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부, 회계서류 제출 안 한 42개 노조 조사 착수'현대판 음서제' 고용세습도 점검 방침… 노동개혁 박차금속노조, 내달 말 총파업 예고… 근로시간개편 철회 등 요구내년도 최저임금 '도화선'되나… 양대노총, 공익위원 보이콧 군불
  • ▲ 이정식 노동부 장관.ⓒ연합뉴스
    ▲ 이정식 노동부 장관.ⓒ연합뉴스
    노·정 간 전운이 감돌고 있다. 정부가 노동조합의 불법행위 근절에 착수한 가운데 노동계도 대(對)정부 투쟁 강도를 높여가는 모양새다.

    고용노동부는 20일 회계서류 비치·보존 여부가 확인되지 않은 총 42개 노조에 대해 21일부터 2주간 현장 행정조사를 벌인다고 밝혔다. 조사대상 노조는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과 소속 36개 노조, 한국노동조합총연맹(한국노총)과 소속 3개 노조, 미가맹 노조 1개 등이다.

    노동부는 지난 2월부터 조합원 수 1000명 이상인 334개 노조에 대해 회계를 자율점검한 뒤 그 결과와 증빙자료를 제출하도록 했다. 하지만 52개 노조가 자료를 제출하지 않았다. 이들 노조는 노조 자주성 침해 등을 이유로 자료 제출을 거부했다. 노동 당국은 이들 노조가 자료 제출을 명시한 노조법 제27조를 어겼다고 보고 과태료를 부과한다는 방침이다. 9개 노조에 대해선 비치·보존 의무 위반(노조법 제14조)으로 과태료 부과 절차가 진행 중이다. 1곳은 임의 현장조사에서 뒤늦게 비치가 확인됐다.

    이번 현장 행정조사는 나머지 42개 노조를 대상으로 이뤄진다. 노동부는 현장조사 결과 회계서류 비치·보존 의무를 어긴 노조에 과태료 100만 원을 부과할 계획이다.

    노동부는 현장 조사를 거부하거나 방해하면 법에 따라 엄정 대처한다는 원칙이다. 질서위반행위규제법에 따라 500만 원 이하의 과태료를 부과하고, 폭행·협박 등이 있을 경우에는 공무집행방해죄를 적용해 처벌한다는 원칙이다.

    윤석열 정부는 소위 '한국병'을 치유하는 방안의 하나로 노동개혁에 드라이브를 걸고 있다. 노조 회계 투명성 강화, 고용 세습 근절, 근로시간 제도 개편, 임금체계 개편 등을 추진하고 있다.

    노동부가 '현대판 음서제'로 불리는 노조의 고용세습을 막고자 공정채용법 입법을 추진하는 것도 이런 이유다. 노동부는 최근 단체협약에 장기근속 직원의 자녀를 우선 채용하도록 고용 세습 조항을 유지한 민주노총 전국금속노조와 금속노조 위원장, 기아자동차 대표이사 등을 입건했다. 이정식 노동부 장관은 "노조 회계 투명성 강화와 공정한 채용 질서 확립은 노동 개혁의 출발점"이라고 강조했다.
  • ▲ 전국금속노동조합 조합원들이 18일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계단에서 노동정책 관련 대정부 요구안을 발표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연합뉴스
    ▲ 전국금속노동조합 조합원들이 18일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계단에서 노동정책 관련 대정부 요구안을 발표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연합뉴스
    노동계도 대정부 투쟁 수위를 높여나가고 있다. 금속노조는 지난 19일 보도자료를 내고 다음 달 31일 총파업을 예고했다. 금속노조는 "(전날) 제7차 투쟁본부대표자 회의에서 총파업 당일 전국에서 조합원들이 주·야 4시간 이상 파업을 전개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이어 "윤석열 정권이 총파업 투쟁을 마주하기 원치 않는다면 시한(5월 4일)까지 노조 요구안을 모두 수용한다는 답변과 계획을 내놓으라"고 촉구했다.

    금속노조는 18일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노동부 장관 경질 △노조 탄압 전면 중단 △근로시간 확대 입법안 철회 등을 요구했다.
  • ▲ 지난 18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최저임금위원회 제1차 전원회의를 앞두고 양대노총 관계자들이 권순원 공익위원 자리에 피켓을 붙이고 있다.ⓒ뉴시스
    ▲ 지난 18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최저임금위원회 제1차 전원회의를 앞두고 양대노총 관계자들이 권순원 공익위원 자리에 피켓을 붙이고 있다.ⓒ뉴시스
    일각에선 내년도 최저임금 결정을 앞두고 노·정 갈등이 최고조에 이를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노동계는 실질임금이 하락했다며 내년도 최저임금으로 올해(9620원)보다 24.7% 오른 시급 1만2000원을 요구한다. 반면 경영계는 경기둔화와 지급능력 부족을 이유로 '동결'을 주장한다. 올해 최저임금 심의가 어느 때보다 험난할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노동계가 최저임금 이슈를 대정부 투쟁 수위를 높이는 기폭제로 활용할 공산이 적잖다.

    노동계가 이미 군불 지피기에 들어갔다는 의견도 나온다. 지난 18일 열릴 예정이던 최저임금위원회 제1차 전원회의가 유례없는 공익위원 불참으로 파행한 가운데 빌미를 노동계가 제공했다는 견해가 없잖다. 이날 양대 노총 조합원 수십 명은 '최저임금 대폭 인상'을 외치며 회의장에서 시위를 벌였다. 이들은 특히 공익위원 간사인 권순원 숙명여대 경영학부 교수의 사퇴를 요구했다. 최저임금위가 최근 2년 연속으로 경영계에 유리하게 캐스팅보트(결정표)를 행사했는데 그 중심에 권 교수가 있다는 주장이다. 공교롭게도 권 교수는 '주 52시간제' 개편안의 밑그림을 그린 '미래노동시장연구회' 좌장도 맡고 있어 노동계로부터 미운털이 박힌 상태다.

    이날 박준식 위원장은 노동계가 권 공익위원에 대한 보이콧을 멈추지 않자 사무국 직원을 통해 퇴장을 요구했지만, 양대 노총 조합원들은 거세게 항의했고 결국 회의는 파행했다. 최저임금위는 이날 보도참고자료를 내고 "지난 2015년 공정한 심의를 위해 위원들 말고는 근로자·사용자 측 각 6명씩만 배석하기로 합의했으나 시위자들이 회의장에 진입해 특정 공익위원의 사퇴를 요구하며 시위를 벌였다"며 "여러 차례 퇴장 등 장내 정리 요청에도 응하지 않고, 이를 논의하기 위한 위원장의 사전 협의 요청에도 근로자위원 측이 응하지 않고 퇴장했다"고 부연했다.

    하지만 노동계는 책임이 박 위원장에게 있다는 태도다. 근로자위원 간사인 류기섭 한국노총 사무총장은 "위원장이 노동자들의 의사전달 기회조차 박탈하고, 직무를 유기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