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택과 집중 바탕 '실적호조-경영안정' 이어가인수 후 둘째형 일가와 경영권 분쟁 최소화 작업 가능성도
  • ▲ 서울 중구 소재 금호석유화학 본사. ⓒ권창회 기자
    ▲ 서울 중구 소재 금호석유화학 본사. ⓒ권창회 기자
    금호석유화학이 '금호家의 마지막 유산' 금호리조트를 인수한다. 계열분리한 금호석유화학그룹의 박찬구 회장이 형제간 갈등으로 등을 진 형 박삼구 전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이 한 때 경영하던 기업을 인수하는 것인 만큼 재계 이목이 쏠린다.

    특히 박삼구 전 회장이 확장적 경영으로 그룹 핵심 자산들을 잇달아 매각하는 반면 박찬구 회장은 안정적인 영업성적을 기반으로 인수에 나서는데다, 추후 일어날 수 있는 경영권 분쟁을 염두에 둔 조치로 풀이되면서 옛 금호그룹의 명성 회복 여부에 재계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27일 업계에 따르면 아시아나항공과 채권단은 최근 금호석유화학을 금호리조트 인수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했다.

    금호석유화학은 본입찰에서 금호리조트의 부채를 제외한 지분가치에 대해 원매자 가운데 가장 높은 가격인 2000억원 후반대를 제시한 것으로 전해졌다. 응찰자 대부분이 2000억원 안팎을 제시하고 일부는 1800억원대 후반을 쓴 곳도 있는 점을 감안하면 상당한 금액을 베팅한 셈이다.

    아시아나항공과 채권단은 다음 달 초 주식매매계약(SPA) 체결을 목표로 매각작업을 진행할 예정이다.

    매각 대상은 경기 용인시 소재 아시아나CC를 비롯해 제주·경남 통영·전남 화순·강원 속초 등의 콘도미니엄 4곳, 아산 스파비스 등 워터파크 3곳, 중국 산둥성 웨이하이 포인트 호텔&골프리조트 등이다.

    무엇보다 이번 M&A는 박 전 회장과 박 회장이 2000년대 중반 '형제의 난'을 겪은 터라 더 관심을 끌고 있다.

    금호그룹은 1984년 창업주 故박인천 회장이 세상을 떠난 후 장남 故박성용 명예회장과 차남 故박정구 회장, 삼남 박 전 회장 순으로 형제경영 전통을 이어갔다.

    이에 따라 박 전 회장 다음으로 박 회장이 바통을 이어받는 수순이었으나, 박 전 회장이 장남인 박세창 금호산업 사장에게 경영권을 넘기려고 시도하자 형제간 갈등이 불거졌다.

    박 전 회장과 박 회장의 경영철학 차이도 두 형제가 갈라서는 계기가 됐다. 박 전 회장은 대우건설과 대한통운 인수 등 공격적인 M&A와 무리한 차입경영으로 사세를 확장하는데 주력했으나, 박 회장은 안정적이고 보수적인 기업 운영을 추구해 갈등이 잦았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2009년 말 금호산업과 금호타이어 등이 워크아웃(기업개선작업)에 돌입해 그룹 전체가 존립 위기에 직면했다.

    이후 법정 싸움을 통한 형제의 난을 겪으면서 박 전 회장이 아시아나항공과 금호산업을 담당(금호아시아나그룹)하고 박 회장이 석유화학 사업을 맡는 것으로 2015년 계열을 분리했다.

    2015년 그룹 구조조정 5년여 만에 박 전 회장은 금호산업을 인수하면서 그룹 재건에 성공했으나, 재건 과정이 투명치 않았고 자금난도 더해지면서 최근 위기의 시발점이 됐다.

    결국 무리한 그룹 재건 시도로 금호아시아나는 어려움이 가중돼 핵심 계열사이자 선대 회장들이 피땀으로 일으킨 아시아나항공마저 매각하는 상황에 놓였다. 매각 과정은 험난했고, 아직 최종 완결도 나지 않은 상황이다.

    금호아시아나그룹은 생존을 위해 팔 수 있는 모든 자산을 내놓게 되면서 그룹 규모가 중견기업 수준으로 쪼그라들게 된다. 남아있는 금호산업, 금호고속 역시 대부분 주식이 은행에 담보로 들어가 있어 금호아시아나그룹은 빚 갚는 데만 적지 않은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 ▲ 경기 용인시 소재 아시아나CC. ⓒ뉴데일리경제 DB
    ▲ 경기 용인시 소재 아시아나CC. ⓒ뉴데일리경제 DB
    이에 반해 내실을 중시한 박 회장은 금호리조트를 되사들일 수 있는 여유를 갖게 됐다.

    금호석유화학의 경우 지난해 NB라텍스 호황 등에 힘입어 안정적인 실적을 시현할 것으로 보인다. 금융투자업계 실적 전망 분석 결과 금호석유화학은 4분기 2341억원, 연간 7010억원의 영업이익을 거둘 것으로 추산된다.

    금호석유화학의 호실적 배경에는 주력인 합성고무 사업의 호황이 있다. 특히 코로나19로 위생장갑 수요가 늘면서 라텍스 장갑 소재인 NB라텍스가 실적을 견인했다. 수요가 지속 증가하면서 가격까지 덩달아 오른 케이스다.

    뿐만 아니라 3분기 말 기준 부채비율 66.2%, 차입금의존도 33.3%, 유동비율 136%의 지극히 우수한 재무안정성을 갖추고 있다.

    이처럼 금호석유화학이 안정적인 경영성과를 보이고 있는 것은 박 회장의 '선택과 집중' 경영 덕이라는 평이다. 금호석유화학은 2016년부터 타이어용 고무 대신 NB라텍스 생산을 늘려왔다.

    박 회장의 골프장 인수 의지도 강한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박 회장은 2014년 김포공항 인근 27홀 퍼블릭 골프장 사업권 입찰에 참여했지만, 성사시키지 못했다. 2016년에도 파주CC 본입찰에 나섰지만, 가격 협상에 실패하며 본계약으로 연결되지 못했다.

    더군다나 아시아나CC는 단순한 골프장이 아니라 금호아시아나그룹 차원에서 일궈낸 명품 골프장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박 전 회장이 아시아나CC 내에 개인별장을 보유할 만큼 각별한 애정을 쏟은 골프장인 만큼 최상급 수준으로 관리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번 매각 과정에서도 박 전 회장의 딸 박세진 금호리조트 상무가 김현일 금호리조트 대표를 대신해 입찰후보들에게 매물을 설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무엇보다 금호아시아나그룹의 모태였던 금호타이어에 이어 아시아나항공까지 매각되는 것을 보면서 박 회장이 이번 인수에 적극 나선 것으로 보인다.

    업계에서는 박 회장이 형제간 갈등과는 별개로 집안이 영위해온 사업을 다른 기업에 넘어가도록 둬서는 안 된다고 판단했을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 금호가의 명예를 지키기 위한 인수라는 것이다.

    재계 한 관계자는 "두 사람간 갈등이 있었지만, 두 그룹은 금호리조트를 함께 썼다"며 "집안이 함께 이용하던 곳이라 양쪽 모두에게 의미가 적지 않은 만큼 박 회장 입장에서는 제3자에게 넘어가는 것을 볼 수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업계에서는 금호석유화학이 이번 인수를 시작으로 지분 정리를 시작할 가능성을 점치고 있다.

    금호석유화학은 박 회장이 이끌고 있지만, 사실은 '한 지붕 두 가족' 경영이 이뤄지고 있다.

    금호석유화학의 최대주주가 박 회장의 조카이자 故박정구 회장의 장남인 박철완 상무이기 때문이다. 박 상무의 지분율은 10%로, 박 회장(6.69%)보다도 높다. 박 회장의 장남 박준경 전무(7.17%), 장녀 박주형 상무(0.98%)의 지분을 더하면 14.84%로 높아진다.

    아직 경영권 승계가 본격화되지 않았지만, 박 회장 일가와 박 상무의 지분 정리가 불가피할 전망이다.

    게다가 지난해 4월 인사에서 박 전무가 승진한 것과 달리 박 상무는 자리를 지켰다. 동갑내기인 두 사람은 2010년 부장에서 상무보로 함께 승진한 바 있다.

    이에 경영권 승계가 박 전무 쪽으로 힘이 실린다는 해석이 나온다. 하지만 이 경우 경영권 분쟁이 벌어질 가능성도 커진다. 박 회장 입장에서는 '형제의 난'을 벌인 경험이 있는 만큼 갈등을 최소화하는 방안을 고민했을 것으로 보인다.

    박 상무에게 골프장과 레저사업을 통째로 맡기면서 향후 계열분리를 염두에 둔 것이 아니냐는 해석이 나오는 까닭이다.

    황규원 유안타증권 연구원은 "이번 M&A를 계기로 숙부와 조카 간의 지분정리가 시작될 가능성이 있다"며 "조카에게 관련 사업을 넘겨주고 계열분리하거나 지주사로 전환하는 등 운신의 폭이 커질 수 있을 것"이라고 판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