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까지 모빌리티 60조 투자보스턴 다이나믹스 인수 첫발… 200조 로봇시장 도전워킹카 개발·UAM 리더 성큼… 상장·지배력 강화 '큰그림'
  • ▲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 ⓒ현대차그룹
    ▲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 ⓒ현대차그룹
    미국 로봇업체 ‘보스턴 다이내믹스’를 인수한 현대자동차그룹의 행보가 주목받고 있다.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의 취임 후 첫 대규모 인수합병(M&A) 인데다 2400억원에 달하는 사재를 투자하는 흔치 않은 일이기 때문이다.

    이번 투자는 로봇 개발 역량을 강화해 제조·물류뿐 아니라 걸어 다니는 자동차, 도심항공교통(UAM)까지 아우를 혁신을 위한 포석이란 해석이 나온다. 나아가 미래 세대의 먹거리를 확보해야 한다는 정 회장의 판단이 반영된 것으로 전해졌다.

    현대차그룹은 지난 11일 약 9560억원에 일본 소프트뱅크그룹으로부터 보스턴 다이내믹스 지배 지분(80%)을 인수하기로 최종 합의했다.

    인수에는 현대차, 현대모비스, 현대글로비스, 정 회장이 공동으로 참여한다. 최종 지분율은 현대차 30%, 현대모비스 20%, 현대글로비스 10%, 정 회장 20%로 구성될 예정이다.

    나머지 지분(20%)은 소프트뱅크그룹이 가진다. 다만 풋옵션(지분을 되팔 권리) 권리를 부여받았다.

    보스턴 다이내믹스를 품은 현대차그룹은 계열사 간 시너지를 극대화할 것으로 예상된다. 정 회장은 지난해 10월 임직원과 개최한 타운홀 미팅에서 “현대차그룹의 미래 사업 구조는 자동차 50%, UAM 30%, 로보틱스 20%가 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현대차는 보스턴 다이내믹스가 지닌 로봇 기술을 활용해 걸어 다니는 자동차를 현실화시키는 데 속도를 낼 것으로 보인다.

    현대차는 지난해 초 세계 최대 전자쇼 CES 2019에서 콘셉트카 ‘엘리베이트’를 공개한 바 있다. 엘리베이트는 4개의 바퀴 달린 로봇 다리를 움직여 기존 이동수단으로 접근이 어려운 지역 및 상황에서 유용하게 활용할 수 있다.

    지난 9월엔 미래 모빌리티(이동수단) 개발을 전담하는 조직인 ‘뉴 호라이즌스 스튜디오’를 출범하기도 했다. 이곳은 엘리베이트에 모든 역량을 다 쏟아붓고 있다.

    회사 측은 엘리베이트 상용화로 구조, 교통약자 이동 편의 증진 등에 크게 기여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이 밖에 수년 내 물류 및 서비스 로봇 등을 양산한다는 구상이다.

    현대모비스는 자율주행차의 눈 역할을 하는 장비 카메라와 라이다 등을 개선할 계획이다. 보스턴 다이내믹스 로봇 역시 라이다, 카메라로 주변 상황을 인식하고 작동하기 때문이다. 그만큼 자율주행 기술을 고도화할 수 있다.

    여기에 사람과 거의 비슷한 움직임을 구사하는 정교함은 제어와 같은 핵심 역량을 단번에 끌어올리는 성장 발판이라는 게 업계의 관측이다.

    현대글로비스는 물류 사업 확장과 로봇 중심의 역량 강화가 가능해진다. 보스턴 다이내믹스는 물건을 집어서 날라 옮기는 ‘핸들’, 물품을 정확하게 찾아내는 ‘픽’ 등의 물류 로봇을 보유하고 있다.

    현대차그룹은 보스턴 다이내믹스 제품을 기반으로 산업현장에서 작업자와 일하는 산업용 로봇을 먼저 선보일 예정이다.

    김귀연 흥국증권 연구원은 “현대차가 지닌 양산 설비와 현대글로비스 물류를 고려하면 안정적 수요 확보, 물량 확대를 기대할 수 있다”며 “상용화에 따른 규모의 경제를 갖춰 수익성 확보가 가능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 ▲ 현대자동차가 지난해 초 세계 최대 전자쇼 CES 2019에서 공개한 콘셉트카 ‘엘리베이트’ ⓒ현대차
    ▲ 현대자동차가 지난해 초 세계 최대 전자쇼 CES 2019에서 공개한 콘셉트카 ‘엘리베이트’ ⓒ현대차
    정 회장의 사재 출연이 갖는 의미도 남다르다. 기업 회장이 사재를 털어 M&A에 나서는 것은 이례적이다. 더군다나 보스턴 다이내믹스는 성장 여력이 있지만 적자를 내는 기업이다. 지난해 1121억원 영업손실을 기록했다. 매출액은 30억원에 불과했다.

    그룹 측은 “정 회장이 미래 사업에 대한 책임경영을 강화하는 차원에서 사재를 출연했다”며 “지속적인 의지를 보여준 것”이라고 설명했다. 

    실제 정 회장은 미래세대의 먹거리를 위해 과감하게 결단해야 한다는 의지를 피력한 것으로 알려졌다. 현대차그룹은 올해 444억달러(약 4조3800억원) 규모의 전 세계 로봇 시장이 2025년이 되면 1772억달러(약 193조6700억원) 규모로 커질 것으로 내다봤다.

    향후 보스턴 다이내믹스 상장과 지배구조 개편을 염두에 둔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온다. 소프트뱅크그룹은 보스턴 다이내믹스가 4년 안에 미국 시장에 상장하면 가진 지분(20%)을 매각할 기회를 가진다. 상장하지 않더라도 현대차, 현대모비스, 현대글로비스, 정 회장 등이 지분을 매입하는 내용이 거래에 담겼다.

    한 업계 관계자는 “현대차그룹이 보스턴 다이내믹스 상장 가능성에 무게를 둔 것으로 보인다”며 “구글과 소프트뱅크그룹은 오랜 시간 수익성을 내기까지 기다릴 여유가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현대차그룹 아래 있는 보스턴 다이내믹스는 얘기가 다르다”면서 “생산 시설을 갖춘 제조 기업인 만큼 탄탄한 뒷받침이 된다”고 봤다.

    이상현 IBK투자증권 연구원은 “기아차 대신 현대글로비스와 정 회장이 인수에 참여했다는 것이 특이점”이라며 “대주주 지분 가치를 극대화해 추후 지배구조 변화에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 ▲ 미국 로봇업체 ‘보스턴 다이내믹스’의 로봇 ⓒ현대자동차그룹
    ▲ 미국 로봇업체 ‘보스턴 다이내믹스’의 로봇 ⓒ현대자동차그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