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수 주체 팬오션, 대규모 유상증자 가능성↑주가 하락세 지속…나흘 간 시총 4천억원 증발팬오션 부채비율 증가 및 주주가치 희석 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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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림의 HMM 인수자금 마련을 위해 팬오션이 조단위 유상증자에 나설 가능성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팬오션이 결국 주주에게 손을 벌리는 것이어서 회사와 주주 모두 HMM 인수를 위한 희생양이 될 수 있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게다가 HMM 노동조합은 하림의 인수에 대해 반발의 목소리를 높이면서 인수작업 마무리까지 험로를 거칠 전망이다.

    22일 유가증권시장에서 이날 오전 11시5분 기준 팬오션 주가는 전일 대비 2.85%(110원) 하락한 3750원에 거래됐다.

    팬오션 주가는 HMM 인수에 따른 자금부담 우려에 따라 19일 전일 대비 10.1%(460원) 하락하는 등 4거래일 연속 내렸고, 이 사이 시가총액은 4300억원 가량 증발했다.

    하림은 팬오션을 앞세워 국내 최대 국적선사인 HMM 인수를 추진해왔다. 

    하림은 공식적으로 인수 주체에 대해 밝히지 않아 왔지만, 산업은행과 해양진흥공사가 지난 18일 ‘팬오션-JKL파트너스 컨소시엄’을 HMM 인수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하면서 팬오션이 HMM 인수 주체임이 명확해졌다.

    하림의 우협 선정으로 인수자금 마련안도 구체적인 윤곽을 드러내고 있다. 매각 대상은 산은과 해진공이 보유한 HMM 지분 57.9%(3억9879만156주)로, 하림은 인수 희망가로 6조4000억원을 써내 경쟁자였던 동원그룹(6조3000억원 안팎)에 근소한 차이로 앞선 것으로 알려졌다.

    하림지주의 현금성자산은 9월 말 기준 1조4591억원에 불과해 인수자금 중 상당 부분을 인수금융 등 외부차입에 의존해야 하는 상황이다. 

    시장에서는 하림이 2조~3조원 가량을 인수금융으로 충당하고 JKL파트너스로부터 7000억원을 지원받을 것으로 보고 있다.

    이 외 부족한 3조~4조원 가량의 자금을 팬오션이 담당할 전망이다. 

    하림은 팬오션의 선박 자산 유동화 등으로 1조원을 마련하고, 호반그룹과 5000억원 규모의 팬오션 영구채도 발행하기로 했다. 나머지 부족한 2조~3조원은 유상증자에 의존할 가능성이 높게 점쳐진다.

    한국기업평가는 “팬오션의 대부분 선박으로 구성된 6조원(장부가액 기준)의 유형자산 중 일부를 유동화하거나 3728억원의 금융상품을 활용하는 방안이 있으나 선박 대부분에 선박금융이 설정돼 대규모 자금을 확보하기는 어렵다”며 “유상증자가 주요 자금조달 방안으로 활용될 것”이라고 진단했다.

    팬오션이 대규모 증자에 나설 경우 기존 주주의 주주가치 희석은 불가피한 상황이다. 

    팬오션의 현재 시가총액은 2조원이다. 최대 3조원의 유증이 시행될 경우를 가정하면 시장에는 유통주식보다 많은 신주가 발행되며, 단순 계산으로 주식가치는 3분의 1로 줄게 된다.

    김홍국 하림그룹 회장은 최근 팬오션이 2조~3조원 규모를 증자하면 하림지주가 이에 참여할 것이라 밝혔다. 주주배정 후 실권주 일반공모 방식의 유증을 예고한 것이다. 

    3조원의 유증을 실시하면 하림지주가 1조6410억원을 투입하고 나머지 1조3590억원은 기존 주주로부터 충당한다는 얘기다.

    팬오션 주주들의 반발이 거센 가운데 전문가들도 팬오션의 재무부담 확대 가능성에 주목하며 투자 판단에 신중할 것을 권고하고 있다. 

    양사 시너지 효과와 별개로 HMM의 현금유출 우려가 여전하고 팬오션 역시 대규모 자금부담이 불가피하다는 분석이다.

    한국신용평가는 “주주 간 계약상으로 팬오션이 HMM의 유동성과 현금흐름을 완전히 통제하지 못하는 기간이 길어질수록 팬오션 자체의 재무부담은 가중될 수 있다”며 “유상증자로 2조원을 조달할 경우 팬오션의 부채비율은 기존 62.9%에서 88.6%로 확대될 것”으로 분석했다.

    그러면서 “사업 포트폴리오 제고와 수익창출력 확대는 긍정적”이라면서도 “비우호적인 컨테이너 업황 전망을 감안하면 사업다각화 효과가 발현되기까지는 시일이 소요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증권가에서는 HMM에 대해서는 ‘매도’를 제시하면서 팬오션에 대해서는 ‘분석 중단’ 의견을 내놓기도 했다. 

    국내 증권사 애널리스트들이 특정 종목에 대한 매도 의견을 거의 제시하지 않는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번 매도 의견은 이례적이다.

    엄경아 신영증권 연구원은 HMM에 대해 “경영권 프리미엄을 얹지 않은 주당가치로 매각처를 확정 지음에 따라 투자 매력도가 반감됐다”며 투자의견을 ‘중립’에서 ‘매도’로 변경하고 팬오션에 대해서는 주당가치 희석이 불가피하다며 분석을 중단한다고 밝혔다.

    엄 연구원은 “팬오션은 선박금융 원리금 상환을 위한 현금지출이 있어 연간 1조원 내외의 현금지출을 무시하고 보유 현금을 모두 인수자금으로 내놓는 것은 불가능해 자본시장에 손을 벌릴 여지가 많다”면서 “이번 HMM 매각 성사로 한국 시장은 해운주 투자처를 잃어버렸다”고 강조했다.
  • ▲ HMM 육·해상 양대 노조가 22일 여의도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하림의 인수금융계획의 투명한 공개를 요구하고 있다. ⓒHMM 노조
    ▲ HMM 육·해상 양대 노조가 22일 여의도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하림의 인수금융계획의 투명한 공개를 요구하고 있다. ⓒHMM 노조
    한편, HMM 노조도 하림이 대다수 인수자금을 외부에서 조달한 이후, HMM 현금을 유용할 가능성에 우려를 표하고 있다. HMM은 현재 10조원 이상의 현금을 보유하고 있다.

    HMM 육·해상 양대 노조는 22일 여의도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HMM에는 아직도 10조원에 이르는 유보자금이 남아 있다. 이는 국민세금 국가재정으로 이룩한 소중한 국민계정 유보자본”이라며 하림에 인수금융계획을 투명하게 공개할 것을 요구했다.

    노조는 이번 하림의 우선협상대상자 선정과 관련해 정부와 산업은행, 해양진흥공사가 그 배경과 근거를 명확하게 공개할 것을 요구했다. 하림이 어떠한 인수금융계획으로 재무적 안정성을 인정받았는지 공개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들은 자기자본 조달비율이 부족한 하림이 대규모 인수금융 조달로 HMM을 인수할 시 막대한 이자비용 및 재무적 참여자의 개입으로 지배구조가 불안정해질 수 있고, 이에 따라 HMM의 재정이 하림에 흘러갈 수 있다고 보고 있다.

    노조는 “(10조원의 유보금은) 2016년 한진해운의 파산으로 망가진 대한민국의 해운산업을 재건할 종자돈이자, HMM의 국제경쟁력을 높이는데 필수불가결한 중요한 에너지원”이라며 “온전히 HMM 사업투자 확장에 쏟아부어야 할 핵심 국민자본으로, 어떠한 명분으로도 하림이 국민자본을 유용하는 것은 금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하림 인수금융 계획과 매각계약 조건의 철저한 검증과 분석을 통해 국민기업 HMM 매각은 투명하고 공정한 절차적 정당성을 확보하게 될 것”이라며 “이러한 국민적 검증이 필요하기에 정부, 산업은행과 하림의 매각협상에 노동조합 참여는 반드시 보장돼야 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