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U-일본 정상회담서 합의… EU "IAEA 종합보고서 환영"지속적 모니터링·투명한 정보공개 전제로 수입규제 철폐우리 정부 "수입규제 지속… 환경요인 복원 일본이 증명해야"CPTPP 가입 변수 여전… 작년 대만, 가입 위해 10년만에 수입 허용
  • ▲ 샤를 미셸 EU 상임의장,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이 13일(현지시간) EU-일본 정상회담 공동 기자회견 뒤 기념사진을 촬영하고 있다.ⓒ연합뉴스
    ▲ 샤를 미셸 EU 상임의장,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이 13일(현지시간) EU-일본 정상회담 공동 기자회견 뒤 기념사진을 촬영하고 있다.ⓒ연합뉴스
    일본 후쿠시마(福島) 제1원자력발전소 오염수(일본 정부 명칭 '처리수')의 해양 방류를 앞두고 국내 수산물 안전에 대한 경각심이 고조되는 가운데 유럽연합(EU)이 2011년 원전 폭발 사고 이후 막아온 일본산 식품 수입을 허용하기로 해 파장이 주목된다.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과 샤를 미셸 EU 상임의장은 13일(현지시각) 벨기에 브뤼셀에서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와 정상회담을 한 뒤 공동 기자회견에서 "우리는 과학적 증거와 국제원자력기구(IAEA) 평가에 근거해 이번 결정을 내렸다"며 2011년 후쿠시마 원전 폭발 사고 이후 시행해 온 일본산 식품의 수입 규제 철폐를 공식화했다.

    EU-일본 공동성명에는 "EU는 (과학적 증거에 근거해) 지난 4일 IAEA 종합보고서 발표를 환영한다"고 명시했다. 다만 EU 집행위는 따로 낸 보도자료에서 "규제가 해제됐으나 일본 정부의 지속적인 모니터링이 중요하다"면서 "여기에는 오염된 냉각수 방류 장소 인근의 생선, 수산물, 해조류가 포함된다"고 짚었다. 이어 "이들 상품에 삼중수소 등 방사성핵종 존재 여부가 감시돼야 한다. 일본 정부가 모든 결과를 공개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EU 집행부는 이번 규제 철폐와 관련해 27개 회원국과 합의했다고 설명했다. 일본 측은 다음 달 상순쯤 규제가 철폐될 것으로 전망한다. 규제가 풀리면 EU가 후쿠시마현 생선·버섯, 미야기현 죽순 등 10개 현(縣)의 식품을 수입할 때 요구했던 방사성 물질 검사 증명서 제출 의무가 사라진다.

    반면 EU는 일본 측에 EU산 쇠고기 등 농식품에 대한 일본 시장 접근권을 요구한 것으로 전해졌다.
  • ▲ 후쿠시마 원전.ⓒ연합뉴스
    ▲ 후쿠시마 원전.ⓒ연합뉴스
    IAEA가 후쿠시마 오염수 해양 방류 계획을 모니터링한 결과 국제안전기준에 부합한다는 종합보고서를 낸 이후 EU가 민감한 일본산 식품 수입을 허용하면서 글로벌 식품시장에 미칠 파장에 이목이 쏠릴 것으로 보인다.

    미국, 영국 등 주요국에 이어 EU마저 일본산 식품 수입규제를 철폐하기로 하면서 일본 정부로선 우리나라와 중국 등 아직 수입을 금지하는 국가를 상대로 수입 재개 압박 수위를 높일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우리 정부는 2013년 이후 후쿠시마 인근 8개 현의 수산물 수입을 전면 금지하고 있다.

    일본과 가까운 국가 중에선 지난해 2월 대만 정부가 후쿠시마 일대 5개 현 식품수입을 허용한다고 발표했었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수입금지 조처를 내린 지 10년 만이다.

    EU가 일본에 EU산 농산물에 대한 수입을 에둘러 요구했다면, 대만은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 가입을 염두에 두고 일본산 식품 수입을 허용했다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CPTPP는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에서 미국이 탈퇴하자 일본·호주·멕시코 등 나머지 11개국이 2018년 말 출범시킨 다자간 자유무역협정이다. 11개 회원국 만장일치로 가입을 결정하는 가운데 일본이 핵심 구성원으로 참여 중이다.

    대만은 대(對)중국 경제 의존도를 낮추기 위해 미국과의 자유무역협정(FTA)과 CPTPP 가입을 강력히 추진하고 있다. 대만은 2021년 9월 CPTPP 가입을 신청했고 일본은 대만 측에 후쿠시마 식품 수입 허용을 요청했었다.

    2021년 산업연구원이 발표한 'CPTPP 미래와 우리의 대응방안' 보고서에 따르면 코로나19 이전인 2019년 기준 CPTPP 참여 11개국의 국내총생산(GDP)은 전 세계 GDP의 12.8%인 11조2000억 달러, 무역 규모는 세계 무역액의 15.2%인 5조7000억 달러에 달한다. CPTPP에 참여하면 전 세계 인구의 6.6%에 해당하는 5억여 명의 거대 시장이 열리는 셈이다. 대외·수출의존도가 높은 한국으로선 가입이 불가피한 시장이다. CPTPP 회원국에 대한 한국의 수출 비중은 전체 수출의 23.2%를 차지한다.

    우리 정부는 수입규제를 유지한다는 태도다. 방문규 국무조정실장은 지난 7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후쿠시마 오염수 관련 정부 일일 브리핑에서 "수입 규제 조치는 지속한다는 점을 다시 한번 강조한다"고 말했다. 방 실장은 "일본이 세계무역기구(WTO)에 제소한 뒤 최종심에서 우리가 승소한 것은 2011년 폭파 사고로 인한 생태계 변화 등 환경적인 요인을 중하게 봤기 때문"이라며 "저희 논리는 그런 환경적인 요인이 완전히 다 복원되고, 그것을 증명할 것은 상대(일본)측이 증명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때까지는 수입규제가 유지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부연했다.

    한편 우리 정부는 CPTPP 가입과 관련해 지난해 4월15일 대외경제장관회의를 열고 가입 추진계획을 의결했다. 당시 산업통상자원부는 "CPTPP 가입은 TPP 시절부터 8년 이상 검토해 온 과제"라며 "급변하는 글로벌 정세에 대응하고 아태지역 내 안정적인 공급망 구축에 한 걸음 나아간 데 의미가 있다"고 밝혔다. 이어 "농수산업계 등 이해관계자와 지속 소통하면서 국회보고 등 국내 절차를 밟아 가입신청서를 제출하겠다"고 했다.

    해수부는 그동안 CPTPP 가입과 일본 수산물 수입 규제 해제는 별개 문제라는 점을 강조해 왔다. 조승환 해수부 장관은 취임 전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관련 질문을 받고 "CPTPP가 국익을 위해서 어쩔 수 없이 가야 하는 정부 입장에 대해선 이해한다"면서 "하지만 국민 건강·안전과 관련해 후쿠시마 수산물 수입을 허용하는 부분에 대해선 아니라는 생각에 변화가 없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