고 있다. 원유를 정제해 휘발유 제품을 생산, 판매할수록 손해를 보고 있는 것이다.

    일시적 현상에 그칠 것으로 전망했던 정유업계는 적잖이 당혹해 하는 분위기다. 사이클에 따라 등락을 반복하던 석유제품 시장에서 유례를 찾기 힘든 이례적인 상황이기 때문이다.

    업계는 이런 현상의 주요 원인으로 미국산 셰일오일을 꼽는다. 미국의 '셰일 붐'이 공급과잉을 부추기며 국제 원유 시장에 이어 석유제품 시장까지 혼란을 초래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정유업계가 서둘러 전통석유화학분야인 에틸렌 시장에 발을 돌리는 이유다. 휘발유의 경우 기본 성상은 석유화학산업의 기본 원료인 나프타와 같다. 나프타에 아킬레이트나 MTBE를 섞어 옥탄가를 높이고, 정유사별 식별제를 첨가하면 면 휘발유가 된다. 결국 정유사 입장에서는 역마진이 발생하는 휘발유 생산량을 줄이고 크레킹 과정을 통해 에틸렌, 프로필렌, 부타디엔 등 기초유분을 생산하는 게 훨씬 유리한 상황이 됐다. 

    26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지난 22일 싱가포르 휘발유 가격은 배럴당 67.8달러로 두바이유(67.1 달러)와 비교해 큰 차이를 보이지 않았다. 

    심지어 지난 1월 중순부터 한달간 휘발유 가격과 두바이유 가격 차는 마이너스를 기록하는 등 마진 약세가 이어지기도 했다. 제품 생산 및 유통 비용 등을 감안하면 역마진이 발생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같은 기간 미국의 휘발유 정제마진은 배럴당 5.7로 하락하며 2009년 이후 최저치를 기록했으며 유럽의 휘발유 정제마진은 마이너스 3.8 달러를 나타냈다.

    통상 휘발유 가격이 두바이유에 비해 배럴당 최소 10 달러 중반에서 높게 형성된 점을 감안하면 이례적인 상황이다. 당초 지난 달 11월 말부터 12월 초까지 이 같은 가격역전이 한 차례 이뤄졌지만 업계는 일시적 현상으로 받아들였다.

    전통적인 휘발유 시장 비수기인데다 가격 하락세가 지난해 말부터 이어져 온 이유에서다. 하지만 휘발유 재고 비축 시점이 도래해서도 좀처럼 상황이 나아지지 않자 충격이라는 반응까지 나오고 있다. 

    지난해 기준 국내 석유제품 생산량은 12억5461만 배럴로 이 가운데 휘발유가 차지하는 비중은 15%에 달한다. 휘발유의 경우 국내 정유사들의 대표 수출 제품인 점을 감안하면 마진 하락은 수익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밖에 없다. 

    휘발유 가격 하락은 정유사들의 복합정제마진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다. 정유사들은 겨울철을 맞아 마진이 양호한 경유, 난방유 등의 생산을 확대하면서 연산품인 휘발유의 생산도 함께 증가한 반면, 소비는 둔화된 영향이 컸다.

    이에 정유사들의 정제마진은 1달러 대로 추락하며 손익분기점(4∼5달러)을 크게 밑돌고 있다. 원유를 정제해 휘발유, 등유, 경유 등의 제품을 생산해 수익을 내는 정유사 입장에서는 현재 상황만 놓고 보면 적자만 쌓이게 되는 셈이다. 

    지난해 4분기 SK이노베이션, GS칼텍스, S-OIL, 현대오일뱅크 등 정유 4사가 처음으로 동반 적자를 기록한 것도 현재 상황과 크게 다르지 않다.

    업계에서는 미국의 셰일오일 생산 증가와 WTI(서부텍사스산원유) 가격이 두바이유에 비해 지난 수년간 낮은 가격을 형성해 오면서 이 같은 현상을 부추긴 것으로 보고 있다.

    특히 셰일오일은 글로벌 휘발유 공급과잉의 주범으로 꼽힌다. 셰일 오일은 불순물이 적은 초경질 원유로 정제과정에서 휘발유 생상 비중이 높다. 셰일 오일을 많이 생산할수록 휘발유 생산량도 그만큼 많아진다는 얘기다.

    미국은 전세계 휘발유의 10% 가량을 소비하는 국가지만 늘어나는 휘발유 생산량을 감당하지 못하는 형국이다. 생산 증가는 미국 정유사들이 지난 2년간 가동률을 높게 형성해 온 데 따른 것으로 분석된다.

    미국 정유사들은 지난 2017년 텍사스주를 강타한 허리케인 피해 이후 가동률을 54%에서 83%로 상향조정했다.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가동률을 높이며 지난해 말에는 97%에 달했다.

    미국 에너지정보청(EIA)에 따르면 미국의 원유 생산량은 하루 1240만 배럴에 달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에 따라 지난달 기준 미국의 휘발유 재고는 1990년 이후 최고치인 2억6000만 배럴을 기록했다. 미국의 공급과잉 현상은 아시아 지역까지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업계에서는 단기적으로 2분기까지 휘발유 가격 약세가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를 제기한다. 다만 오는 6월부터 7월까지 미국의 드라이빙 시즌이 시작되는 만큼 재고 해소에는 긍정적인 요소로 작용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

    업계 관계자는 "원유 정제비용, 유통비 등을 감안하면 휘발유 생산으로 손해를 볼 수 밖에 없다"며 "이는 이례적인 상황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다른 업계 관계자는 "현재 휘발유 시장은 수급이 꼬인 상태"라며 "미국 정유사들이 가동률을 하향 조정하고 있고 성수기 돌입 이후 등을 예의주시하며 재고 상황도 지켜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