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미국 확산세…달러 수요증가에 국제유가 하락까지韓 단기외채비율 34%…당장 필요 유동외채 3천억달러과거 엔화 빠지며 IMF 외환위기…2중 안전장치 필요한일관계 개선기회…'실용주의' 김대중·덩샤오핑 배워야
  • ▲ 엔화.ⓒ연합뉴스
    ▲ 엔화.ⓒ연합뉴스
    중국발 코로나19(우한 폐렴)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으로 제2의 외환위기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크다. 최근 한미통화스와프로 급한 불은 껐지만 아직 부족하다는 의견이 적잖다. 2중 안전장치를 확보하기 위해 한일통화스와프의 체결 필요성이 제기된다.

    ◇한미통화스와프 효과 단기에 그칠 것

    한국은행은 지난 19일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Fed)와 600억 달러 규모의 통화스와프를 맺었다고 발표했다. 한은은 비상시에 원화를 맡기고 연준으로부터 최대 600억달러까지 자금을 공급받을 수 있게 됐다. 계약기간은 최소 오는 9월19일까지 6개월이다. 한미 양국은 세계 금융위기가 고조됐던 2008년 300억달러 규모의 통화스와프를 맺었고 2010년 종결됐다.

    한은은 이번 한미통화스와프가 달러화 가뭄과 금융시장 불안을 상당부분 해소할 것으로 기대했다. 코로나19발 경제여파로 국제금융시장에 달러 수요가 늘면서 이날 원/달러 환율은 40원 뛴 달러당 1285.7원을 기록했다. 11년 만에 가장 높은 수준이다. 하지만 한미 통화스와프 소식이 전해지면서 20일 원/달러 환율은 전일보다 39.2원 내린 1246.5원에 마감했다. 전날 폭등분을 거의 되돌렸다.

    그러나 경제전문가들은 한미 통화스와프 효과가 단기에 그칠 수 있다고 경고한다. 현 코로나19 사태가 1997년 외환위기나 2008년 세계 금융위기보다 심각하다는 진단이 나오는 가운데 유럽과 미국 등에서 코로나19 확산세가 계속되면 원화가치가 당분간 변동성 국면을 이어갈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기 때문이다.

    키움증권은 미국과 유럽을 중심으로 코로나19 확진자가 계속 늘고 있어 이번 한미통화스와프 효과는 단기간에 그칠 수 있다고 진단했다. 김유미 연구원은 "2008년 통화스와프 체결 당시에도 효과는 며칠에 그쳤고 달러 강세와 금융시장 불안이 이어지자 11월 중순께 원/달러 환율은 다시 전 고점을 돌파하며 상승했다"고 전했다. 당시 통화스와프를 맺고도 환율은 계속 상승해 한달뒤 1534원까지 올랐다.
  • ▲ 김대종 교수.ⓒ세종대
    ▲ 김대종 교수.ⓒ세종대

    수년전부터 논문을 통해 한국에 외환위기가 다시 올 수 있다고 경고해온 세종대학교 김대종 경영학부 교수는 "우리나라 외국인 증권투자액은 시가총액의 34%인 540조원으로 외국인이 올 1월부터 지금까지 판 주식은 12조원이다. 외국인 주식투자액의 2.2%에 불과하지만 환율이 큰폭으로 올랐다"면서 "(코로나19로) 미국 주식이 하락하고 실업률이 증가하면 펀드환매(투자지분 회수)로 한국주식 팔기가 이어져 환율이 다시 오를 수 있다"고 도미노 효과를 우려했다.

    그는 "2008년 당시 미국 다우존스지수는 60%까지 하락했다. 지난 21일 현재 30%쯤 폭락했기에 추가 하락 가능성이 있다"며 "코로나19로 사람의 이동이 제한되면서 수요와 공급 모두 위축하는 가운데 미국 내 환자가 벌써 2만4000명을 넘어섰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설상가상 석유수출국기구(OPEC)와 러시아의 석유 감산 합의 실패로 국제유가가 내리면서 위기감을 부채질하고 있다. 

    김 교수는 "유가 하락이 지속하면 미국 셰일가스에도 악영향을 끼쳐 석유기업 부실화와 파산으로 이어질 수 있고 달러 수요는 더 급증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문제는 우리나라의 외환보유고가 외국인 주식투자액의 30% 유출을 가정해 국제결제은행(BIS)이 권고하는 수준(8300억 달러)의 절반도 안되는 4019억 달러에 그친다는 점이다. 

    김 교수는 "지금의 외환보유고는 환율을 방어하는 데 부족하다. 외환보유고의 6.5%만 당장 인출이 가능하다. 나머진 대부분 유가증권이어서 인출도 어렵다"고 덧붙였다.

  • ▲ 증시-환율.ⓒ연합뉴스
    ▲ 증시-환율.ⓒ연합뉴스
    ◇기축통화 추가 확보로 외환시장 안전판 강화해야

    김 교수는 대비책으로 한일통화스와프를 제안했다. 700억달러 규모의 한일 통화스와프는 지난 2012년 종료된 상태다.

    김 교수는 "1997년 단기외채 비율이 상승하면서 일본계 자금유출이 시작됐고 이후 도미노처럼 외국인이 일시에 자금을 회수하면서 외환위기가 왔다"고 상기했다. 3월 현재 한국의 단기외채비율은 34%쯤(1500억 달러)으로 2015년 이후 가장 높다. 단기외채는 국제금융시장의 변동성이 커지면 급격히 빠져나갈 수 있어 위험하다. 장기채권중 1년안에 만기가 돌아오는 경우를 정확히 알 수 없으므로 통상 채권회수에 대비해 단기외채 규모의 200%를 준비한다고 알려졌다. 당장 필요한 유동외채만 3000억 달러에 달한다는 얘기다.

    일본 엔화는 국제간 결제의 기본이 되는 기축통화(基軸通貨)다. 국제통화기금(IMF)이 보유한 외환 비중은 달러 62%, 유로화 20%, 엔화 5.3%, 파운드화 4.5%, 위안화 2%다.

    김 교수는 "일본의 달러보유액은 1조3000억 달러로 세계 2위"라며 "2중 안전장치로 한일통화스와프를 다시 맺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교수는 560억달러 규모인 중국과의 통화스와프를 확대하는 것에는 부정적인 시각이다. 그는 "(미국은) 위안화가 기축통화가 되는 것을 싫어한다"고 설명했다. 일각에선 미국이 신속히 한미통화스와프를 재가동한 배경에 미국의 위기감이 반영됐다는 의견을 내놓는다. 코로나19가 팬더믹으로 번지면서 앞으로 미국과 세계경제에 미칠 영향을 고려했다는 것이다. 겉으로는 미국이 통 크게 돈줄을 푸는 형국에 굳이 중국과 통화스와프를 확대해 미국의 심기를 건드릴 필요가 없다는 분석이다.

    김 교수는 지금이 경색된 한일관계를 개선할 기회라고 했다. 일본도 코로나19 확진자 증가가 예상되는 데다 도쿄올림픽을 앞두고 있어 일본을 달래기 좋은 분위기가 형성됐기 때문이다. 마침 한·중·일 외교수장은 지난 20일 코로나19 대응 화상회의를 열고 3국 보건장관 회의 등을 통해 긴밀히 협력하기로 뜻을 모았다. 아울러 강경화 외교부 장관과 왕이(王毅) 중국 외교담당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은 모테기 도시미쓰(茂木敏充) 일본 외무상에게 도쿄올림픽의 완전한 형태의 개최에 지지 입장을 표명한 것으로 전해졌다.

    김 교수는 "한일관계가 과거사 문제 등으로 최악의 상황이지만 이제는 양국 모두가 (코로나19 사태로) 어려운 형국이기에 긴밀한 협력이 필요하다"며 "이 문제는 청와대와 정부만이 해결할 수 있다. 국가와 국민을 위해 한일 통화스와프를 적극 추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우리 정부는 2016년 미국의 금리인상과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등으로 일본측에 통화스와프를 요청했으나 일본의 거절로 성사되지 않았다. 한국의 과거사 문제 제기가 빌미를 제공했다.

    김 교수는 "국제금융 시장은 냉정하다"며 "당장 외화보유액을 늘리기에는 시간이 걸리므로 정부 차원에서 일본과 관계 개선에 나서 통화스와프를 재개할 필요가 있다"고 역설했다. 그러면서 과거 김대중 대통령과 덩샤오핑(鄧小平) 중국 주석의 사례를 곱씹어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실용주의 노선으로 중국 개혁·개방을 이끈) 덩샤오핑은 중국 재건을 위해 일본의 기술과 자본이 필요했고 1978년 10월 일본을 찾았다"며 "그는 센카쿠 영유권 등 과거사 질문을 받고 '이 문제를 후대에 넘기면 좋겠다. 그들은 지금의 우리보다 훨씬 총명해 능히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고 답했다"고 소개했다. 이어 "김 전 대통령도 우익세력보다 양식 있는 일본 국민이 더 많다면서 한일관계를 좋게 이끌었다"고 덧붙였다.

    김 교수는 "코로나19를 계기로 한일 양국이 미래지향적 동반자 관계로 전환해 위기를 극복해야 한다. 우리의 국력이 일본을 능가할 때까진 좋은 관계를 유지해야 한다"면서 "(중장기적으로는) 외국의 통화스와프에만 의존해선 안되므로 자신을 스스로 지킬 수 있게 앞으로 외환보유고를 충분히 비축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 ▲ 한국 통화스와프 체결 현황.ⓒ연합뉴스
    ▲ 한국 통화스와프 체결 현황.ⓒ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