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심, 신라면 가격 인하 발표… 秋부총리 인하 발언 9일 만앞서 맥주 가격·대중교통요금 등 정부 시장개입 이어져52개 서민품목 관리한 'MB물가' 소환… 물가 더 오르는 부작용경제전문가 "정부 가격 통제로 이익 줄면 기업 투자 위축" 지적
  • ▲ 대형마트에 진열된 라면 ⓒ연합뉴스
    ▲ 대형마트에 진열된 라면 ⓒ연합뉴스
    라면업계 1위 농심이 대표제품 신라면의 가격을 인하하기로 하면서 '관치' 논란이 불거지고 있다. 은행들의 이자장사 논란, 대중교통요금 인상 유예 등 정부가 시장에 적극 개입하면서 기업들의 투자까지 위축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농심은 다음 달 1일부터 신라면의 출고가를 4.5%, 새우깡은 6.9%로 인하한다. 소매점 기준 신라면은 한 봉지당 50원, 새우깡은 100원 낮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지난 18일 라면업계를 향해 "기업들이 밀 가격을 내린 부분에 맞춰 적정하게 내렸으면 좋겠다"고 발언한 이후 9일만이다. 농심에 이어 삼양식품과 오뚜기도 다음 달 주요 제품 가격을 내릴 것으로 보인다.

    농림축산식품부는 지난 26일 제분업계를 만나 밀가루 가격 인하를 요청했다. 제분업계는 다음 달부터 가격을 인하하는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식품업계에 대해 정부가 전방위적인 압박에 나선 것이다. 

    정부가 이런 압박에 나선 것은 5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3.3%를 기록하며 하향세를 보였지만, 먹을거리 물가는 여전히 높기 때문이다. 식품물가 상승률은 5%였으며 라면과 빵, 과자 등 가공식품 물가상승률은 7.3%였다.

    정부가 우리나라 경기 흐름을 '상저하고(上底下高)'로 전망한 만큼 시점상 하반기가 시작되는 7월부터는 물가안정 기조에서 경기부양으로 정책 전환을 시도해야 하는 타이밍이다. 이런 상황에 물가에 발목을 잡혀 경기부양으로의 정책 기조 전환 시기를 놓쳐서는 곤란하다는 계산이 추 부총리의 공개 압박으로 이어졌다는 분석이다.

    추 부총리가 라면가격 인하를 공개 압박하면서 "한국개발연구원(KDI)이 경기가 바닥을 확인하고 회복 조짐이 보인다고 얘기했다. 경제적 어려움이 터널 끝자락을 향해 가고 있다"고 발언한 것도 이런 맥락으로 읽힌다.
  • ▲ 주요 은행 자동화기기(ATM) ⓒ연합뉴스
    ▲ 주요 은행 자동화기기(ATM) ⓒ연합뉴스
    다만 이런 정부의 행보가 이번 일회성에 그치지 않는다는 점이 문제로 거론된다. 지난 4월 주세 인상 예고를 앞두고 국내 맥주회사들이 출고가를 인상할 것이라는 전망이 쏟아지자, 정부가 나서서 맥주 출고가 동결을 공개 압박했다. 같은 시기 서울시가 대중교통요금 인상을 예고하자, 정부가 지방자치단체에 올 상반기에는 공공요금 인상을 자제해달라고 공개적으로 당부하기도 했다.

    은행권도 비슷한 처지다. 올 초 윤석열 대통령이 "은행의 돈잔치로 인해 국민의 위화감이 생기지 않도록 관련 대책을 마련하라"고 주문한 이후, 공정거래위원회는 지난 2월 말 신한·KB국민·하나·우리·NH농협·IBK기업은행 등 6대 은행에 현장조사를 나갔으며 지난 12일에도 농협과 기업은행을 제외한 4대 은행에 대해 2차 현장조사를 진행했다.

    이에 대해 일각에서는 이명박(MB) 정부 시절 서민생활과 밀접한 품목 52개를 선정해 관리했던, 이른바 'MB 물가'가 떠오른다고 지적한다. 당시 밀가루와 라면, 배추 등 먹을거리와 대중교통요금, 학원 비 등의 서비스 요금을 관리했지만, 2011년 MB물가지수 품목 가격은 3년새 20%쯤이나 뛰었다. 같은 기간 소비자물가지수가 12% 상승한 것에 비하면 더 올라 정부의 물가관리가 오히려 부작용을 일으켰다는 비판이 쏟아졌다.

    이런 관치 물가관리는 기업들의 투자를 위축할 수도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추 부총리는 연일 대기업과 중견기업 등 기업인들을 만나며 투자를 독려하고 있지만, 정부의 가격인하 압박이 오히려 투자 여력을 위축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이병태 카이스트 경영공학과 교수는 "윤석열 정부는 민간을 중심으로 경제정책을 운용하겠다고 했는데, 행보를 보면 관치의 유혹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며 "최근 밀 가격이나 농산물 가격이 내려서 업계들이 가격인하 여력이 있지만, 이를 정부 압력으로 하는 것은 옳지 않다. 이는 주주들의 권익을 침해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어 "정부가 가격을 통제하면 기업들의 이익을 낮추게 되고, 투자를 덜 하게 된다. 일자리가 줄어드는 것도 한 부작용"이라며 "은행의 경우에도 은행이 공공재도 아닌데 (압박했다.) 이것이 윤석열 대통령이 말한 기업의 자유인지 의문"이라고 꼬집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