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익 적은 美 투자 '물음표'… "기술, 인재 빼앗길라"대만, 자국 내 반도체 기업 지원 강화… 국내로 눈 돌려삼성도 마찬가지 상황… 美 대신 국내 투자 확대 불가피
  • ▲ TSMC 미국 애리조나 파운드리 신공장 전경 ⓒTSMC
    ▲ TSMC 미국 애리조나 파운드리 신공장 전경 ⓒTSMC
    세계 1등 파운드리 기업 TSMC 등을 앞세워 미국과 반도체 동맹에 나섰던 대만이 자국 내에서 이른바 '대만형 칩스법'을 시행하며 국내 투자를 독려하고 나섰다. 미국 정부의 강력한 독려로 현지 생산 공장을 신설하고 있지만 부족한 보조금과 열악한 인력 환경 등을 이유로 대만 뿐만 아니라 삼성 등 한국 기업들도 국내 투자로 눈을 돌리는 분위기다.

    29일 반도체업계와 외신에 따르면 대만 경제부는 지난 7일(현지시간) 이른바 대만형 칩스법으로 불리는 '기업의 미래지향적 혁신 연구·개발 및 첨단 공정장비 지출에 대한 투자감면방법'을 시행한다고 밝혔다. 지난 5월 입법이 예고된지 3개월 만에 시행이 결정됐다.

    대만형 칩스법에 따라 세금감면 혜택을 받을 수 있는 대상은 대만에서 활동 중인 국내 기업은 물론이고 글로벌 공급망 핵심 업체들도 모두 포함된다. 다만 대만 내에서 연간 연구·개발(R&D) 투자액으로 60억 대만달러(약 2500억 원) 이상을 지출하거나 첨단 공정용 설비투자 규모가 100억 대만달러(약 4200억 원) 이상 등을 투자하는 기업들만 대만형 칩스법에 따른 법인세 감면을 받을 수 있다. 대만 정부는 이 기준을 충족한 기업들에 한해 R&D 투자액의 25%를, 설비투자액의 5%를 법인세에서 최대 30%까지 감면 받을 수 있다고 밝혔다.

    이번에 시행되는 대만형 칩스법은 명칭과는 다르게 업종 제한이 없다는게 특징이다. 반도체업종이 아니어도 세제 혜택을 받을 수 있다는 뜻이다. 다만 지원을 받을 수 있는 기준선이 상당히 높은 편이라 사실상 대만을 대표하는 반도체 기업이자 세계 1위 파운드리 업체인 TSMC를 위한 제도라는 평가가 나온다.

    대만 경제부 통계처에 따르면 TSMC는 지난해 대만에서만 1608억 대만달러(약 6조 7000억 원) 규모로 R&D 투자를 진행했다. 이는 매출액 대비 7.1%에 달하는 수준이다. 이에 앞서서도 TSMC는 대만 내에서 매해 1000억 대만달러 안팎의 R&D 지출에 나서면서 벌어들이는 돈의 약 8% 가량을 다시 기술 개발에 투자했다. 그만큼 대만 내에서 투자는 물론이고 고용 측면에서도 책임지는 비중이 높다는 의미다.

    대만 정부는 TSMC같은 자국 기업 외에도 반도체 생태계 조성을 위해 자국 내에서 활동하는 글로벌 반도체 장비, 소재 기업들에도 혜택을 제공할 것으로 전망된다. 현지 언론은 TSMC에 핵심 장비를 공급하는 ASML, 머크(Merck), 어플라이드 머티리얼즈(Applied Materials) 등과 대만에 진출해있는 마이크론(Micron)에도 세제 혜택을 줄 가능성이 높다고 점쳤다.
  • ▲ 삼성전자 미국 텍사스 테일러 파운드리 신공장 준공 전경 ⓒ경계현 삼성전자 사장 인스타그램
    ▲ 삼성전자 미국 텍사스 테일러 파운드리 신공장 준공 전경 ⓒ경계현 삼성전자 사장 인스타그램
    이처럼 대만이 TSMC를 중심으로 자국 반도체 산업 생태계를 단단히 하는데 발 벋고 나선데는 미국 중심으로 이뤄지던 반도체 투자를 다시 국내로 가져오겠다는 선언에 가깝다. 미국 정부의 적극적인 반도체 생산시설 유치에 TSMC가 미국 애리조나 지역에 대규모 투자에 나서 파운드리 신공장을 짓고 있지만 당초 예상 대비 미국 정부의 지원이나 인력 조달 상황이 여의찮아 상황이 악화되고 있다.

    지난달 TSMC는 미국 애리조나 신공장 가동 시점을 내년에서 내후년으로 연기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TSMC 측이 밝힌 가동 연기 이유는 다름 아닌 현지 인력난이었다. 첨단공정과 관련 장비를 다룰 수 있는 인력을 구하기 어려워 대만 본사에서 인력을 급파해 세팅에 나섰지만 이마저도 내년 가동을 할 정도로는 확보가 어려운 상황이고 가동을 시작한 이후에도 극심한 인력난이 이어질 것이란 우려가 크다.

    이 같은 상황을 두고 대만 정치권에서도 비판이 이어지고 있다. 반도체 산업을 앞세워 미국과 동맹관계를 맺었지만 대만이 얻는 실익이 크지 않을 뿐더러 미국에서 운영하는 반도체 공장을 통해서 핵심 기술이나 인재들이 유출될 가능성이 크다는 지적이다. 여기서 이른바 대만이 반도체 산업을 앞세워 미국과 맺은 '실리콘 동맹' 혹은 '실리콘 방패'가 더이상 유효하지 않다는 언급이 나온 것이다.

    TSMC가 대놓고 미국 내 인력난으로 인한 반도체 공장 운영 문제를 지적한 데 이어 대만 정부가 자국 내 반도체 산업에 막대한 세금 감면 법을 시행하면서 사실상 반도체 제조 중심을 자국으로 가져가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는 평가가 나온다. 미국에서 진행하고 있는 기존 투자를 거둬들일 수는 없겠지만 최소한 지금처럼 여러 환경적 이유를 들어 투자 일정을 지연시키는 상황이 이어질 수 있다. 더불어 앞으로 진행될 추가 투자도 최대한 소극적으로 임할 가능성이 제기된다.

    현재 미국 텍사스 지역에서 파운드리 신공장을 짓고 있는 삼성전자도 TSMC 상황과 다를 바 없다. 애리조나 지역보단 낫다고 평가되지만 미국 전역에 걸쳐 반도체 산업 관련 인력난이 심각하다는 것은 이미 널리 알려진 바다. 미국반도체산업협회(SIA)는 이 같은 미국 내 반도체 산업 인력난이 적어도 오는 2026년까지는 이어질 수 밖에 없다고 예상했고 그동안 인력을 육성하기 위해 투자해야 하는 비용과 노력 또한 상당할 것으로 보인다.

    TSMC와 대만 정부가 이 같은 방식으로 미국 투자에서 조금씩 발을 빼게 되면 삼성만 미국에서 투자를 이어갈 명분도 사라진다. 더구나 최근 미국 칩스법 시행을 앞두고 미국 기업들이 자국 기업 우선주의를 강력하게 주장하고 있다는 점도 미국에 투자하고 있는 외국 기업들이 다시 자국 투자로 눈을 돌릴 수 밖에 없는 이유로 거론된다.

    반도체업계 관계자는 "실리콘 방패를 앞세웠던 대만이 미국 투자에서 서서히 발을 빼는 상황을 삼성과 SK 등 국내 기업들이 예의주시하며 전략 구상에 나설 수 밖에 없는 상태"라고 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