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개 발전자회사에 4兆, 초유의 중간배당 요구… 적자에 한전채 발행한도 초과산업부 승인시 '최대 6배' 89.4조 발행 가능… 전기료 인상에 신청 눈치 보여중간배당 결의시 14조 발행여력 생겨… 배임 소지·재무부담 떠넘기기 지적도
  • ▲ 한전.ⓒ연합뉴스
    ▲ 한전.ⓒ연합뉴스
    한국전력공사가 천문학적인 적자로 말미암아 내년에 신규 회사채를 발행하지 못할 지경에 내몰렸다. 전기 구매는 물론 송·변전 시설 유지 보수 등에 쓰일 운영 자금을 융통할 수 없는 경영 위기에 처할 수 있다는 얘기다.

    한전은 자본금과 적립금을 합친 금액의 최대 6배까지 회사채를 발행할 수 있지만, 지난 11월 요금 인상으로 말미암아 이 카드를 꺼내기가 녹록잖은 처지다. 이에 한전은 한국수력원자력 등 6개 발전 자회사에 최대 4조 원 규모의 중간배당을 요구한 상태다. 일부 발전 자회사도 영업 적자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상황에서 모기업의 재무 부담을 자회사에 떠넘긴다는 지적이 나온다.

    11일 발전업계에 따르면 한전은 최근 한수원과 한국동서발전, 한국남동발전, 한국남부발전, 한국중부발전, 한국서부발전 등 6개 발전 자회사에 연말까지 4조 원 규모의 중간배당을 결의해줄 것을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 배당금이 들어오지 않아도 각 발전 자회사가 중간배당을 결의하면 회계상 한전의 자산이 증가한다.

    한전은 매년 발전 자회사로부터 경영실적에 따른 배당금을 받고 있으나 중간배당을 요구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한전은 누적되는 적자에 내년 한전채 신규 발행이 안 될 수도 있다고 우려한다.

    한국전력공사법을 보면 한전은 원칙적으로 자본금과 적립금을 합친 금액의 5배까지 회사채를 발행할 수 있다. 문제는 올해 영업손실로 내년 회사채 발행이 불가능할 수 있다는 점이다.

    지난해 말 기준 한전의 자본금·적립금은 20조9200억 원이다. 이에 따라 올해 5배인 104조6000억 원까지 한전채를 발행할 수 있었다.

    올해 한전은 6조 원대 영업손실이 예상된다. 이 경우 자본금·적립금 규모는 14조9000억 원으로 줄어든다. 내년 발행할 수 있는 한전채 한도는 74조5000억 원으로 쪼그라든다는 계산이 나온다.

    현재 한전채 발행 잔액은 79조6000억 원이다. 특단의 대책 없이 현 전망대로 내년 3월 결산이 이뤄지면, 한전은 신규 회사채 발행은커녕 한도를 넘긴 5조 원쯤을 즉시 갚아야 하는 처지에 놓인다.

    한전은 지난해 개정한 한국전력공사법에 따라 긴급한 경우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의 승인을 받아 회사채 발행 한도를 6배까지 늘릴 수 있다. 이때 산업부는 국회 상임위원회에 한도 초과를 보고해야 한다.

    한전 한 관계자는 "최대 6배까지의 발행 한도는 한전도, 산업부도 알고 있다"면서 "(다만) 아직 공식 입장은 없다"고 귀띔했다. 산업부 관계자도 "아직 한전에서 6배 한도 발행을 신청한 바 없다"면서 "애초 지난 11월 전기요금을 올릴 때 이 부분을 반영한 것으로 안다"고 설명했다.

    즉, 한전이 최대 6배까지 한전채 발행을 신청해 산업부가 승인할 경우 내년 발행할 수 있는 최대 회사채 규모는 89조4000억 원으로 늘어난다. 그러나 산업부가 지난달 전기료를 올리며 이 부분을 감안했다면 한전으로선 최대 6배 발행 카드를 꺼내기 어려운 상황이다.

    이에 한전은 사상 처음 중간배당을 요구한 것으로 보인다. 4조 원 규모의 발전 자회사 중간배당이 결의되면 한전의 적자가 줄면서 자본금·적립금 규모는 18조9000억 원으로 늘어난다. 내년 회사채 발행 한도는 94조5000억 원으로, 현재 추산보다 14조 원 이상 발행 여유가 생긴다.

    산업부 관계자는 "국제유가나 환율 상황이 안 좋으면 한전의 전력구매비가 상승할 수밖에 없어 불가항력이 되겠지만, 현재와 같은 상황이 일정 수준 유지된다면 (최악은) 아닐 것"이라고 말했다. 한전이 신규 회사채를 발행 못 하는 최악의 상황까지는 벌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하는 것이다.
  • ▲ 한전 부채 현황.ⓒ연합뉴스
    ▲ 한전 부채 현황.ⓒ연합뉴스
    각 발전 자회사는 중간배당을 위해 정관을 변경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한수원은 지난 8일 이사회를 열고 정관 개정을 논의했다. 하지만 일부 사외이사의 반대에 막혀 이날 오전 다시 열린 이사회에서 가까스로 정관을 개정했다. 한수원은 한전으로부터 최대 2조 원의 중간배당을 요구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한수원은 올해 3분기까지 1600억 원대의 영업손실을 본 상태다. 일각에선 한전의 과중한 중간배당 요구가 배임 소지가 있다고 우려한 것으로 전해졌다.

    동서발전과 나머지 발전 자회사도 오는 14일까지 이사회를 열고 정관 개정에 나설 예정이다.

    각 발전 자회사가 정관을 개정해도 구체적인 중간배당 액수를 결정하는 과정에서 다시 한번 난항을 겪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