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인병 재난의학회 이사장 “밀집사고 인식 결여 탓… 견고한 대책 必”이형민 응급의학의사회장 “참사 현장서 교통 통제 미흡… 컨트롤타워 구축”후속대책 핵심은 국내 특성 맞는 압사·밀집사고 연구 기반 정책 수립
  • ▲ 9일 오후 서울 용산구 이태원동 일대에 인파가 몰려 대규모 압사사고가 발생한 가운데 사망자들과 부상자들이 병원으로 욺겨지고 있다. ⓒ이종현 기자
    ▲ 9일 오후 서울 용산구 이태원동 일대에 인파가 몰려 대규모 압사사고가 발생한 가운데 사망자들과 부상자들이 병원으로 욺겨지고 있다. ⓒ이종현 기자
    이태원 참사의 재발을 막기 위해 밀집사고 인식을 제고하고 구체화된 대응 지침이 마련돼야 한다는 진단이다. 전방위적 응급의료체계가 작동됐음에도 예방적 차원의 행사장 안전망이 없었기 때문에 화를 키웠다는 것이다.

    31일 김인병 대한재난의학회 이사장은 본보를 통해 “코로나19 이후 야외 노마스크 조치 등 방역망이 완화된 상황에서 대규모 인파가 몰릴 것으로 예상됐음에도 공연 및 행사장 안전에 대한 낮은 사회적 인식과 정부, 지자체, 경찰의 총체적 대책이 미흡했다”고 말했다.

    지난 2017년 행정안전부는 ‘재난 및 안전관리 기본법’에 ‘다중 밀집사고에 대한 재발방지 개선방안’을 마련해 안전대책 수립대상인 지역축제 참석인원을 기존 ‘순간 최대 관람객 3000명에서 1000명’으로 조정·강화했다. 

    하지만 이태원 참사 당시 순간 최대 관람객을 대비한 관리체계는 이뤄지지 않았다. 지자체 주도로 행사를 주최한 것이 아니라 핼러윈 데이를 맞아 자발적 인파가 몰린 것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예견된 사고를 대비한 예방조치가 미흡했다는 비판에서 벗어날 수 없다. 

    김 이사장은 “지역행사 주최자 여부를 따지지 말고 밀집되는 공간, 이번 사고와 같은 좁은 골목길에 사람이 몰리는 상황 등 보다 밀집사고의 구체적인 대책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며 “사후약방문으로 이어지지 않도록 시행이 담보돼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 응급체계 개선에도 현장 통제 ‘엇박자’… 컨트롤타워 부재

    김 이사장을 포함한 대다수 응급의학과 교수진들은 참사 당시 응급의료 체계가 잘 작동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최초신고 접수 이후에 신속한 초기 공동 대응 요청이 있었으며, 이전 다수사상자 사고 때와는 다르게 서울 전역으로 중증도에 따라 센터급과 기관급으로 사상자들이 적절히 분산 이송됐기 때문이다.

    사고 지역에서 가장 가까운(약 1㎞) 순천향대서울병원에 사상자가 쏠렸지만 이후엔 중앙응급의료상황실의 정보를 기반으로 사망자와 부상자 대응이 이뤄졌다. 

    문제는 사고현장 통제가 미흡했다는 것이다. 응급의료체계 가동을 위해 서울, 경기권에서 출동한 구급차가 진입하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했고 이로 인해 이송이 늦어지는 상황도 발생했다. 

    즉, 응급의료체계 가동을 위한 유기적 협력체계가 형성됐음에도 행정력의 부재, 특히 경찰의 교통 통제 등이 미흡해 초동 대처가 어려웠다는 것이다. 

    이형민 대한응급의학의사회장은 “이번 참사의 철저한 반성이 필요하고 재난 상황 속 컨트롤타워가 잘 작동될 수 있도록 즉각 조치를 취해야 한다”며 “엇박자난 현장 통제의 문제를 개선하기 위한 심도 있는 고민이 필요하다”이라고 강조했다. 

    ◆ 국내 특성에 맞는 ‘압사 연구’ 시급… 개인 논문 아닌 정부 용역으로 

    이번 참사 현장에 투입된 의료진들은 “이미 다수의 피해자들이 심폐소생술(CPR)에도 깨어나지 못할 정도로 질식한 상태”였다고 밝혔다. ‘흉부 압박으로 인한 질식사’가 많았다. 평지가 아닌 경사로에서 벌어진 압사의 위험성은 더 크다. 

    통상 알려진 대로 1㎡(약0.3평)에 5명이 들어갈 정도로 인파가 몰리면 몸에 압박을 느끼고 휩쓸리기 시작하고, 동일 공간에 10명이 있으면 비명을 지를 정도로 고통스러운 현상이 나타난다. 여기에 12명 이상으로 올라가면 정신을 잃을 가능성이 커진다.
     
    하지만 해당 내용과 같이 해외 연구에 의존하는 형태에서 벗어나 국내 체형에 맞는 연구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나온다. 그래야만 보다 적극적인 대책 마련이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김호중 순천향대부천병원 응급의학과 교수는 “우리는 소위 출퇴근 시간 ‘지옥철’ 등 밀집된 공간에 익숙하고 서양인에 비해 체형이 작다. 이러한 국내 특성에 맞는 연구가 진행되고 이를 근거로 현실성 있는 대책을 마련하는 것이 중요한 시점”이라고 진단했다. 

    그는 “1㎡당 얼마나 모이지 않아야 압사를 예방할 수 있는지, 경사로에 따른 위험성은 어떻게 달라지는지 등 기준을 설정하고 적용할 수 있도록 다각적 대책이 나와야 할 때”라고 말했다. 

    연구자의 자체 논문 발표보다 정부 주도의 연구용역이 발주돼 이를 정책에 심는 과정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제시됐다. 

    이형민 응급의학의사회장은 “이태원 참사 후속대책으로 압사, 밀집사고와 관련한 각 부처의 연구용역이 나오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며 “이러한 움직임이 있어야 근거 중심으로 제도적 변화가 이뤄지는 구조가 되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