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헨 살인적인 인플레에 시달려… JP모건 "연말 물가상승률 190% 전망"대선 경선서 우파 후보 돌풍… 좌파 정권 경제위기에 대한 국민 분노 평가우리에게도 낯설지 않은 모습… 文정부·코로나 사태 겪으며 나랏빚 '급증'野, 난방비→수해→오염수 추경 주장… 추경 남발에 이자만 5년간 115兆 물어야
  • ▲ 나랏빚.ⓒ연합뉴스
    ▲ 나랏빚.ⓒ연합뉴스
    야당이 일본 후쿠시마(福島) 제1원자력발전소 오염수(일본 정부 명칭 '처리수') 해양 방류에 따른 수산업계 지원을 위해 또다시 추가경정예산(추경) 편성을 주장하고 나섰다. 이런 가운데 좌파 포퓰리즘(대중영합주의)의 집권당이 이끄는 아르헨티나가 올해 안에 190%대의 살인적인 물가 상승률을 보일 거라는 전망과 함께 전국 곳곳에서 상점 약탈 등의 사회불안이 고조되고 있어 이를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28일 외신을 종합하면 오는 10월22일 아르헨티나 대선을 앞두고 유력 후보들이 앞다퉈 경제난·외환 위기 타개를 공약으로 내세운 가운데 야권 후보인 '진보자유'의 하비에르 밀레이(52) 하원 의원이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밀레이 후보는 지난 14일(현지시각) 치러진 대선 예비투표(경선)에서 총 711만 표를 얻어 전체 득표율 30.04%로 1위를 차지했다. 집권 여당 '나라를 위한 연합'의 후보 세르조 마사 현 경제부 장관(507만 표)보다 200만 표를 더 받았다. 제1야당 '변화를 위한 함께' 후보인 패트리샤 불리치 전 안보 장관(402만 표)을 크게 앞섰다.

    경제학자이자 라디오 진행자 출신인 밀레이는 2년 전 정치 문외한 상태로 국회의원에 당선돼 유력 야권 후보로 급부상한 인물이다. 그는 '극우 무정부 자본주의자'로 불린다. 밀레이는 선거 기간에 전기톱을 든 자신의 상징인형을 만들어 홍보에 활용했는데 "과도한 정부 지출을 톱으로 과감히 잘라내겠다"는 소위 '전기톱 계획'을 내세워 표몰이에 나섰다. 미국 유력 일간지 워싱턴포스트(WP)는 밀레이를 '아르헨티나의 트럼프'라고 묘사했다.

    현 알베르토 페르난데스 아르헨티나 대통령은 온건 성향의 페론주의자로 분류된다. 이른바 '페론주의'(페로니즘)는 남미의 좌파 포퓰리즘으로 불린다. 아르헨티나에서 1946~1955년, 1973~1974년 집권한 후안 도밍고 페론 대통령과 부인 에바 페론이 내세운 포퓰리즘 성향의 경제 사회정책을 통칭한다. 외국 자본 배제, 산업 국유화, 공공의료·대중교통 등 공공지출과 복지 확대, 임금 인상을 통한 노동자 수입 증대 등으로 요약된다. 아르헨티나는 비옥한 토지와 목축업을 기반으로 1890~1920년대 미국·호주와 1인당 국내총생산(GDP) 규모가 엇비슷했던, 세계 10대 경제 대국으로 꼽혔다. 그러나 페론주의자들이 현금 살포식 복지정책을 남발하면서 아르헨티나는 한 세기 만에 경제적 수렁에 빠졌다.

    현 페르난데스 대통령도 코로나19 사태가 터지자 1인당 1만 페소 지급 같은 정부 보조금과 국민의 절반을 대상으로 하는 무상 공공의료 등의 포퓰리즘 정책으로 확장적 재정운용 기조를 유지했다.

    현 정부의 실권자로 불리는 부통령 크리스티나 페르난데스 키르치네르는 뛰어난 언변과 능숙한 대인관계로 2010년 사망한 남편 네스토르 키르치네르 전 대통령에 이어 대통령을 지낸 인물이다. 그는 지난해 18세 이상 국민에게 50달러를 '기본소득'으로 주는 법안을 추진하기도 했다.

    1976~1983년 군부 독재기간을 제외하고 페론주의자가 권력을 독식한 아르헨티나는 지독한 인플레이션(물가 상승)에 상점 약탈 등 극심한 사회불안 양상을 보이고 있다. 아르헨티나의 지난 6월 소비자물가지수(CPI) 상승률은 116%다. 2월 이후 세 자릿수 상승률을 이어가고 있다. 글로벌 투자은행(IB) JP모건체이스는 지난 23일(현지시각) 아르헨티나 경제 관련 보고서에서 올해 말 아르헨티나의 물가상승률 전망치를 기존의 150%에서 190%로 40%포인트(p)나 올려잡았다. 같은 날 아르헨티나 현지 일간지 라나시온과 텔람통신 등은 21~22일 상점 강·절도 사건이 전국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했다고 전했다. 와인으로 유명한 서부 멘도사와 수도 부에노스아이레스 외곽에 이르기까지 곳곳에서 150여 건의 상점 약탈이 발생한 것으로 정부가 파악했다는 내용이다.

    현지 소셜미디어에는 괴한들이 슈퍼마켓 등에 침입해 물건을 약탈해 가는 모습과 괴한들을 향해 총을 쏘는 가게 주인의 모습 등이 올라와 광범위하게 퍼지고 있다.

    설상가상 화폐인 페소 가치는 급락하면서 외환보유액가 바닥을 드러낸 상태다. 생활고로 인구 10명 중 4명은 빈곤층으로 전락했다고 외신은 전하고 있다.

    이번 대선 경선에서 밀레이 후보의 돌풍은 아르헨티나를 극한의 경제 위기로 몰아넣은 좌파 정권에 대한 아르헨티나 국민의 분노를 보여줬다는 평가가 나온다.
  • ▲ 한산한 부에노스아이레스의 대형마트.ⓒ연합뉴스
    ▲ 한산한 부에노스아이레스의 대형마트.ⓒ연합뉴스
    아르헨티나의 이런 포퓰리즘 정책은 우리에게도 낯설지 않다. 선거철마다 퍼주기식 '표퓰리즘'으로 일관했던 문재인 정부의 확장적 재정운용과 닮았다. 기본소득은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주장하는 기본소득·기본대출 등 이른바 '기본 시리즈'와 일맥상통한다.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은 35조 원 규모의 민생 추경을 편성해야 한다며 정부와 여당을 계속 압박하는 중이다. 이재명 대표는 지난 6월19일 국회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윤석열 정부를 비판하며 35조 원 규모 민생추경 편성을 주장했다. 이 대표는 "국채를 늘려서라도 재정이 경제 회복을 위한 역할을 해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이 대표는 최근에도 "추경 춤이라도 추겠다"며 국채 발행을 통한 추경 편성 주장을 이어가고 있다.

    야당은 인플레이션 불안이 다시 커지는 상황에서도 추경 편성 타령을 반복하는 모습이다. 민주당 박광온 원내대표는 지난 25일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일본 원전 오염수 방류와 관련해 "추경을 통해 수산업계에 실질적 지원을 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연초에는 난방비 추경을 주장하다가 이후 민생 추경, 수해 추경으로 이름을 바꾸더니 급기야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해양 방류에 따른 수산업계 지원 추경을 요구하고 나선 것이다. 시기에 따라 추경 앞에 붙는 '명분'은 달라지지만, 야당이 주장하는 바는 한결같다. 수십조 원의 돈을 시장에 풀자는 것이다.

    기획재정부가 지난 10일 발표한 재정동향을 보면 올 상반기 나랏빚(중앙정부 채무)은 1083조4000억 원으로 집계됐다. 정부가 전망한 올해 연간 국가채무액 1101조7000억 원과 견줘보면 국가채무가 조만간 정부 전망치를 돌파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나랏빚은 코로나19 사태와 문재인 정부를 거치면서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국가채무(중앙+지방정부 채무)는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 2017년 660조2000억 원(GDP 대비 국가채무비율 36%)에서 지난해 1068조8000억 원(GDP 대비 49.7%)으로 급증했다. 문재인 정부는 '추경 중독'이란 비판이 나올 정도로 추경을 남발하며 적자국채를 발행해 왔다. 문 전 대통령 임기 동안 총 10번의 추경을 편성했고, 이는 고스란히 나랏빚으로 쌓였다. 문재인 정부에서의 급격한 나랏빚 증가로 윤석열 정부에서 부담해야 하는 이자지출 비용만 5년간 115조원을 웃돌 거로 추산되는 실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