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대재해법 유예' 합의 불발… 내일부터 '50인 미만' 적용"더불어민주당 민생 대신 노동계 표심 택해" 비난 못피할 듯영세기업 경영환경 악화일로…2월 1일 본회의서 처리해야
  • ▲ 25일 국회에서 열린 국민의힘 의원총회에서 윤재옥 원내대표 등 참석자들이 중대재해처벌법 유예를 촉구하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연합뉴스
    ▲ 25일 국회에서 열린 국민의힘 의원총회에서 윤재옥 원내대표 등 참석자들이 중대재해처벌법 유예를 촉구하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연합뉴스
    “특정 기업이나 특정 계층이나 직업군에 특혜를 주는 법도 아니지 않습니까. 법이 아무리 선의로 만들어졌다 하더라도 현장의 현실이 수용할 준비가 안 돼 있다면 당연히 유예를 고려해야 되는 거 아닙니까. 이거는 정쟁 때문에 벌어진 일이라고 밖에 볼 수 없습니다. 해도해도 너무합니다.”(인천 자동차부품 제조공장 중소기업 대표 A씨)

    50인 미만 사업장에 대한 중대재해처벌법(중처법) 2년 유예 법안에 대한 국회 본회의 처리가 끝내 무산되면서 영세기업들은 시한폭탄을 떠안게 됐다. 거대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이 총선을 앞두고 노동자의 표심만 고려한 채 협상에 어깃장을 놓으면서다. 현장은 이미 혼란에 빠졌다. 중처법 컨설팅으로 사기를 당하는 사람이 생겨날 정도다.

    여야가 전날 국회 본회의에서 중대재해처벌법(중대재해법) 유예 법안을 처리하는 문제에 대해 끝내 합의에 이르지 못하면서 27일부터 중대재해법이 50인 미만 사업장에도 전면 적용된다. 중처법 확대 적용 대상은 50인 미만 업체 총 83만 7000곳으로 종사자는 800만명에 달한다.

    앞서 2022년 1월 27일부터 시행된 중처법은 전면 도입에 앞서 50인 미만 사업장에는 인력 부족·경영 부담 등 준비 기간을 감안, 시행시기를 2년 이후로 늦췄다. 다만 중견·중소기업과 영세자영업자들이 추가로 유예기간 연장을 요구해 임이자 국민의힘 의원이 재유예안을 대표 발의한 바 있다.

    그러나 여야는 개정안 통과를 위한 3대 조건을 둘러싸고 확연한 입장 차이를 보여왔다. 민주당은 지난 2년간 법 시행 준비를 하지 않았다는 정부의 공식 사과, 향후 2년간 구체적인 재해 예방 준비 계획과 예산 지원 방안 발표, 2년 유예 후 법을 반드시 시행한다는 정부와 경제단체의 공개 약속을 3대 조건으로 제시했다. 

    이에 여당이 관련 방안에 합의 의사를 밝혀 중처법 시행은 급물살을 타는 듯 했다. 여당은 소규모 사업장 안전관리를 위해 올해 총 1조5000억원을 투입하는 등 안전보건관리체계 구축에 총력을 다하겠다는 방안도 발표했다.

    하지만 거대 야당인 민주당이 충분치 않다며 몽니를 부렸고 논의는 멈춰섰다. 협상과정에서 민주당은 산업안전보건청 설치와 정부가 산업재해예방에 투입하는 예산의 규모를 1조2000억원에서 최대 2조원으로 증액 등을 제시했다. 

    하나의 법 시행을 위해 외청을 또 만드는 것은 예산과 인력 낭비다. 현재 산업 안전을 감독할 기관이 없는 것도 아니라는 점에서다. 또한 법 시행이 당장 일주일도 남지 않는 시점에서 관련 계획을 준비하는 것도 사실상 어렵다. 일각에서는 애당초 합의 의사가 없었던 것 아니냐는 지적까지 나온다. 

    올해 중소기업과 영세 자영업자의 경영 환경은 녹록지 않다. 고물가·고금리 지속으로 가계부채 부담이 가중되고 있는 데다가,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부실 우려, 주식·주택 등 자산가치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서민들의 소비심리도 얼어붙고 있다. 경기변동에 취약한 중소기업, 소상공인들은 유동성 악화로 이자조차 내지 못하는 한계 상황에 내몰릴 우려도 커지고 있다.

    실제 중소벤처기업연구원은 지난해 17.2%였던 한계 중소기업 비중이 올해 20.1%로 역대 최고치를 경신할 것이란 전망을 내놨다. 한계기업이란 이자도 못 갚은 상태가 3년이나 지속될 정도로 경영이 악화된 기업을 말한다. 고금리와 경기 둔화가 지속되면서 올해 한계에 내몰리는 중소기업이 더 빠르게 증가할 것이란 관측이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중소기업 대출 잔액은 지난해 11월 기준 사상 처음으로 1000조원을 넘기기도 했다. 

    총선을 앞두고 여야는 앞다퉈 민생을 강조하고 있다. 정쟁 탓에 민생을 외면했다는 지적을 더 듣지 않으려면 다음 달 1일 열리는 본회의에서라도 중처법 유예 법안을 처리해 83만 영세사업장의 어려움을 덜어줘야 한다. 중처법 유예 개정안에 부칙을 달아 올리고 여야가 합의하면 유예가 가능하다. 주저앉기 직전의 낙타 등에 마지막 지푸라기를 얹을지, 짐을 덜어줄지는 야당의 결정에 달려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