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약계층 피해지원에 집중해야", "세금내는 사람 혜택 박탈 불공평"선별지원 집중하는 정부, 지급대상 선별에 막대한 행정비용 고려해야선진국은 기본소득 효과 실험 중… 재원·지속가능성 고려한 논의 필요
  • ▲ 18일 오후 인천국제공항의 한 음식점에 임시 휴점 안내문이 붙어있다.ⓒ권창회 기자
    ▲ 18일 오후 인천국제공항의 한 음식점에 임시 휴점 안내문이 붙어있다.ⓒ권창회 기자
    중국발 코로나19 사태이후 재난기본소득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이어지고 있다.

    코로나사태로 피해를 입은 대구·경북지역이나 소상공인 등을 위한 피해보상 차원에서 시작된 논의는 더 나아가 전 국민에 대한 보편적 기본소득제 도입을 고려하는 개념으로 확대되는 모습이다.

    피해지원이냐 기본소득이냐

    재난기본소득에 대한 정치권의 반응은 대체로 취지에는 동의하면서도 방식에 대한 의견은 갈린다.

    가장 먼저 도입을 결정한 전북 전주시는 지난 13일 시 추경을 통해 취약계층에 1인당 52만7000원을 지급한다고 밝혔다. 실직자나 비정규직 5만명을 대상으로 하는 것으로 총 250억원 규모의 예산이 들어간다. 2월 기준 전주시 인구는 65만5447명으로 전체 인구의 약 7.5%만 받을 수 있는 셈이다.

    서울시의 경우 중위소득 100% 이하 191만 가구중 정부의 추경예산지원을 못받는 가구 117만7000여 가구를 대상으로 30~50만원을 지급키로 했다. 이 역시 저소득층이나 영세자영업자, 아르바이트생 등 취약계층을 대상으로 한다.

    이같은 취약계층에 대한 지원을 두고 반대 목소리도 높다. 정작 세금을 내는 사람은 지원대상에서 제외되고 저소득층에만 지원이 집중된다는 주장이다.

    이재명 경기도지사는 "모든 국민을 대상으로 한 과감한 재난기본소득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이 지사는 "일자리 부족과 대량실업이 일상화되는 사회에서는 과거의 시혜적 복지정책, 공급자 중심의 전통적 재정정책은 더 이상 효력을 발휘하기 어렵다"며 "세금을 많이 내는 사람을 제외하고 세금을 적게 내거나 안내는 사람만 혜택을 주면 재원부담자와 수혜자의 불일치로 조세저항과 정책저항을 부른다"고 강조했다.

    그는 "부자가 죄인은 아니다"며 "부자라는 이유로 더 많은 세금을 냈는데 그 세금으로 만든 정책에서 또 혜택을 박탈하는 것은 이중차별"이라고 덧붙였다.

    이 같은 의견충돌은 재난기본소득이란 불명확한 개념정리에서 비롯된다. 보편적 지급이란 가치를 가진 기본소득과 재난피해에 따른 지원이 섞이면서 혼란을 가져온다는 지적이다.

    국회입법조사처는 "재난기본소득은 특정한 조건 없이 국민 모두에 게 일정한 금액을 지급하는 기본소득 개념의 하나로 볼 수 있는데, 현재 법적으로 도입돼 있지는 않다"며 "코로나19 사태로 절박한 상황에 처한 국민들에게는 자동차 개별소비세 인하 같은 조치보다는 보다 긴급한 경제적 구호 조치가 필요하다는 이유가 재난기본소득의 아이디어라 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 ▲ 18일 오후 인천국제공항의 한 음식점에 임시 휴점 안내문이 붙어있다.ⓒ권창회 기자
    "전국민 기본소득 재원없다" 선 긋는 정부

    정부는 기본소득제에 대해서는 선을 긋고 있다. 이재명 지사나 김경수 경남지사의 주장대로 1인당 100만원씩 지급할 경우 소요되는 51조원을 충당한 재원이 없다는 입장이다.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전 국민을 대상으로 주는게 효율성이 있는지 짚어봐야 하고, 재원문제도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며 "국민의 공감대도 중요하며 상당부분 많은 검토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 지사는 "기존 세입을 조정하면 국민부담 증가없이 기본소득 지급이 가능하다"며 "예산은 우선순위 문제일 뿐 불요불급한 예산을 줄이면 50조원은 우리 예산규모에 비춰 의지의 문제일 뿐"이라고 반박했다.

    실제로 기본소득에 대한 논의는 유럽을 중심으로 한 선진국에서 지난 몇년간 꾸준히 제기된 이슈다.

    스위스는 2016년 18세 이상 국민에게 매달 2500스위스프랑(300만원), 어린이·청소년에서 650스위스프랑(78만원)의 기본소득을 나눠주자는 정책을 국민투표에 붙였다. 결과는 76.7%가 반대해 부결됐지만, 다른 국가에서도 비슷한 논의는 계속되고 있다.

    핀란드는 2017년 25~58세 2000명을 대상으로 매달 560유로(70만원) 상당을 지급하며 기본소득 실험을 진행하고 있다.

    캐나다 온타리오주는 주민 4천명에게 3년간 매달 1320캐드(122만원)을 지급하는 실험을 시행 중이다.

    이들 국가는 기본소득 실험을 통해 저소득층의 사회보장에 대한 의존을 줄임으로써 복지수혜자들이 사회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게 유도하고 있다.

    국회입법조사처는 "재난기본소득은 이번 코로나19사태에만 해당하는 문제가 아닌 향후 유사한 재난이나 경제적 위기상황에서 또 다시 요구될 수 있는 정책"이라며 "지속가능성을 담보할 수 있어야 정치권은 물론 국민들의 지지와 호응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 ▲ 17일 미국 네바다 라스베이거스에서 실업수당을 신청하려는 주민들이 관공서 앞에 줄지어 있다.ⓒAP=연합뉴스
    ▲ 17일 미국 네바다 라스베이거스에서 실업수당을 신청하려는 주민들이 관공서 앞에 줄지어 있다.ⓒAP=연합뉴스
    또다른 복지제도 추가에 그칠 수도… 신중한 접근 필요

    정부가 추진 중인 취약·피해계층에 집중된 피해보상 성격의 재난기본소득은 실효성 부분에 많은 맹점을 지니고 있다.

    저소득층에 현금을 지급하고 피해 자영업자에게 돈을 빌려준다 하더라도 근본 취지인 경기부양에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얘기다.

    특히 지급대상을 구별해내는데 막대한 행정비용이 들어간다는 점도 문제다.

    2018년 시행한 아동수당의 경우 만 6세 이하 아동이 있는 소득 상위 10%를 걸러내는데 오히려 행정비용이 더 많이 드는 모순이 드러나기도 했다.

    배재현 국회입법조사처 입법조사관은 "재난기본소득 대상선정에 있어서도 소득·재산 수준, 직업군 등 지급대상을 구분하고, 또 다른 복지혜택과의 중복성 여부를 걸러내는 등에 따른 행정비용문제도 충분히 생각해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배 조사관은 "특정집단에 대해 지급하는 재난기본소득은 원칙적으로 전 국민을 대상으로 하는 기본소득이라기 보다는 재원마련 등 현실성을 고려한 낮은 수준의 부분 기본소득 도입 방안으로 볼 수 있다"며 "이런 낮은 수준의 기본소득제도는 우리나라에 이미 도입돼 있다"고 했다.

    이어 "기본소득제도의 면밀한 논의가 아니라 또 하나의 복지제도가 추가되는 결과에 그칠 수 있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재명 지사도 "비상조치를 위해 한시가 급한 이때 일부를 제외하기 위한 조사비용과 선별시간을 낭비할 수 없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