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로자위원, 올해보다 23.9% 오른 최초 요구안 제시사용자위원 "용납 안 돼"… 동결보다 강수 둘 가능성업종별 차등적용도 논의… 4시간 넘게 견해차만 확인제6차 회의서 표결 부치기로… 관례대로 동일적용 예상경영계 요구안도 29일 제출… 올해도 법정기한 넘길듯
  • ▲ 노사 간 엇갈린 시선.ⓒ연합뉴스
    ▲ 노사 간 엇갈린 시선.ⓒ연합뉴스
    내년도 시간당 최저임금에 대한 최초 요구안으로 노동계가 올해보다 23.9% 오른 1만800원을 제시했다. 경영계는 어불성설이라며 반발하는 분위기다.

    노동계는 24일 열리는 최저임금위원회 제5차 전원회의에 앞서 기자회견을 열고 내년도 최저임금 최초 요구안으로 1만800원을 제출하겠다고 밝혔다. 이는 올해 최저임금(8720원)보다 2080원(23.9%) 많은 금액이다. 월평균 근로시간 209시간을 적용한 월급 환산액으로는 225만7200원이다. 근로자위원들은 "중국발 코로나19(우한 폐렴)로 경제 불평등과 양극화가 심화하고 있다"며 "이를 해결하기 위해 최저임금이 대폭 인상돼 소득 증대와 소비 진작으로 이어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은 지난달 25일 "내년 최저임금 최초요구안은 지난해 요구했던 금액보다 높게 결정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선수를 쳤다. 지난해 민주노총은 내년도(올해) 노동자 가구의 실제 생계비가 225만7702원으로 추산된다며 2021년도 최저임금이 월 환산액으로 225만원은 돼야 한다고 주장했었다. 시급으로는 1만770원에 해당한다. 다만 노동계는 지난해 최초요구안으로 16.4% 오른 1만원을 제시했었다. 민주노총의 주장이 지급능력을 고려치 않은, 무리한 요구라는 비판이 제기되자 한국노동조합총연맹(한국노총)과의 논의를 거쳐 절충안을 내놨다는 해석이 많았다. 그동안 민주노총이 언급한 '지난해 요구금액'이 민주노총이 주장했던 1만770원인지, 한국노총과 협의를 거쳐 최초 요구안으로 제시했던 1만원인지 명확하지 않았다. 이날 노동계가 발표한 최초 요구안을 참작하면 민주노총이 주장했던 1만770원이었음을 알 수 있다. 이는 올해 최저임금 논의가 어느 때보다 치열할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노동계에서 민주노총의 입김이 강하게 작용할 수 있다는 뜻으로 해석되는 대목이다.
  • ▲ 노동계, 내년도 최저임금 1만800원 요구.ⓒ연합뉴스
    ▲ 노동계, 내년도 최저임금 1만800원 요구.ⓒ연합뉴스
    경영계는 노동계가 제시한 금액을 놓고 긴급회의에 들어간 모습이다. 한 사용자위원은 노동계 최초 요구안에 대해 "(1만800원은) 한마디로 시기상조다. 용납할 수 없는 수준이다"고 잘라 말했다. 김문식 한국주유소운영업협동조합 이사장은 "대꾸하거나 논의할 가치가 없다"면서 "방법부터가 잘못됐다. 장내에서 제시하고 논의해야 할 최초 요구안을 장외에서 언론플레이(여론몰이)로 (제시)하는 것에 대해 강한 유감의 뜻을 표한다"고 비판했다. 류기정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 전무도 최저임금의 업종별 차등 적용 여부에 대한 심의가 끝나지 않은 상황에서 노동계가 최초 요구안을 언론에 발표한 데 대해 유감을 표시하고 "1만800원이라는 요구안 자체가 어떻게든 생존하고자 버티는 소상공인과 영세 중소기업들에 큰 충격을 주고 있다"고 강조했다.

    경영계는 이날 오전까지도 최초 요구안을 놓고 의견이 분분했다. 한 사용자위원은 "이견을 조율해야 한다"면서 "마이너스(인하)안 의견도 있고 동결을 주장하는 의견도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 경영계는 -4%대 인하안과 -2%대 인하안을 놓고 고민하다 180원 내린 8410원(-2.1%)을 최초 요구안으로 냈었다.

    소상공인연합회가 지난 1일 발표한 '2022년도 최저임금 소상공인 영향 실태조사'를 보면 동결(46.3%)과 인하(45.7%) 응답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인상해야 한다는 답변은 8.1%에 불과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경영계 관계자는 "노동계가 전향적인 자세로 나온다면 (지난해처럼) 인하안을 내놓는 것이 협상에 도움이 되겠냐는 의견도 없잖다"고 전했다. 올해 최저임금위 심의과정이 지루한 힘겨루기 양상으로 흐를지 여부는 노동계가 내놓을 최초 요구안의 진정성에 달렸다는 얘기다.

    이날 노동계가 지난해 민주노총이 주장했던 금액(1만770원)보다 30원 많은 금액을 제시하면서 경영계도 강수로 맞불 대응에 나설 공산이 커졌다. 지난해처럼 인하안을 최초 요구안으로 제시할 거라는 관측도 조심스럽게 나온다. 경영계는 오는 29일 열리는 제6차 전원회의에서 최초 요구안을 제출할 계획이다.

    최저임금은 노사가 각각 요구안을 제시하면 이를 두고 논의하는 과정을 반복하면서 격차를 좁히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노사 간 견해차가 크게 벌어질 것으로 보여 최초 요구안 제시 후에도 상당한 진통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 ▲ 제4차 전원회의 모습.ⓒ연합뉴스
    ▲ 제4차 전원회의 모습.ⓒ연합뉴스
    한편 최저임금위는 이날 지난번 4차 회의 때 결론 내지 못한 업종별 차등 적용 여부를 두고 논의를 이어갔다. 경영계는 중국발 코로나19로 직격탄을 맞은 숙박·음식업 등의 경우 지급능력에 한계가 왔다며 어느 때보다 업종별 차등 적용이 필요하다는 견해다. 반면 노동계는 차등 적용이 이뤄지면 일부 취약업종에 저임금의 낙인을 찍을 수 있다며 반대한다. 국내에서 최저임금의 업종별 차등 적용을 시행한 것은 최저임금 제도를 도입한 첫해인 1988년뿐이다. 당시 업종을 2개 그룹으로 나눠 최저임금을 달리 적용했다.

    촉박한 심의기한 등을 고려할 때 공익위원이 최저임금 결정단위 심의 때처럼 관례대로 모든 업종 동일 적용 의결을 유도할 가능성이 크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그러나 이날 4시간이 넘도록 노사 간 견해차가 좁혀지지 않자 최저임금위는 다음번 6차 회의에서 표결로 차등 적용 여부를 결정키로 했다.

    내년도 최저임금의 법정 심의기한은 오는 29일이다. 최저임금위가 법정 기한을 지킨 적은 거의 없다. 최저임금 고시 시한이 8월5일인 점을 고려하면 최저임금위는 다음 달 중순까지는 내년도 최저임금을 의결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