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체등급분류 게임물 통합 사후관리 시스템 비위 적발수십억 '혈세' 투입 불구 '폐쇄적' 운영 시스템 등 도마위강도 높은 조직 개편, 인적 쇄신 절실... "과오 되풀이해선 안돼"
  • '과이불개(過而不改 )'

    과이불개는 '잘못을 하고도 고치지 않는다'는 뜻이다. 2000년전 춘추전국시대의 공자가 제자들과 나눈 대화를 책으로 엮은 논어에 등장하는 말이다. 이는 지난해 전국의 대학교수들이 설문조사에서 1위로 뽑은 사자성어로 주목 받았다.

    게임물관리위원회(이하 게임위)를 통해 과이불개는 다시 회자되는 분위기다. 게임위는 게임물 등급에 관한 사안을 심의·의결하기 위해 설립된 문화체육관광부 산하의 기타공공기관이다. 이런 곳에서 수억원대 전산망 구축 비리가 적발된 것.

    앞서 게임위는 2016년 '자체등급분류 게임물 통합 사후관리 시스템' 구축을 위해 40억~50억원 예산을 쏟아부었다. 3년 뒤인 2019년 외주 업체를 통해 전산망을 납품받았지만, 시스템 중 일부가 정상 작동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게임위는 '배상 요청'이 아닌, '대금 지급'이라는 수상한 결정을 하면서 논란이 일었다.

    해당 의혹은 지난해 10월 블루 아카이브를 비롯한 게임위의 등급분류 상향 조치로 수면 위로 떠올랐다. 당시 일부 모바일게임 이용자들은 불공정·불투명하게 이뤄졌다는 부분에 대해 집단 민원을 제기했다. 이에 이상헌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국민감사청구를 요청, 감사원은 12월 조사에 착수했다.

    감사원은 조사를 통해 게임위가 사업 검수 및 감리를 허위로 처리해 최소 6억 6600만원 이상의 손해가 발생했다고 발표했다. 자체등급 분류시스템에 외부 업체에 납품이 확인되지 않은 물품과 용역 대금을 지급한 사실도 밝혀졌다. 특히 게임위 소속 산하 3개 본부의 본부장 전원이 전산망 구축 비리 의혹에 연루된 사실이 드러나면서 충격을 더하고 있다. 

    게임 업계에서는 수십억원의 혈세를 날린 게임위의 폐쇄적 운영 시스템과 구조적 문제를 지적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회의록을 공개하지 않으면서 부실심의 등 불공정하다는 빈축을 샀다. 4년전 비위 행위 조짐에도 가려진 채 운영될 수 있었던 허점도 여기에 있다.

    게임위는 조직의 인적 쇄신과 함께 향후 재발방지책도 마련한다는 계획이지만, 이를 지켜보는 시선은 곱지 않다. 전문가들은 게임위의 근본적이고 중요한 역할인 '심의'와 '사후 관리'를 돌이켜봐야 한다고 강조한다. 정부 기관으로서 심의위원의 전문성, 객관적이고 공정한 심의 과정을 수립해야 한다는 것.

    글로벌 경기 침체 여파로 한국은행은 올해 국내 경제 성장률을 1.4%에 그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소비심리 위축으로 국내 게임 시장 성장률도 두 자릿수에 한 자릿수로 뚝 떨어졌다. 게임사들의 실적 역시 내리막길을 걸으며 주가가 크게 빠진 상태다.

    국내 중소기업들이 올해의 경영환경을 대표하는 사자성어로 '여리박빙(如履薄氷)'을 선정한 것도 이 같은 이유에서다. 살얼음을 밟고 있는 것처럼 아슬아슬하고 위험한 상태에 놓여 있다는 뜻이다. 게임위가 과이불개의 과오를 되풀이할 경우 누구보다 살얼음판을 걷고 있는 게임사를 사지(死地)로 몰아넣는 것임을 명심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