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버스개혁 20년③]준공영제 장점 불구, 비효율 한계도 뚜렷선진국은 민간자본 활용해 대형화, 효율화 달성영세업체 난립, 차고지 낙후에도 서울시 대책 하세월
  • ▲ 경영참가형 사모펀드인 차파트너스자산운용이 지난해 서울 시내버스 업체인 선진운수를 인수한 뒤 정비장, 기사휴게실, 화장실 등의 시설을 대대적으로 정비한 모습(사진=선진운수 제공)
    ▲ 경영참가형 사모펀드인 차파트너스자산운용이 지난해 서울 시내버스 업체인 선진운수를 인수한 뒤 정비장, 기사휴게실, 화장실 등의 시설을 대대적으로 정비한 모습(사진=선진운수 제공)
    [편집자 주]대한민국 수도 서울에 시내버스 준공영제가 도입된 지 내년이면 20년이 된다. 준공영제 도입 이후 버스 사고 건수가 크게 줄어들었고, 시민들의 서비스 만족도는 눈에 띄게 향상됐다. 서울에서 개혁이 성공하자 대전, 대구, 광주, 부산, 인천 등 전국적으로 준공영제는 확대됐다. 이처럼 시내버스 준공영제는 대한민국 교통 역사에 큰 획을 그었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여러 문제점도 노출됐다. 버스 요금의 정치화, 영세업체 난립 지속, 차고지 낙후화 등 고질적인 문제가 잘 해결되지 않으면서 일각에서는 '준공영제 폐지' 목소리까지 나오고 있다. 이에 뉴데일리는 앞으로 3회에 걸쳐 시내버스 준공영제의 나아갈 길을 살펴보고자 한다.

    준공영제 체제에서 시내버스 회사들은 서울시로부터 성과 평가를 받아야 한다. 하지만 평가 결과가 나빠도 사업에는 큰 지장이 없다. 비교적 적은 금액의 인센티브만 포기하면 되고, 적자보전은 물론 적정 이윤까지 보장을 받기 때문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성과 평가를 대놓고 무시하는 업체들까지 생겨났다. 실제로 2019~2021년 65개 업체의 평가 순위를 살펴보면 몇몇 회사를 빼고 하위 업체들의 순위는 거의 고정돼 있는 형편이다.

    ◆시내버스 업계 대형화 실패하며 효율성 저하

    서울 시내버스 준공영제는 많은 장점에도 불구하고 세월이 흐르면서 한계 또한 뚜렷이 보여주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효율성' 문제다. 준공영제 도입 당시 서울시는 버스업체들의 대형화를 유도해 규모의 경제를 달성하고 경영효율성을 높이겠다는 복안을 갖고 있었으나 실현에 이르지는 못했다.

    반면 런던, 홍콩, 싱가포르 등 버스개혁에 성공한 대도시들은 대형화를 통한 규모의 경제를 달성하고 있다. 준공영 체제인 런던의 경우 17개 업체가 약 9천대의 버스를 운행해 1개 업체당 버스 수가 529대에 달한다. 민영제인 홍콩과 싱가포르도 업체 수가 4~5개에 불과해 1개 업체당 버스 수가 각각 1천180대, 875대에 이른다.

    하지만 2021년 기준 우리나라의 1개 업체당 버스 대수는 113대에 그치고 있다. 500대는커녕 300대 이상 업체도 단 한 곳도 없다. 100대 미만의 영세업체가 30곳으로 거의 절반을 차지하고 있다. 정치적 이유로 버스 요금을 인상하기 어렵다면 서울시가 운영의 묘를 살려 버스업계의 경영효율화를 유도해야 했지만 20년 가까이 별다른 변화가 없는 상황이다.

    ◆"제도 개선으로 경쟁 활성화해야" 지적

    이런 문제점은 이미 10년 전 서울연구원에서 자세히 분석해 대안까지 제시하고 있다. 당시 보고서에서는 "런던과 싱가포르 등의 경우 버스업체의 운영비용을 최적화하기 위해 업체당 500대가량의 차량규모를 유지하도록 버스체계를 개편하고 인센티브 비중을 높여 업체 간 경쟁을 활성화하고 있다"며 "서울의 경우 규모가 영세한 버스업체가 많고 인센티브 제도가 미흡해 운영 효율성을 기대하기 어렵다"고 진단하고 있다.

    이에 대안으로 △적정 버스대수 분석을 통한 적절한 버스규모 유지 △버스업체의 대형화를 통한 적정 규모 조정 및 경영효율성 향상 △규모의 경제 효과를 반영한 표준운송원가 현실화 및 인센티브 제도 개선 △서울시-버스업체 간 협약서 내용의 개편과 정기적인 갱신 등을 제시했다.

    하지만 대안은 현실이 되지 못했다. 그러는 사이 업계에 도덕적 해이가 번져 만년 평가 하위권 업체들이 전체의 20% 이상을 차지하는 비효율이 일상이 됐다. 당초 계획됐던 공영차고지 개발도 이뤄지지 않아 가뜩이나 영세한 업체들이 2~3개 이상의 차고지를 이용하면서 효율성은 더 떨어졌다. 차고지가 여러 곳 나뉘어 있으면 충전, 정비, 보안 등에서 비용은 더 늘어날 수밖에 없다.

    ◆런던, 싱가포르, 홍콩 등은 민간자본이 '메기' 역할

    서울시가 문제 해결에 미온적인 태도를 보인 사이 경영 환경은 조금씩 악화돼 갔다. 공영차고지가 부족한 상황에서 업체들의 소규모 자가 차고지는 주민 기피 시설로 자리잡았고 투자가 제때 이뤄지지 않아 직원들은 열악한 근무환경을 감내해야 했다. 박정호 선진운수 노조위원장은 "아주 질 낮은 식사가 제공되는데 그마저도 시간에 쫓겨 챙겨먹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며 "정비 직원들도 천막 하나가 없어서 한여름에도 땡볕에서, 비 오는 날은 비를 맞으며 일을 해왔다"고 말했다.

    비효율이 누적돼 왔지만 누구도 나서지 못하는 상황에서 민간 자본이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2020년 문재인 정부 당시 민간투자사업의 대상이 '열거주의'에서 '포괄주의'로 바뀌면서 법에서 금지된 것 빼고는 모두 민간투자가 가능해졌다. 2019년 설립된 차파트너스자산운용은 영세업체들이 난립한 국내 버스시장을 특히 주목했다. 선진국 대도시의 경우 사모펀드(PEF)의 경영참여로 버스시장의 대형화, 효율화가 진행됐는데 우리나라도 민간자본이 충분히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으로 봤다.

    2021년 기준 준공영제와 민영제로 버스를 운영하는 국가에서 펀드가 운용하는 버스대수는 홍콩 28%(1천647대), 런던 25%(2천265대), 싱가포르 13%(450대) 등을 차지하고 있다. 이들 나라 외에도 KKR(미국), EQT(스웨덴), Vauban(프랑스), OP Trust(캐나다), Polaris(덴마크), Templewater(홍콩) 등 유수의 사모펀드들이 북미, 유럽, 아시아 등지에서 시내버스 등 버스업체에 투자해 효율화를 진행 중이다.

    ◆"규모의 경제 달성해 공적자금 유치하면 윈-윈"

    차파트너스는 현재 서울, 인천, 대전 3개 지역에서 1천690대의 버스를 확보했다. 시장점유율은 서울 13%, 인천 30%, 대전 14%에 달한다. 만년 하위권 회사, 경영승계 포기 회사 등은 회사 경영에 애로를 겪던 차에 민간자본의 투자로 매각차익 실현이 가능해지자 고심 끝에 경영권을 내놓았다. 차파트너스의 김석원 상무는 "버스업계의 대형화, 투명화, 효율화가 진행되면 요금 인상과는 별도로 서울시의 재정지원금을 크게 낮출 수 있어 투자자와 시민에게 모두 이익이 될 수 있다"며 "시설개선, 비용절감 등 정부가 하기 어려운 일을 수행하는 대가로 펀드가 적정 수준의 보수와 이윤을 배당 형태로 가져가는 것은 매우 자연스럽고 합리적인 과정"이라고 설명했다.

    김 상무는 "일각에서 '고배당 먹튀'라고 공격을 하는데 이는 법에서 엄연히 인정하고 있는 민간투자의 존재 이유와 필요성을 원천적으로 부인하는 사고방식"이라며 "우리가 하려는 일은 회사를 망가뜨리려는 것이 아니라 회사와 업계의 비효율을 제거해 가치를 높이려는 것"이라고 항변했다. 차파트너스는 버스 운영 규모를 더 확대해 규모의 경제를 확실히 달성하면 국민연금 등 공적자금 유치나 주식시장 상장이 가능해져 재정지원금 '먹튀' 논란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사모펀드의 버스회사 인수를 부정적으로 보던 운전직 및 정비직 직원들은 최근 생각을 많이 바꿨다고 이야기한다. 선진운수 박정호 노조위원장은 "회사 주인이 바뀐 뒤로 기사 휴게실, 화장실, 정비장 등의 시설이 싹 현대식으로 바뀌었다"며 "식사의 질도 크게 개선돼 직원들이 매우 만족하고 있다"고 전했다. 박 위원장은 "배차방식이나 경영방식이 과거보다 합리적이고 직원들의 건의사항도 진심으로 들어준다는 게 느껴진다"며 "처음에는 크게 싸울 각오로 경영진을 만났는데 지금은 상생하는 방향으로 마음을 바꿨다"고 덧붙였다.

    ◆"주민과 상생하는 차고지 개발 필요"

    자본이 풍부한 사모펀드에게도 '차고지'는 해결이 쉽지 않은 문제다. 인건비(73%)와 연료비(11%), 감가상각비(5%) 등 고정비용이 거의 90%를 차지하는 상황에서 대형화를 통한 효율화는 일정 정도 한계를 지닐 수밖에 없다. 효율성이 가장 떨어지는 차고지 문제가 해결이 돼야 진정한 효율화가 가능하다. 

    가장 좋은 방안은 구역별 대형 공영차고지가 충분히 확보되는 것이다. 충전, 정비, 주차가 한 곳에서 해결돼야 비효율이 발생하지 않기 때문이다. 서울시는 준공영제 도입 발표 당시 공영차고지 확대를 통한 차고지 집중을 공표했지만 예산 등의 이유로 현재 지켜지지 않고 있다.

    해외에서는 수직 복합개발로 난제를 해결하고 있다. 독일 뮌헨의 경우 '친환경 수직복합 모빌리티 에너지허브'를 구축해 전기버스 200대의 충전과 330대의 주차가 가능토록 했다. 중국 선전에서도 지상 10층, 지하 1층의 초대형 수직복합 차고지를 조성해 660대의 전기버스 충전이 가능한 시설을 마련 중에 있다. 이는 막대한 자본이 필요하다는 점에서 민간자본 단독으로는 투자가 쉽지 않고 수소차 등 미래 모빌리티 환경을 고려한 지자체나 중앙정부 차원의 투자가 함께 해야 가능한 사업이다.

    김 상무는 "신규 차고지 건설의 경우 현실적인 어려움이 많기 때문에 일단 기존 차고지를 최대한 활용할 수 있는 방안이 필요하다"며 "수직복합 개발을 통해 지역 주민들에게 주차 및 충전 서비스, 상업·편의시설 서비스를 제공하면서 버스 차고지로도 활용하는 방안이 현재로서는 가장 합리적인 방안인 것 같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