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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중국발 코로나19(우한 폐렴) 사태에 따른 경제 충격을 최소화하고자 국민에게 긴급재난지원금을 주기로 한 가운데 총선을 앞두고 포퓰리즘(대중영합주의) 논란과 재정건전성 악화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30일 청와대에서 제3차 비상경제회의를 주재하고 경제 위기 극복을 위해 긴급재난지원금을 주기로 결론 냈다. 중산층 포함 소득하위 70% 가구에 대해 4인 가구 기준으로 가구당 100만원의 긴급재난지원금을 주기로 했다. 재정 당국의 안과 여당의 안을 절충한 셈이다. 지난 29일 열린 당·정·청 회의에서 기획재정부는 전체 가구의 절반에 해당하는 '중위소득 100% 이하' 1000만 가구에 4인 가구 기준 최대 100만원을, 더불어민주당은 '중위소득 150% 이하' 기준을 적용해 전 국민의 70~80%에 1인당 50만원씩을 주자고 했다.
이번 결정으로 필요한 재원은 보수적으로 잡으면 8조원, 여유 있게 잡으면 10조원쯤이 될 것으로 분석된다.
일각에서는 위기상황에서 재정의 적극적인 역할에 동의하면서도 재정건전성 악화에 대한 대비책 없이 하루살이식의 재정 운용은 문제가 있다는 의견이 나온다.
기획재정부는 코로나19 사태 이전에 내놓은 2017~2021년 국가재정운용계획에서 국가채무비율을 2021년에 국내총생산(GDP) 대비 40.4%로 관리하겠다고 밝혔다. 복지 재원 마련을 위한 확장적 재정운용에도 재정수지 적자비율을 마이너스(-) 2% 초반으로 관리해나가면 2020년 이후에도 채무비율을 GDP 대비 40%를 갓 넘는 수준에서 관리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국회입법조사처는 최근 보고서에서 "올해 적자국채발행 규모가 60조2000억원으로 지난해 34조3000억원보다 25조9000억원 늘었다"면서 "정부가 적극적인 재정정책을 위해 대부분의 재원을 적자국채 발행에 의존하면서 국가채무비율이 2023년 45%를 넘을 것으로 전망된다"고 우려했다. 국회입법조사처는 경기침체 영향으로 재정수지가 악화하면 나랏빚이 더 큰 폭으로 증가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정부는 이미 코로나19 추가경정예산(추경) 11조7000억원 중 10조3000억원을 적자국채를 발행해 충당키로 했다. 이 경우 나랏빚은 815조5000억원으로 불어나고 국가채무비율은 39.8%에서 41.2%로 오른다. 기재부가 밝힌 올해 국가채무비율 관리 목표는 39.8%다.
정부는 총선 이후 2차 추경에 긴급재난지원금을 반영해 다음 달 안으로 국회에서 처리되도록 한다는 방침이어서 국가채무비율은 42%에 육박할 것으로 보인다. 문 대통령은 "재정 여력 비축과 신속한 여야 합의를 위해 재원 대부분을 뼈를 깎는 정부예산 구조조정으로 마련할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각종 선심성 복지예산과 상반기 예산 조기집행 등으로 말미암아 정부가 얼마나 예산을 깎아낼 수 있을지 의문이 제기된다.
설상가상 경제성장률은 암울한 전망이다. 국제신용평가회사 무디스는 지난 26일 발간한 세계 경제전망보고서에서 우리나라의 올해 GDP 대비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0.1%까지 낮춰 잡았다. 지난달 16일 전망치를 2.1%에서 1.9%로 0.2%포인트(P) 내린 것을 시작으로 한 달 남짓 만에 경제성장률을 2.0%P 하향 조정했다. 무디스는 "올해 상반기 세계 주요 20개국(G20) 경제가 전례 없는 충격을 경험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무역의존도가 높은 한국으로선 국내 코로나19 사태가 조기에 진정되더라도 경기 회복을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인 셈이다.
지방자치단체도 곳간이 넉넉지 않다. 우리나라 지자체의 평균 재정자립도는 45.2%다. 지자체마다 편차도 크다. 지난해 말 현재 재정자립도가 10%를 밑도는 곳이 5곳에 달한다. 경기도가 모든 도민에게 10만원의 재난기본소득을 뿌리기로 한 뒤 도내 시·군에서도 앞다퉈 추가 재난기본소득을 주겠다고 나섰지만, 재정자립도가 낮은 지자체를 중심으로 형평성 논란이 불거진 배경이다. -
이번 결정이 선거를 목전에 두고 이뤄진 것을 두고 전형적인 포퓰리즘이라는 지적도 제기된다.
지난 29일 당·정·청 회의에서 민주당이 지원대상 확대에 목청을 높인 것도 선거와 무관치 않다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이날 회의에서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재정건전성 등을 고려했을 때 지원대상 확대는 어렵다는 의견을 냈지만, 여당이 지급 확대 입장을 고수한 것으로 전해졌다.
야당은 정부와 여권의 대권 잠룡으로 분류되는 지자체장들이 재난기본소득 지급에 앞다퉈 나서는 것에 대해 비판적인 견해를 쏟아내고 있다. 유승민 미래통합당 의원은 지난 27일 재난기본소득을 두고 "표만 의식하는 악성 포퓰리즘"이라고 비판했다. 김종인 통합당 총괄선거대책위원장도 각 지자체의 재난기본소득 지급과 관련해 "대권 후보 경쟁을 위해 약속을 쏟아내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야권은 기업의 활력을 키워주는 규제 완화와 세금 감면을 대안으로 내세운다. 법인세와 각종 세 부담을 줄여줘 기업의 투자와 소비를 유도하자고 주장한다. 황교안 통합당 대표가 40조원 규모의 국채를 발행해 기업에 직접 지원하자고 제안한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한국납세자연맹이 재난기본소득보다 국민연금과 건강보험료를 면제하는 특별조처가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것도 연장선에 있다. 납세자연맹은 지난 25일 "세금 면제를 통해 가계의 가처분소득(실질소득)을 높여주는 것이 재난기본소득보다 국가부채 증가로 이어지지 않는다"면서 "1년간 국민연금과 건강보험료 95조원을 면제하는 게 더 효과적인 정책수단"이라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