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일 전원회의서 결합 승인날지 주목… 한화측 언플 의혹도산은·거제시민대책위·서일준 의원 등 이례적·전방위 압박기업결합 '눈치' 선례 남기나… '경제검찰' 입지 좁아져
  • ▲ 공정거래위원회 ⓒ연합뉴스
    ▲ 공정거래위원회 ⓒ연합뉴스
    '경제검찰'이라고 불리며 막강한 파워를 자랑하던 공정거래위원회의 위상이 날이 갈수록 떨어지는 모양새다. '친기업'을 표방하는 윤석열 정부 출범 전부터 공정위의 역할이 축소될 것이라는 우려가 없잖았지만, 최근 한화와 대우조선해양 기업결합 심사과정에서 잡음이 불거지며 논란이 가열되고 있다.

    논란의 시작은 한화와 대우조선의 기업결합 심사에 대해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를 마지막으로 해외 7개 경쟁당국의 심사가 완료되면서다. 까다롭기로 소문난 EU 집행위의 심사도 끝났는데 유독 우리나라 공정위만 심사결과를 내놓지 않느냐는 것이다.

    이에 공정위는 이례적으로 지난 3일 긴급 백브리핑을 열어 "지난달 말 한화에 경쟁제한 우려를 해소할 수 있는 시정방안을 제출하라고 요청했다"고 밝히며 심사 지연의 화살을 한화 측에 돌렸다. 하지만 한화는 곧바로 "공정위로부터 시정방안 제출을 요청받은 바 없다"고 정면 반박하고 나섰다.

    심사를 받고 있는 기업이 공정위의 주장을 '거짓'이라고 바로 반박한 것은 전무후무한 사건이다. '을'의 입장이 될 수밖에 없는 기업 입장에서 사실상 '갑'인 공정위의 심기를 거스리기는 쉽지 않기 때문이다.

    공정위에 대한 압박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대우조선의 최대주주인 KDB산업은행에 더해 거제범시민대책위원회는 한화와 대우조선의 기업결합 심사를 조속히 마무리해달라고 공개적으로 요청했다. 경남 거제가 지역구인 서일준 국민의힘 의원도 이달 내로 심사를 마무리해달라며 사실상 공정위 압박에 가세했다.

    방위사업청도 공정위에 '한화와 대우조선의 기업결합 시 군함 부품 시장의 경쟁 제한 우려가 없다'는 의견을 전달했다. 이런 보도가 연일 이어지며 공정위가 '늑장 심사'를 한다는 비판은 더욱 거세졌다.

    이해관계자들이 공개적으로 입장을 표명하고, 조속한 심사 필요성에 대한 언론보도가 연일 나오는 것에 대해 일각에선 '조건부 승인'이 아닌 '무조건 승인'을 의도한 한화의 노림수가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앞서 공정위는 한화의 함정 부품(방산) 사업 시장과 대우조선의 함정 사업 시장의 수직결합으로 경쟁제한 효과가 우려돼 면밀하게 살펴보고 있다고 밝혔다. 이 때문에 사업조정 같은 조건부 승인에 무게가 기울었다는 관측이 제기됐다. 한화로선 기업결합에 따른 시너지 효과가 반감될 우려가 커진 것으로, 피하고 싶은 시나리오 중 하나다.
  • ▲ 12일 열린 대우조선해양의 올바른 매각을 위한 거제범시민대책위 집회 현장 ⓒ연합뉴스
    ▲ 12일 열린 대우조선해양의 올바른 매각을 위한 거제범시민대책위 집회 현장 ⓒ연합뉴스
    이런 가운데 16일에는 공정위가 오는 26일 전원회의를 열고 한화와 대우조선에 대한 기업결합을 심의해 무조건 승인할 것이라는 보도가 나왔다. 공정위는 곤란한 상황에 맞닥뜨리게 됐다.

    공정위는 해명자료를 내고 "한화와 대우조선 기업결합 건의 심의 일정과 심사보고서상 시정방안 내용 등은 아직 확정된 바 없다"고 밝혔다. 하지만 공정위 입장에선 26일 전원회의를 열더라도 기업 압박에 못 이겨 전원회의를 연 모양새가 되고, 이달 내에 전원회의를 열지 않더라도 '늑장 심사'라는 비판을 피하기는 어렵게 됐다.

    문제는 앞으로다. 공정위가 이달 내 '무조건 승인'이라는 결과를 내놓는다면 이번 사례가 선례로 남아, 앞으로 공정위 심사관이 기업결합을 심사하는데 제약을 받을 수밖에 없다. 기업결합 과정에서 불거진 공정위와 한화의 진실공방이 일단락되지 않은 상황에서 기업이 여론몰이에 성공할 경우 거꾸로 공정위가 기업과 여론의 눈치를 봐야하는 상황이 생길 수 있는 것이다.

    최근 공정위가 조사를 진행 중인, 아파트 빌트인 가구입찰 담합 혐의를 받는 한샘·에넥스·넥시스·우아미 등 8개 가구업체에 대해 대검찰청이 선제적으로 고발을 요청한 것도 뒷말을 낳고 있다.

    공정거래법 위반 사건은 전속고발권을 가진 공정위의 고발이 있어야만 검찰이 공소를 제기할 수 있는데, 이례적으로 공정위가 조사 중인 사건에 대해 검찰이 직접 수사를 진행해 고발을 요청했다. 공정거래법 위반과 관련한 한국타이어 수사 때도 검찰이 공정위에 고발을 요청하는 등 검찰이 공정거래 사건에 적극적인 수사에 임하면서 공정위의 전속고발권이 무용지물이 되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한편 공정위는 지난 14일부터 기업 현장조사 시 기업의 방어권을 보장하는 내용의 조사절차규칙, 사전절차규칙 등을 시행한다고 밝혔으며, 지난해 발주한 '전속고발권 및 고발요청제도 개선 방안에 관한 연구' 용역 결과도 조만간 나올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