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권 주택공급 8·4대책도 뭇매여당의원·단체장도 속속 반대 견해김 장관, "주택공급 충분" 논란…경질론 다시 도마위
  • ▲ 주택공급대책 브리핑하는 김현미 국토부 장관.ⓒ연합뉴스
    ▲ 주택공급대책 브리핑하는 김현미 국토부 장관.ⓒ연합뉴스
    부동산 정책 헛발질 논란에 8·4주택공급대책을 발표하며 혹을 떼려던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이 되레 혹을 붙이게 됐다. 23번째 부동산 대책을 두고 여권 지방자치단체장도 반발하면서 김 장관의 거취 문제가 다시 도마 위에 오를 전망이다.

    정부는 4일 정부서울청사에서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김현미 장관 등이 참석한 가운데 서울권역 등 수도권 주택공급 확대방안을 발표했다.

    서울 노원구 태릉골프장 등 요지에 신규 부지를 발굴하고 한국토지주택공사(LH)와 서울주택도시공사(SH) 등 공공기관이 함께 참여하는 공공재건축을 도입해 용적률을 최대 500%까지 완화하는 방식으로 주택 공급을 늘리는 게 골자다.

    하지만 정부 발표 반나절도 되지 않아 주요 협의 상대였던 서울시가 공공재건축 도입의 실효성에 의문을 제기하면서 정책 신뢰도에 금이 갔다. 서울시는 용적률 상향으로 자연스럽게 풀릴 것으로 봤던 '아파트 35층 층수 제한' 규제도 큰 틀에서 유지하겠다고 밝혀 논란에 기름을 부었다.

    논란이 커지자 서울시는 '민간재건축 부문도 보완이 필요하다는 추가적인 의견을 제시한 것'이라고 진화에 나섰다. 정부도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김 장관은 이날 jtbc 뉴스룸에 출연해 "50층 층수 규제 완화는 서울시와 이미 교감이 된 부분"이라며 "재건축 단지 지역이 준주거지역으로 종상향(용도지역변경) 되면 50층으로 올릴 수 있다"고 설명했다. 국토부도 설명자료를 내고 "서울시도 공공참여형 고밀재건축에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 정부와 서울시 간 이견은 없다"고 해명했다. 홍 부총리도 5일 제1차 부동산시장 점검 관계장관회의에서 "정부와 서울시 간 이견이나 혼선이 있는 것은 아니다"고 강조했다.
  • ▲ 라디오 출연한 김현미 국토부 장관.ⓒ연합뉴스
    ▲ 라디오 출연한 김현미 국토부 장관.ⓒ연합뉴스
    그러나 시장의 반응은 싸늘하다. 서울시가 부정적인 태도를 보이기 전부터 용적률을 올려도 정부가 재건축 기대수익의 90% 이상을 환수하겠다고 밝히면서 재건축조합이 선뜻 응할지 미지수라는 반응이 지배적이었다. 정책 기대효과에 의문이 제기되는 와중에 설상가상 서울시가 정부 정책에 찬물을 끼얹은 셈이다. 일각에선 김 장관이 고(故) 박원순 전 서울시장에게 완패했다는 얘기가 돈다. '35층 층수 제한'이나 그린벨트 해제 반대는 박 전 시장이 2013년부터 고수해 온 부동산 정책이다.

    특히 더불어민주당 소속 국회의원과 단체장마저 정부의 공급대책에 반발하면서 여론 악화로 3주 만에 뚝딱 만들어낸 8·4대책도 헛발질하는 것 아니냐는 의견이 적잖다. 여권의 '내로남불'식 태도에 대한 비판이 거세다.

    4일 정부 대책이 발표되자 민주당 정청래(서울 마포을) 의원은 자신의 페이스북에 "주민, 지역구 의원과 한 마디 사전 협의 없이 일방적으로 발표하는 게 어디 있나"라며 "상암동은 임대비율이 이미 47%인데 또 임대주택을 지어야 하냐"고 불만을 제기했다. 민주당 소속 김종천 과천시장도 정부과천청사 주변 유휴부지 개발과 관련해 반대 성명을 내고 "과천시와 시민에게 감당할 수 없는 고통을 주는 것"이라고 반대했다. 김 시장은 해당 터에 공공주택 대신 인공지능(AI) 바이오클러스터를 만들어야 한다는 견해다.

    문제는 김 장관과 국토부의 해명 이후 거짓말 논란마저 일고 있다는 점이다. 김 장관은 방송에서 앵커가 과천시와 마포구가 '제대로 협의되지 않았다'며 반발한다고 하자 "이미 주택공급TF 활동 등을 통해 협의했다"면서 "과천시의 경우 (해당 유휴부지를) 공원이나 자족용지로 만들고 싶어하는 것으로 안다. 주택단지로 개발하면서 과천시 요구를 모두 충족하지는 못하겠지만, 열심히 담아내도록 과천시와 협의하겠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김 장관의 발언은 과천시가 협의를 해놓고 이제 와 뒤통수를 치고 있다는 뜻으로 해석돼 논란이 일고 있다. 또한 해당 지자체가 반대해도 정부 뜻대로 밀어붙이겠다는 의미로 풀이돼 '불통' 행정이라는 지적이 제기된다.

    김 장관의 거짓말 논란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김 장관은 7·10대책 발표 후인 지난 7월14일 tbs 라디오 김어준의 뉴스공장에 출연해 "현재 주택 공급이 부족하지 않다. 지금 서울에선 연간 4만호 이상 아파트가 공급되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김 장관은 한 달도 안 돼 서울권역 주택 추가 공급대책을 발표하는 브리핑 자리에 섰다. 이를 두고 미래통합당 소속 장진영 변호사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한 달 전 주택공급은 충분하다고 했던 인물이 한 달 만에 주택공급을 늘리겠다고 하면 그 말은 믿을 수 있는 말인가"라며 "자기 말과 정책이 다른 것에 대해 사과라도 한마디 하고 왜 말과 다른 정책이 나왔는지 설명할 의무가 있지 않나"라고 지적했다. 김 장관은 질문 공세가 쏟아질 게 불 보듯 뻔한 국토부 기자단과의 정책설명 간담회 대신 몇몇 방송사를 선별해 정부 입장을 설명하는 언론플레이를 선보이는 중이다. 김 장관은 5일 오후에는 연합뉴스TV에 출연해 부동산 대책을 설명할 예정으로 알려졌다. 국토부는 이날 오전 박선호 제1차관이 tbs 김어준의 뉴스공장에 출연해 8·4대책에 관해 설명하는 등 여론전에 나서고 있다.
  • ▲ 국회 대정부질문 답변 후 웃으며 자리로 돌아가는 김현미 국토부 장관.ⓒ연합뉴스
    ▲ 국회 대정부질문 답변 후 웃으며 자리로 돌아가는 김현미 국토부 장관.ⓒ연합뉴스
    이번 8·4대책마저 졸속 정책이라는 비판에 휩싸이면서 김 장관 거취 문제도 다시 도마 위에 오를 전망이다. 정치권 안팎에선 개각설이 나돈다. 다음 달 1일 막이 오르는 제21대 국회 첫 정기국회에 앞서 개각이 단행될 거라는 관측이 많다. 국회 인사청문회와 국정감사, 내년부터 본격화될 대선정국을 고려할 때 정기국회 이전이 내각을 새로 꾸릴 적기라는 의견이다.

    문재인 정부 초대 내각부터 자리를 지킨 김 장관은 다음 달 22일이면 역대 최장수 국토부 장관이 된다. 하지만 잇단 부동산 정책 실패로 김 장관에 대해 경질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야당은 물론 시민사회단체도 나서 김 장관의 경질을 요구하는 실정이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은 지난달 24일 성명을 내고 "국토부는 수많은 정책 실패와 거짓 정보로 국민 신뢰를 잃었다"며 김 장관의 경질을 주장했다. 입각 초기엔 3선 정치인 출신 장관으로서 소신 있는 모습으로 주목을 받았지만, 최근엔 22번의 부동산 정책 실패로 질타의 대명사가 되고 있다. 이번 8·4대책을 발표하는 과정에서도 부동산 정책의 주도권을 기재부와 홍 부총리에 넘겨준 것 아니냐는 볼멘소리가 국토부 안팎에서 감지된다. 김 장관은 지난달 23일 대정부질문에서 스스로 물러날 생각이 없냐는 질문에 "절대 자리에 연연하거나 욕심이 있지 않다"고 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