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상단계서 정차역 위치까지 못 박아…지자체 제안노선을 원안으로 오해'김부선'만 B/C 1.0 넘어, 경기·인천案 미달…김포→강남 비중 6% 불과"김포골드라인 최소 4량은 됐어야"…전문가 의견 무시·행정 판단 미스5호선 연장 '건폐장' 동반이전이 걸림돌…"S-BRT·BTX도 고려해볼만"
  • 이른바 수도권광역급행철도(GTX) D 노선으로 불리는 서부 광역급행이 김포장기~부천종합운동장을 잇는 '김부선'으로 공개되면서 논란이 거세다. 교통난에 시달리는 김포·검단지역 주민은 "인구 50만에 달하는 도시에 서울 직결 노선이 없는 게 말이 되느냐"고 분노한다. 정부는 뒤늦게 GTX-D를 여의도나 용산까지 연장운행하는 방안을 검토한다는 태도지만 강남 직접연결을 주장하는 목소리는 잦아들지 않는 모습이다. 하지만 철도전문가들의 의견은 다소 냉정하다. GTX-D만 놓고 보면 수도권 서부지역의 교통난 해소 말고도 고려할 사항이 적잖다고 말한다. GTX-D의 향방과 문제점, 노선을 둘러싼 논란의 배경에 대해 짚어본다. <편집자 註>
  • ▲ 경기 김포·인천 검단시민들로 구성된 김포검단교통시민연대가 15일 오후 김포시 장기동 라베니체 광장에서 'GTX-D 원안사수 5호선 김포연장 촛불챌린지'집회를 갖고 있다. ⓒ뉴데일리DB
    ▲ 경기 김포·인천 검단시민들로 구성된 김포검단교통시민연대가 15일 오후 김포시 장기동 라베니체 광장에서 'GTX-D 원안사수 5호선 김포연장 촛불챌린지'집회를 갖고 있다. ⓒ뉴데일리DB
    ◇GTX-D, 사업성 분석 논란

    GTX-D노선 원안은 뭘까. 김포~서울남부~하남 혹은 인천공항~서울남부~하남 노선이 원안인가. 엄밀히 말하면 원안 노선은 '김부선'이다. 국토교통부는 지난달 22일 열린 제4차 국가철도망 구축계획(안) 공청회에서 서부 광역급행 노선을 공개했다. 김포~하남은 경기도, 인천공항~하남은 인천시가 각각 '제안'한 노선일 뿐이다. '원안'이라 부르기엔 어폐가 있다.

    그럼 노선은 누가 그었을까. 각 지방자치단체는 자체 연구조사 등을 통해 노선을 그었다지만 지자체가 제안하는 대규모 사회간접자본(SOC) 사업의 타당성 조사는 해당지역의 민원이나 지자체의 입김이 작용할 수밖에 없다. 비용은 줄이고 편익은 높이는 방법이 동원된다.

    2019년 문재인정부가 국가균형발전이라는 명분으로 추진한 24조원 규모의 예비타당성 조사(예타) 면제 사업중 유일한 항공분야 인프라사업인 새만금 국제신공항건설사업의 경우 전북도는 자체 연구용역을 통해 항공여객 수요를 2025년 190만명, 2030년 402만명으로 내다봤다. 하지만 나중에 국토부가 의뢰한 사전타당성 검토 연구용역에선 개항 초기인 2029년 항공 수요가 72만명, 목표연도인 2058년엔 84만명으로 예측됐다. 지자체가 발주한 연구용역에 얼마나 거품이 끼어있는지 알 수 있는 단적인 예다. 정부가 혈세를 지원하기 전 예타를 통해 따로 경제성(B/C)을 분석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공청회에서 GTX-D가 베일을 벗은 이후 김포를 지역구로 둔 더불어민주당 김주영 의원이나 김상호 하남시장은 국회 5분 자유발언, 국토부 항의방문을 통해 김포~하남 노선의 B/C가 1.02로 나왔다며 강남 직결이 빠진 김부선을 비판했다. B/C는 1.0을 넘어야 사업성이 있다고 본다. 하지만 1.02는 경기도의 용역 결과다. 이번에 제4차국가철도망구축계획 연구용역을 수행한 한국교통연구원에 따르면 경기도·인천시 제안노선과 김부선에 대한 경제성 분석 결과 B/C가 1.0을 넘긴 것은 정부안인 김부선뿐이다. 최진석 교통연 선임연구위원은 "정부 연구용역은 사업별로 지자체 입맛에 맞게 비용과 편익을 맞춰 평가하는 게 아니다"면서 "경기·인천안은 B/C에 지역균형발전 등 계층화 분석값을 추가한 종합평가(AHP)에서도 기준값(0.5)을 못 넘었다"고 설명했다.

    강남 직결이 빠진 이유중 하나는 통근대상 지역 분석에 기반했다. 교통연측 설명으로는 김포에서 강남까지 가는 비중은 전체의 6%로 분석됐다. 경기지역이 60%, 수도권과 인천으로 가는 비율이 각각 17%쯤이다. 국토부 관계자는 "김포·검단의 통근지역은 서울 강서·마포·영등포구 등이 가장 많은 것으로 조사됐다"고 부연했다. 교통연은 다음달 제4차 국가철도망 계획을 확정·고시할때 관련 내용을 모두 공개할 계획이다.
  • ▲ GTX 노선도.ⓒ연합뉴스
    ▲ GTX 노선도.ⓒ연합뉴스
    ◇5호선 연장도 녹록지 않아…BRT 등 대안될까

    김포주민들은 GTX-B 지선 성격의 김부선이 경기도안보다 B/C가 높다는 걸 받아들이지 못하는 분위기다. 누가 김부선을 타겠냐는 반응이다. 또한 예타를 턱걸이로 통과한 GTX-B는 6조원 가까운 돈을 쏟아붓는데도 추진하고 5조9000억원이면 가능한 경기도안은 왜 묵살하냐고 반발한다. 한 철도전문가는 "우리나라 민자철도중 사업비가 6조원을 넘는 것은 없다"며 "GTX-B도 결국 구간을 쪼개 재정과 민자를 병행하는 방안으로 검토중"이라고 설명했다.

    김포주민은 GTX-D와 함께 서울지하철 5호선 연장 재추진도 요구한다. 그러나 녹록지 않은 실정이다. 관건은 서울시가 강서구 방화차량기지 옆의 건설폐기물 처리장을 차량기지와 함께 옮기길 원하지만 김포시와 인천시는 이를 반대한다는 점이다. 국토부 대도시권광역교통위원회(대광위)는 철도 정책권한이 없기에 지자체 협의가 이뤄지지 않으면 5호선 연장은 쉽지 않다는 입장이다. 손덕환 대광위 광역교통정책과장은 "먼저 김포와 인천간 노선 협의에 이어 서울과의 건폐장 협의가 이뤄져야 한다"며 "서울시의 차량기지 이전 관련 연구용역이 오는 7월 나오지만 그래도 상황을 낙관할 순 없다"고 말했다.

    일각에선 차선책으로 '땅위의 지하철'로 불리는 슈퍼-간선급행버스체계(S-BRT)와 BTX(고속전용차로버스) 등을 고려할 수 있다는 의견을 내놓는다. 한 광역교통전문가는 "제4차 광역교통시행계획(2021~2025)에 올림픽대로(행주대로~당산역)와 강변북로(수석나들목~강변역)에서의 BTX 시범사업이 반영됐다"며 "서울시가 김포·검단지역에서 접근하는 노선에 유연한 태도를 보인다면 검토해볼 만할 것"이라고 제언했다.
  • ▲ 광역교통 2030비전 당정협의.ⓒ연합뉴스
    ▲ 광역교통 2030비전 당정협의.ⓒ연합뉴스
    ◇정치논리 앞선 철도 건설, 기준·원칙 '흔들'

    철도전문가들은 이번 GTX-D 논란을 두고 정치인 등 비전문가가 구상단계에서부터 멋대로 노선을 긋는 게 문제라고 지적했다. 서광석 전 한국교통대 명예교수는 "국가철도망계획은 국가가 중장기적인 안목에서 철도망을 구축·운영하려고 노선 확충계획의 기본방향을 그리는 '밑그림'과 같다. 시점과 종점만 표시하고 (전문가들이) 어느 '축'을 지난다는 표현을 쓰는 이유다. 구체적인 노선은 기본·실시계획 등을 거쳐 결정된다"면서 "(우리는) 구상단계에서 이미 정차역 등 구체적인 노선이 나와버린다. (정치적으로) 정차역을 미리 정해버려 노선이 비효율적인 데도 기본계획 등에서 바로잡지 못하는 경우가 적잖다"고 토로했다. 서 전 명예교수는 "축척 2만5000분의 1 지도에서 노선 위치가 1㎝만 달라져도 좌우로 한 블록(500m쯤)이 차이 난다"면서 "국가 장래계획을 비전문가 그룹이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 좌지우지한다는 건 문제가 있다"고 덧붙였다.

    염병수 아주대 철도시스템학과 교수는 "철도는 (일반)도로와 달리 당장의 불편함보다 미래를 보고 하는 것"이라며 "20~30년 후 인구·주거 변화 등을 시뮬레이션해 나중에라도 설계변경 없이 사업을 추진할 수 있게 하는 '개념 설계'가 중요하다. (우리는) 기본·실시설계, 시공 심지어 사후 운영단계에서도 설계변경이 잦다. 비용만 증가한다"고 지적했다.

    GTX-D는 2019년 대광위가 광역교통비전 2030 선포식에서 뜬금없이 신규 GTX 노선을 검토하겠다고 밝히면서 급물살을 탔다. 인천·경기는 기다렸다는 듯 노선관련 자체 연구용역을 진행하겠다고 나섰고, 서울시는 2013년부터 추진하려던 남부광역급행철도를 GTX-D와 연계해 추진하겠다는 구상을 밝혔다.

    당시에도 대광위가 GTX 신규사업을 언급한 것을 두고 말이 많았다. 정부·여당이 지난해 4·15총선과 조국 사태로 이탈한 중도 지지층 복귀를 염두에 두고 선심성 이벤트를 벌인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광역교통 비전은 국가철도망계획 같은 법적 지위가 없는데다 사업 규모, 재원 조달 계획도 없이 성급하게 발표가 이뤄졌기 때문이다. 일각에선 대광위가 지자체장이나 국회의원의 민원 창구로 전락했다는 비판도 있었다.

    GTX-D는 이후 지자체와 정치권, 언론이 확대 재생산하며 오해를 키운 측면이 없잖다. 최 선임연구위원은 "애초 대광위가 수도권 서부권으로 GTX 수혜지역을 확대하는 방안을 검토한다고 했지 기존 GTX A·B·C노선 사업처럼 수도권을 관통해 반대편으로 뚫고나가는 형태의 GTX-D 사업을 추진한다고 발표한 적 없다"면서 "서부 광역급행에 대한 기대감과 상상력이 더해지면서 강남 직결까지 오해가 커진 것"이라고 했다.

    거슬러 올라가면 지하철 5·9호선 연장이 무산되고 추진된 '김포 골드라인'도 철도전문가 의견을 무시하고 주먹구구로 밀어붙였던 게 패착으로 꼽힌다. 골드라인은 김포와 서울을 잇는 2칸짜리 경전철이다. 한 철도전문가는 "당시에도 경전철이 '작다'는 얘기가 있었다. 전문가들은 최소 4량은 필요하다고 했지만, 적자 우려와 예타 통과를 이유로 2량으로 추진됐다"고 설명했다. 이어 "당시는 지금처럼 인구가 많지 않고 운영비를 시가 부담했던 탓도 있겠으나, 결과적으로 시가 장기개발계획에 따른 수요 예측 판단을 잘못한 게 원인"이라고 덧붙였다. 염 교수는 "외국은 평소에는 3량짜리로 운행하다 사람이 몰리는 첨두시(러시아워)에는 3편성을 붙여 9량으로 운행하는 경우가 많다"면서 "(김포 골드라인도) 고정편성을 고집하지 말고 승강장 시설 등을 탄력적으로 활용하는 방안을 찾았어야 한다"고 거들었다.

    문제는 SOC 사업 추진에 대한 기준을 바로 세워야 할 정부가 정치적 이해관계 등에 얽혀 스스로 원칙을 무너뜨린다는 점이다. 예타 면제사업이 대표적이다. 정치적 판단에 따라 언제든 제2의 김부선 논란이 재연될 수 있다는 얘기다. 철도전문가들은 "많은 사업비가 투입되는 철도 건설은 원칙과 철학이 있어야 한다"고 역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