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채 시장 훈풍 지속…에코프로비엠·현대인프라코어 등 흥행기업 자금 조달 니즈·개미 투자 수요 맞물려PF 우려 업종 양극화 여전…옥석 가리기 필요
  • 회사채 시장에 훈풍이 지속되고 있다. 고금리 기조에 그간 회사채 발행을 미뤄왔던 기업들의 자금 조달 니즈와 금리 인하 전 시중은행 예·적금 금리보다 높은 수준의 '고금리 막차'에 탑승하려는 개미 투자자의 수요가 맞물린 영향이다.

    29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지난 28일 에코프로비엠(A)은 1200억원의 자금을 확보하기 위해 회사채 수요 예측에서 당초 목표액 대비 3배 이상인 4200억원의 매수 주문을 받았다. 모집액 500억원인 1.5년물에 2420억원, 모집액 700억원인 2년물에 1780억원의 투자 수요가 접수됐다.

    공모 희망금리로 개별 민간채권 평가회사 평균금리(민평 금리)에 ±30bp를 더해 제시한 에코프로비엠은 1.5년물 -12bp, 2년물 -5bp에서 신고액 기준 물량을 채웠다.

    같은 날 HD현대인프라코어(A) 회사채 수요예측도 흥행에 성공했다. HD현대인프라코어는 총 800억원 모집에 1조1760억원의 매수 주문을 받았다. 2년물 200억 원 모집에 5520억원, 3년물 500억원 모집에 5590억원, 5년물 100억원 모집에 650억원의 자금이 몰렸다.

    2년물 -63bp, 3년물 -55bp, 5년물 -90bp에 모집 물량을 채우며 앞서 HD현대인프라코어가 제시한 희망 금리밴드 하단인 -30bp보다 더욱 낮게 형성됐다.

    자금조달 시장 훈풍은 비우량채로까지 퍼지고 있다. 지난 19일 두산에너빌리티(BBB+)의 회사채 수요예측에 2480억원의 주문이 몰렸다. 2년물 400억원 모집에 1550억원, 3년물 100억원 모집에 930억원이 접수됐다. 

    특히 두산에너빌리티는 비우량채임에도 언더발행에 성공했다. 두산에너빌리티는 개별 민평 금리에 ±30bp 가산한 이자율을 제시했는데, 2년물에 -179bp, 3년물에 -150bp에 모집 물량을 확보했다.

    최근 회사채 시장이 활황을 보이는 건 연초 기관투자자들이 자금을 집행하는 연초효과가 이달에도 이연돼 나타나는 계절적 요인에 더해 크게 두 가지 이유가 맞물린 결과다.

    우선 기업의 자금 조달 니즈다. 지난해 고금리 기조가 지속되면서 기업들은 회사채 발행을 미뤄왔다. 회사채 만기가 돌아오더라도 자체 보유 현금을 활용하거나 기업어음(CP) 등 단기 자금으로 버텼다.

    올해 1월 금리가 레고랜드 사태 이후 최저점 수준으로 내려오면서 기업들의 자금 조달 환경이 빠르게 개선되고 있다. 코로나19 금리 때와 비교하면 비싸지만 정점이었던 지난해 10월(4%대)에 비하면 하락 추세다. 지난 28일 기준 3년물 국고채 금리(금융투자협회 최종호가수익률 기준)는 3.35% 수준까지 내려왔다.

    특히나 내년 4월 국내 총선과 11월 미국 대선을 앞두고 기업의 자금 조달 움직임을 앞당기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정부의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지원책이 총선 이후 기점으로 변화할 수 있는 만큼 불확실성을 피하기 위해서다.

    여기에 향후 금리 인하를 예상하고 매매 차익을 얻으려는 채권 개미들의 수요가 맞아 떨어졌다.

    회사채는 보통 신용등급이 낮을수록 수익률이 높지만 대체로 예·적금 대비 수익률이 높다. 시중은행 예·적금 금리에 만족하지 못한 투자자 입장에선 상대적으로 안정성이 높으면서도 더 만족할 만한 수익을 기대할 수 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오는 6월 금리 인하 전망에 힘이 실리는 가운데 금리가 내려가기 전 조금이라도 높은 금리에 채권을 매입하려 했다는 해석이 나온다.

    실제 올해 들어 개인투자자들은 회사채를 적극 사들이고 있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지난 28일까지 최근 한 달간 개인투자자들이 장외 채권시장에서 순매수한 회사채 규모는 1조6716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9219억원) 대비 45% 넘게 급증했다.

    이화정 현대차증권 연구원은 "은행 예금 금리가 3%대로 하락한 가운데 A등급 회사채의 경우 4∼5% 금리수준을 나타내고 있어 금리 메리트가 큰 편"이라고 밝혔다.

    채무자와 채권 투자자 간 니즈가 부합하면서 회사채 시장이 흥행을 이어가고 있지만 업종별로는 양극화가 진행되고 있다.

    부동산 PF 우려 업종인 중견 건설사 HL D&I(BBB+)는 지난 21일 수요예측 전액 미매각(주문액이 모집액에 미달)으로 참패를 기록했다. 지난 28일 포스코이앤씨(A+)는 총 900억원 모집에 2750억원의 매수 주문을 받긴 했지만 건설업종에 대한 우려를 반영한 듯 ±30bp의 금리를 제시해 2년물은 10bp, 3년물은 20bp금리에 모집 물량을 채우며 금리 면에서 다소 아쉬운 결과를 받아들었다.

    전문가들은 회사채 투자 시 높은 금리 수준에만 주목할 것이 아니라 발행기업이 신용 리스크 노출됐는지 등 옥석 가리기가 필요하다고 조언한다.

    정혜진 신한금융투자 연구원은 "3월에도 크레딧 강세가 지속된다면 강세 주도 섹터는 A급 회사채와 캐피탈로 이동할 가능성이 높다"며 "수급 주도의 강세가 이어지고 있지만 부동산 PF, 가계 부채 우려, 한계기업 증가라는 한국 경제의 회색코뿔소를 무시한 채 A급 강세를 말하기에 부담"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