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 화장품, 엔터테인먼트 카테고리 브랜드, AI 기술에 신중한 접근 전략 취해AI가 생산하는 편향적·부정적 결과물 논란 이어져… 저작권, 개인 정보 보호 문제에도 취약브랜드 이미지 훼손할 수 있는 AI 활용에 신중 기해야
  • ▲ ©AI 생성 이미지
    ▲ ©AI 생성 이미지
    전 세계 산업을 뒤흔들고 있는 인공지능(AI)의 영향력과 파급력이 갈수록 커지는 가운데, 광고·마케팅 활동에 AI의 사용을 제한하는 움직임이 속속 포착되고 있다.

    AI는 비용을 대폭 절감시켜주고 작업 시간을 단축시켜줄뿐만 아니라 급변하는 시장에 발 맞춰 효율적인 결과물을 빠른 시간 내 완성할 수 있다는 장점을 갖추고 있지만, AI 특유의 편향성과 오류, 윤리 문제 등 치명적 단점이 불거지면서 'No AI'를 외치는 브랜드들이 생겨나고 있는 것이다.

    23일 업계에 따르면 로레알(L’Oréal)과 도브(Dove), 레고(LEGO), H&M, 띵스(Thinx) 등 화장품, 패션, 엔터테인먼트 분야의 브랜드들이 광고와 마케팅 부문에서 AI 기술을 제한하기로 하는 등 신기술 활용에 신중한 접근법을 취하고 있다.

    AI 활용이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면서 드러난 AI의 치명적 단점들이 브랜드들의 등을 돌리게 한 것으로 풀이된다. 최근 들어 많은 AI들이 왜곡되고 편향적인 콘텐츠와 부적절하고 부정확한 이미지를 생성해 반발을 불러일으키고 있으며, 인터넷 상의 방대한 데이터를 사용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저작권과 개인 정보 보호 문제에서도 자유롭지 못한만큼 브랜드 입장에서는 득보다 실이 많을 수도 있다고 판단한 것으로 풀이된다. 
  • ▲ AI를 활용한 로레알의 디지털 피부 진단 툴 '모디페이스'. ©로레알
    ▲ AI를 활용한 로레알의 디지털 피부 진단 툴 '모디페이스'. ©로레알
    △ 로레알(L’Oréal) 
    맥켄 월드그룹(McCann Worldgroup)의 데릴 리(Daryl Lee) 글로벌 최고경영자(CEO)에 따르면, 맥켄의 고객사 중 하나인 로레알은 인간의 머리카락이나 피부톤을 묘사하기 위해 AI를 사용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 로레알 측은 상업용 작업물에 새로운 AI 기술을 사용할 수는 있지만, 인간을 묘사하는데 사용하는 것은 금지하기로 했다. 

    로레알 측은 "'인간처럼 보이는' 얼굴과 몸을 묘사하는 것에 있어서는 생성형 AI 사용을 제한한다"며 "(AI 기술이) 영감을 주고, 아이디어를 생성하거나 내부 스토리보드를 만드는 데 활용될 수는 있지만, 제품의 이점을 강조하거나 지원하는데 직접적으로 사용될 수는 없다"고 강조했다.

    로레알은 화장품 분야에서 AI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기업 중 하나로 꼽힌다. AI 기술을 활용해 디지털로 피부를 진단하는 '모디페이스(Modiface)'를 선보였으며, 고객과 뷰티 전문가, 뷰티 제품, 수천장의 뷰티 이미지를 기반으로 만든 AI 비서 '뷰티 지니어스(Beauty Genius)' 등을 선도적으로 선보였다. 로레알은 브랜드가 AI와 같은 신기술을 사업에 활용하되, 민감할 수 있는 특정 부문에서의 사용에 대해서는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는 점을 보여주고 있다. 
  • △ 도브(Dove) 
    유니레버(Unilever) 산하의 뷰티 브랜드 도브(Dove)는 AI가 '아름다움(beauty)'을 묘사하는 비현실적인 방식에 맞서기 위해 광고에서 실제 인간을 묘사할 때 AI 기술을 절대 사용하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최근 공개한 도브의 '더 코드(The Code)' 캠페인(SOKO 대행)은 AI가 '아름다움'에 대해 얼마나 왜곡되고 편향적인 결과물을 내놓는지를 지적했다. AI에게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성' 이미지를 생성할 것을 요청하자, AI는 날씬한 금발의 백인 여성 이미지를 만들어냈다. '아름다움'에 대한 편협하고 좁은 고정관념을 AI가 그대로 반영한 것이다.

    도브가 실시한 설문 조사에 따르면 여성의 3분의 1 이상은 "가짜 이미지이거나, AI가 만들어 낸 이미지라는 것을 알면서도 온라인에서 보게 되는 이미지 때문에 (자신의) 외모를 바꿔야 한다는 압박을 느낀다"고 답했다. AI가 만들어낸 '아름다움'에 대한 편견이 실제 여성들에게 부정적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이다.

    도브는 AI에게 '도브의 '리얼 뷰티(Real Beauty, 진정한 아름다움)' 광고를 기반으로 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성' 이미지를 요청하자, AI는 인종과 피부색, 연령대, 신체 사이즈, 헤어스타일이 각기 다른 다양한 여성의 이미지를 생성해냈다. 광고는 "도브는 여성의 이미지를 생성하거나 왜곡하는 AI를 절대로 사용하지 않겠습니다"라는 메시지를 전하며 도브가 지난 2004년부터 지속해 온 '리얼 뷰티' 광고 캠페인 20주년을 기념한다.

    도브는 '더 코드' 캠페인의 일환으로 'AI를 사용해 아름다움에 다양성을 반영하는 방법'에 대한 72페이지 분량의 핸드북을 발간했다. 핸드북은 "프롬프트에 언급하지 않으면 AI는 어떤 것도 만들어내지 못합니다"와 같은 구체적인 AI 활용법 등을 제안한다.
  • ▲ AI를 활용한 로레알의 디지털 피부 진단 툴 '모디페이스'. ©로레알
    △ 레고(Lego) 
    레고는 지적재산권(IP)과 관련된 콘텐츠를 만드는 데 AI를 사용하지 않겠다는 확고한 정책을 세웠다. 레고는 제품 디자인과 신제품 개발, 제조, 소매 등의 분야에서는 AI 활용을 테스트하고 있지만, 콘텐츠 제작에 있어서만큼은 실제 예술가와의 작업을 고수하겠다는 방침이다.

    지난달 레고는 AI로 생성한 레고 닌자고(Lego Ninjago)의 테스트 이미지를 공식 웹사이트에 올려 논란이 됐다. 레고의 오랜 애호가들은 AI가 생성한 창작물에 대해 형편없다고 비판했으며, 레고는 몇 시간 후 해당 이미지를 웹사이트에서 삭제하고 콘텐츠 제작과 관련해서는 AI를 사용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다시 한 번 확실히 밝혔다. 

    레고와 같이 널리 알려진 IP와 수많은 애호가들을 가진 전통적인 브랜드들에게 있어 AI의 활용은 양날의 검과도 같다. 새로운 콘텐츠를 제작하기 위해 예술가들과 팀을 이뤄 작업하는 경우는 있지만, AI를 활용하기 위해 실제 사람과의 협업을 저버리는 것은 브랜드에 논란을 불러일으킬 수 있기 때문이다.

    △ H&M
    H&M은 광고 콘텐츠 제작이나 마케팅 목적으로 생성형 AI를 사용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H&M 측은 AI 기술에 대한 관심이 높은 것은 맞지만, (AI 활용에 있어) 광고의 역할에 관한 윤리적 가이드라인이 먼저 제정돼야 한다는 점을 분명히했다.

    지난해 리바이스(Levi’s)는 다양한 모델을 만들어내기 위해 AI를 사용하겠다고 밝혀 비판의 대상이 됐다. 포용성(inclusivity)을 실천하는데 너무 성의없는 방법을 썼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리바이스는 이에 대해 "AI 프로그램 테스트를 강화하는 것은 물론, 실제 다양한 모델들을 채용하는 것 또한 지속해 나갈 것"이라고 답변했다.

    H&M은 기술 활용에 있어 신중한 접근 방식을 취하고 있지만, 고객들이 생성형 AI를 활용해 직접 옷을 제작해 구매할 수 있는 크리에이터 툴을 선보이는 등 AI 활용에 큰 관심을 갖고 있다. H&M은 오는 2040년까지 지속가능한 목표를 달성하는 데 있어 AI가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 △ 띵스(Thinx) 
    속옷 브랜드 띵스는 최근 공개한 '겟 바디와이즈(Get BodyWise)' 캠페인을 통해 AI의 왜곡된 고정관념을 정면으로 비판했다. 광고는 AI가 '월경', '사춘기'와 같은 여성의 건강 문제를 어떻게 표현하는지에 주목했다. 

    AI에게 '생리에 관한 이미지'를 생성해 줄 것을 요청하자, AI는 수치심과 죄책감, 우울함을 느끼는 여성의 이미지를 만들어냈다. 이에 띵스는 "교육이 시작되면, 편견(stigma)은 끝납니다"는 메시지와 함께 여성의 건강에 관한 올바른 교육을 강조하는 '겟 바디와이즈' 캠페인을 소개한다. 

    띵스의 '겟 바디와이즈' 캠페인 속 그림은 AI가 그린 것이 아니라, AI의 이미지 스타일을 모방해 사람이 직접 그린 것이다. 띵스는 기술적 효율성보다 인간성에 더 우선순위를 두고 이를 강조하기 위해 AI 대신 예술가가 직접 그린 그림을 광고에 사용하기로 결정했다. 이 캠페인은 BBDO 로스 앤젤레스(BBDO Los Angeles)가 대행했다.

    AI의 등장은 광고·마케팅 산업의 일하는 방식을 바꿨을뿐만 아니라, 크리에이티브의 관점과 방향성까지 변화시키는 등 브랜드 활동에 광범위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No AI'를 선언한 브랜드들이 AI의 홍수 속에서도 꿋꿋이 소신을 지킬 수 있을지 업계의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