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도성장 견인 모델 망가져 일본처럼 장기침체 빠질 수도""SOC·부동산 과잉투자 효과 떨어지고 지방정부 부채만 쌓여""중진국 졸업 못하고 주저앉을 수도…국가주도경제에서 벗어나야"우리정부 "국내금융사, 中부동산 익스포저 4천억원…필요시 조치"
  • ▲ 헝다그룹이 지은 장쑤성 화이안의 아파트 단지.ⓒ연합뉴스
    ▲ 헝다그룹이 지은 장쑤성 화이안의 아파트 단지.ⓒ연합뉴스
    '세계의 공장' 역할을 하며 수십 년간 고속성장을 이어온 중국 경제가 급격한 경기 둔화를 맞고 있으며, 그동안 성장을 이끌었던 부동산 건설 위주의 성장모델이 더는 효과를 내기 어렵게 됐다고 미국 일간 월스트리트저널(WSJ)이 진단했다.

    WSJ은 20일(현지 시각) '중국의 40년 호황이 끝났다'는 제목의 기사에서 "중국을 빈곤에서 벗어나 대국으로 이끈 경제 모델이 망가진 것으로 보인다"며 "위험 신호가 온천지에 널렸다"고 보도했다.

    중국 정부가 부동산 개발과 사회간접자본(SOC) 확충에 막대한 자본을 쏟아부어 경제 도약을 이뤘지만, 중앙의 경기부양 효과가 갈수록 떨어지고 있고 심각한 비효율과 부채 문제가 불거지면서 통제 불능 수준으로 치닫고 있다는 해설기사를 내놨다.

    WSJ은 "중국 일부 지역은 사용률이 낮은 교량과 공항을 떠안았고 아파트 수백만 채가 미분양됐으며 투자 수익률은 급감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중국은 1978년 덩샤오핑(鄧小平) 전 중국 주석이 개혁·개방의 문을 연 후 지난 수십 년간 고속성장을 이어왔다. 한때 세계 최빈국 중 하나였던 중국은 급기야 세계 2위 경제국이 돼 미국의 패권을 위협하는 위치에 올랐다. 고속성장기 중국의 성장에 불쏘시개 역할을 한 게 바로 부동산 개발과 기반시설 건설이었다. 이 기간 중국은 매년 국내총생산(GDP)의 44%쯤을 부동산 투자와 고속도로, 공항, 발전소 등 SOC 건설에 투자했다. 이는 전 세계 평균(25%)을 크게 웃돌았다.

    문제는 지난 2015년 중국이 6.9% 성장하며 '바오치'(保七·7%대 성장률) 시대를 마감한 이후 중국 경제의 성장엔진이 빠르게 식어가고 있다는 점이다. 중국 정부는 지난해 '양회(兩會·전국인민대표대회 및 중국인민정치협상회의)에서 경제성장률 목표를 '5.5% 안팎'으로 밝혔고 올해는 30여 년 만에 가장 낮은 '5% 안팎'으로 제시했다. 사실상 중국 경제성장률의 마지노선처럼 여겨졌던 '바오류(保六·6%대 성장률)'가 막을 내린 셈이다. 6%대 성장은 중국 실물경제 하락의 중요한 방어선이자, 시진핑(習近平) 주석이 약속한 전면적 '샤오캉 사회(중산층 사회)' 실현을 위한 최소 성장지표로 통한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지난달 25일 발표한 세계경제 전망에서 올해 중국의 성장률 전망치를 지난 4월과 같은 5.2%로 유지했다. 하지만 IMF는 앞으로 수년간 중국의 GDP 성장률이 4% 미만에 머물 것으로 보고 있다. 글로벌 투자은행(IB) JP모건체이스는 지난 15일(현지 시각) 내놓은 보고서에서 올해 중국의 성장률 전망치를 기존 6.4%에서 4.8%로 대폭 내렸다. 영국 컨설팅업체 캐피털 이코노믹스는 2030년에는 중국 경제성장률이 연 2% 내외로 떨어질 것이란 전망을 내놓기도 했다. WSJ은 이런 예측이 현실화할 경우 중국은 중진국을 '졸업'하지 못한 채 주저앉게 될 것이라고 짚었다.

    WSJ은 중국의 경제 성장이 둔화하는 가운데 과잉·고속 성장의 폐단은 명확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지방 정부를 중심으로 과잉·중복 투자가 이뤄지면서경제효과는 마땅찮은데 부채는 눈덩이처럼 쌓이는 현상이 나타났다는 것이다.
  • ▲ 중국 소비자 물가지수 동향.ⓒ연합뉴스
    ▲ 중국 소비자 물가지수 동향.ⓒ연합뉴스
    WSJ의 이런 분석은 최근 디플레이션(수요 부진으로 인한 경기침체) 우려 속에 중국 최대 부동산 개발기업 '비구이위안'(碧桂園·컨트리가든)의 디폴트(채무불이행) 사태로 불거진 부동산 거품 논란의 연장선에 있다.

    WSJ은 지난달 30일(현지 시각) 중국 전역에 디플레이션 징후가 갈수록 뚜렷해지고 있다며 철강, 시멘트, 화학제품 등 중국 공장이 만들어 내는 각종 제품은 가격이 내림세이고, 소비지출마저 가라앉고 있다고 보도했다. 중국이 코로나19 시기 서구의 제품 수요로 수출이 급증하며 성장세를 이어갔지만, 엔데믹(풍토병 단계) 이후 수요 감소가 과잉생산으로 이어지면서 가격 하락이 거세지고 있다고 WSJ은 분석했다.

    많은 경제전문가는 '세계의 공장'인 중국의 수출이 좀처럼 살아나지 못하고 안으로는 부동산시장 거품에 대한 우려가 커지면서 중국의 모멘텀(성장 추진력)이 약화하고 있다고 평가한다. 일각에선 이런 모습이 '잃어버린 30년'이라 불리는 일본의 경기침체 상황과 놀라울 정도로 닮았다고 경고한다. 대규모 건설 붐으로 호황을 누렸던 일본은 1990년대 주식과 부동산 시장의 버블(거품)이 붕괴하면서 기업과 가계가 빚을 갚기 위해 지출을 줄이고, 위축된 소비는 다시 생산과 고용을 악화시키는 악순환에 빠졌다.

    경제학자들은 중국이 1인당 GDP를 1달러만큼 끌어올리는 데 필요한 투자 규모가 고속성장기인 1990년대에는 1인당 3달러, 10년 전에는 5달러 미만이었지만, 이제는 9달러까지 치솟은 상태라고 추산했다.

    WSJ을 비롯한 서방 경제전문가들은 중국이 국가 주도 경제에서 벗어나 내수와 서비스 산업을 진작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하고 있다. 중국 지방정부가 경기 부양을 위해 과거와 같은 기반시설 투자에 의존하는 것이 효과는 적고 리스크는 키울 수 있다고 경고하는 것이다.
  • ▲ 추경호 부총리 주재 거시경제·금융현안 간담회.ⓒ연합뉴스
    ▲ 추경호 부총리 주재 거시경제·금융현안 간담회.ⓒ연합뉴스
    한편 우리 정부는 최근 중국의 부동산시장 불안과 관련해 국내 금융사의 익스포저(위험 노출액)는 4000억 원 규모라며 당장은 영향이 제한적이라고 20일 밝혔다.

    정부는 이날 서울 은행연합회관에서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과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 김주현 금융위원장, 이복현 금융감독원장, 최상목 경제수석이 참석한 가운데 거시경제·금융현안 간담회를 열고 최근 경제현안을 점검했다.

    이들은 중국 부동산 부문의 불안이 국내에 미칠 영향은 아직 제한적이라고 진단했다. 다만 미국 국채시장의 변동성 확대 등 글로벌 금융시장의 불확실성이 여전히 높은 만큼 범정부 경제상황 합동점검반을 통해 주요 위험요인을 실시간 모니터링하고, 필요한 경우 신속히 시장 안정화 조치를 시행하겠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